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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49968794
    본문말씀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경본문
    마태복음 5:1~12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8-01-07


(5:1-12) 인생행복

2018-01-07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제게 새해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행복을 노랬습니다.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완전하고 선하신 여호와께서 친히 나의 목자가 되셨기에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행복합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행복을 노래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산상수훈(5-7)의 서론으로서 일명 팔복이라고 불립니다. 산상수훈을 산상설교 혹은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신 탁월한 교훈, 보배로운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팔복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짜 인생행복론입니다. 그 외의 모든 행복론은 가짜이거나 짝퉁입니다. 이 팔복에서 어떤 자가 행복한 자인지 예수님께서 8가지로 말씀하셨는데 하나씩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3)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의 연약성과 무력함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는 자를 뜻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 이웃과 가족은 물론 제 몸 하나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심히 연약하고 부족한 자입니다. 하오니 주님의 은혜만을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복을 주십니다. 그 복이 바로 천국입니다.

 

지난 세기에 가장 훌륭했던 기독교 문학가요 사상가 중의 한 분이셨던 C S 루이스는 교만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모든 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이다. 성적인 부패,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바로 교만 때문에 천사가 타락하여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 특히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겨질 때는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에게 채워질 하나님의 은혜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사셨을 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은 자신들이 부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나 자신들의 공로가 아주 크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꿈을 꾸었던 열심당원들도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세리와 창기와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아주 연약하고 가난해서 드릴 것도 이룰 것도 전혀 없음을 알고 그저 하나님의 자비만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을 우리가 죽은 후에나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야 누리게 될 미래적인 나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현재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즐거워하는 자들 속에 이미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금 친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선하신 목자가 되셔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으로 공급하시고 악한 것들 가운데서 능히 보호하십니다.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다스림에 감사하고 순복 하는 겸손한 자들은 지금 여기서도 천국을 생생하게 맛봅니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4)

 

자신의 영적인 가난함(비참함과 결핍)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문제의 근원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고 슬퍼하며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강렬한 빛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악을 낱낱이 보고는 가슴을 치며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비유에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8:11-14)[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를 진지하게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하십니다. 이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가 누리는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뜻합니다. 그때 신령한 기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온통 기쁨과 웃음으로만 충만해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말씀한 대로 성도는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슬픔과 회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령한 기쁨 이면에 진지한 회개와 눈물의 탄원이 뒷받침되어야 균형 잡힌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5)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울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의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시편의 기자도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사도 바울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이렇게 자신과 이웃의 죄 때문에 애통하는 성도를 복 있는 자라고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고 그들의 눈에서 흘린 눈물을 말갛게 씻어주십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하다라는 단어 안에는 온순하고 부드럽다, 사려 깊고 섬세하다, 예의가 바르다, 자제력이 있다, 인내한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애통하는 자, 회개하는 자 그래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자는 그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과 이웃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기를 그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즉 여유로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나도 그 같은 일을 당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 일단 그를 이해하고 용납하자! 먼저 축복하고 기도하자. 그러면 차츰 달라질 거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거야! 나에게 큰 자비를 베푸신 주님께서 역시 그에게도 큰 자비를 베푸실 거야!” 이 같이 인내와 관용의 태도를 갖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더 나아가서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는 즉시 응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응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그 사명에 헌신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를 믿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과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온유한 자를 바보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유약해서 어떻게 생존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래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핀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엄포도 놓을 줄 알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좀 약삭빨라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한결 같은 약속입니다. 대표적으로 시 37편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37:7-11)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37:34-36)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그 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물론 완성된 천국에서 지도자가 될 자들은 온유한 자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하나님의 일꾼들이 일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할 뿐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가 성취되기를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그 목적과 목표는 다름 아니라 의의 실현입니다. 의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될 때 나타나는 올바른 상태와 결과를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뜻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의 실현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가장 먼저 그 의에 수반되는 모든 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러므로 그가 가장 행복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으뜸가는 것이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성취하라고 주시는 최고의 능력이요 복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그 뜻의 실현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내어드리면 그 뜻의 실현은 물론 우리의 내면에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참으로 행복한 자가 됩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란 궁핍한 자, 연약한 자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긍휼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자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어떠한 조건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즉시 최선을 다해 돌보는 것을 뜻합니다. 심지어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와 이웃을 용납하고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이 임하는데 그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사랑과 자비)을 누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8)

 

마음의 청결은 말 그대로 외적인 청결이 아니라 내적인 청결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적인 청결보다는 외적인 청결함이나 화려함에 더 큰 관심을 가집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힘들고 더러운 일은 하지 않고 가능한 편하고 폼 나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외모 가꾸기에 신경을 씁니다. 대신에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옷이 더러워지고 몸에 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무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몸이나 옷에서 나는 땀 냄새와 기름 냄새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냄새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기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자, 매사에 정직하고 투명한 자, 자기보다 이웃이 하나님의 복을 더 풍성하게 받기를 소원하는 자를 뜻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아주 좋아하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하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가까이 계셔서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주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있겠습니까?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9)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지만 이 말씀과 상치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10:34-38)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옹호하고 사랑하는 자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면 우리의 우둔함이나 불의로 인해 불화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적극적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머무는 그곳에 평화를 심는 자, 만나는 사람들과 평화를 도모하는 자, 평화를 확산하는 자,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렇게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를 보니 네가 섬기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겠다, 너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자이구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받는 최고의 칭찬이며 그로써 하나님의 이름도 크게 높아집니다. 이런 자들을 통해서 전도의 열매, 영혼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힙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면 세상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손해를 입기도 합니다. 바보라고 놀림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받게 될 복은 천국입니다. 이는 천국의 모든 복을 누리게 된다는 뜻이며 모든 역경을 딛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박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11-12절 상반절).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과 박해는 성도의 참된 표지이기도 합니다(12절 하반절,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대열에 선 자들).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제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팔복을 간단히 해설했지만 팔복의 의미는 더 깊고 풍성합니다. 올 한 해, 이 팔복의 말씀에 푹 잠겨 살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팔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다는 뜻입니다. “천국 백성답게 산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산다, 성령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세상에 거룩한 도전과 감동을 주는 대안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런 성도와 교회에 하나님께서 최고의 복을 주십니다.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성도와 교회가 됩니다. 지금 여기서 그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복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며 내일과 그날이 더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나만 행복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지금 여기에서 팔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팔복을 지금 여기에서 풍성히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그 답이 골로새서에 있습니다.

 

(2:3)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지금 여기에서 팔복을 풍성히 누리려면 예수님 안에 푹 잠기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 푹 잠긴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 매료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1)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매사에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께 의존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겸손하신 분은 없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자주 애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죄로 가득한 세상과 우리들을 보시면서 탄식하고 애통하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온유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인내와 관용과 여유로움과 평정을 유지하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실현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 뜻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셨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배반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6)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하셨습니다. 사리사욕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단순하게 순수하게 사셨습니다.

 

7) 예수님께서는 화평을 추구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달게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팔복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친히 팔복의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렇게 사신 예수님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최고의 복을 주셨습니다.

 

(2:6-11)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누가 행복한 자일까요? 예수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더 행복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푹 잠겨야 합니다. 예수님께 매료되어야 합니다. 매사에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주보의 목회서신에 썼듯이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실까, 무어라 말씀하실까, 어떻게 행동하실까?”를 먼저 물어본 다음에 다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삶에 거룩한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혁명이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성숙한 제자, 예수님의 충실한 증인, 예수님의 분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혁명이 가능하도록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올 한 해 예수님 안에 푹 잠겨서 하늘의 복을 풍성히 누리고 나누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송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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