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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youtu.be/pWO5SaVIym0
    성경본문
    사무엘상 21장 10절~22장 5절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22-03-20

<다윗 07>

(삼상 21:10-22:5) 다윗과 그의 사람들: “공동체

2022-03-20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전문

다윗은 약 10년간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도피생활을 대략 3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1(삼상 21:1-22:23, 주전 1020-1018): - 가드(블레셋) - 아둘람 굴 - 모압(요새) - 헤렛 수풀

* 2(삼상 23:1-26:25, 주전 1017-1015): 그일라 - - 엔게디 - 마온 - 갈멜 (광야생활)

* 3(삼상 27:1-삼하 2:1, 주전 1015-1010): 가드 - 시글락 - 헤브론 (블레셋으로 망명했다가 유다로 복귀함)

 

 

오늘 우리는 다윗의 도피생활 가운데 제1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드 - 아둘람 굴 - 모압 - 헤렛 수풀로 이동했는데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21:10-15) 가드 땅으로 피신한 다윗

 

 

사울의 목자장, 도엑의 밀고를 예상한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가드로 도피합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얼마 전에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는 것은 아기스의 보호를 받으려고 했다는 뜻입니다(10). 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적국의 장군이 귀순하여 아기스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면, 아기스는 물론 그들의 신하들도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다윗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아기스 왕에게 거세게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11). “저 친구, 우리의 적국인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사울은 이름만 왕이지 실질적인 왕은 저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개선행진을 벌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크게 칭송하며 노래했다는 것,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 친구를 받아주었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차라리 지금 죽이는 것이 낫겠습니다!”

 

 

다윗은 졸지에 독 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습니다. 심히 두려웠지만 재치를 발휘했습니다. 미친 체했습니다. 대문짝을 긁으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 이것을 본 아기스는 저 미치광이를 쫓아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죽음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즉시 가드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내정된 자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쳐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에게 대승을 가져다준 구국의 영웅이었습니다. 왕자 요나단과 막역한 친구가 되었고 공주 미갈과 결혼하여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고 백성들이 크게 칭송하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지금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적국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미치광이 흉내를 내면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시로 표현했는데 그 시가 시편 34편입니다. 시편 34편의 표제에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여기 아비멜렉은 블레셋 지역의 왕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서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아비멜렉의 본명이 아기스입니다.

 

 

이 시편 34편은 3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7): 다윗이 (가드에서) 죽을 뻔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구원받았음을 증언합니다.

 

 

(34:4, 6)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2(8-18): 이 같은 경험을 한 다윗이 자기처럼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피하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라고 권면합니다.

 

 

(34:8-9)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3(18-22): 가드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누가 의인인지 깨달았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34:18, 22)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무엘상 본문에서는 가드에서 미친 짓을 하여 쫓겨날 때 다윗이 회개하고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때를 배경으로 지은 시편 34편에서는 사울로 인해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대신에 가드의 아기스에게로 피했는데 그 처사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즉시 회개하고 기도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하여 다윗은 곤경에 처할 때 하나님께 피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드에서의 경험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 없음과 경솔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심으로써 다윗의 믿음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22:1-2)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과 그에게 온 사람들

 

이제 2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가드에서 도망쳐 나와 아둘람 굴로 피신합니다(1). “아둘람은 피난처, 은신처라는 뜻입니다. 가드에서 남동쪽으로 약 14km 떨어진 성읍으로 유대지파의 산지구릉에 위치해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둘람이 블레셋과 인접한 성읍이었기 때문에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 어느 정도 안전한 곳이라고 다윗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아둘람에 굴이 있었는데 그 굴에 자신의 몸을 숨겼습니다. 아둘람 굴은 사울의 군사들이 접근해오는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망대와 같은 곳이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천혜의 요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2편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굴에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 올렸던 기도문이 실려 있습니다. 10년가량 사울을 피하여 도피생활을 할 때 다윗은 여러 굴들을 전전하였기 때문에 아둘람 굴에서 이 기도를 드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이와 비슷한 기도를 올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142:6-7)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주님, 제 사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 외에 의지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숨어있는 이 굴도 저를 안전하게 지켜줄 피난처가 아닙니다. 제 피난처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외면하시면 저는 절망입니다. 하오니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저를 건져주소서! 옥에서 저를 이끌어내소서! 제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을 붙여주소서!”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인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아둘람 굴에서 은거하고 있는 다윗에게로 온 사람들입니다.

 

 

먼저 아둘람 굴로 다윗의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1절 하반절). 베들레헴에서 아둘람까지는 약 15km의 거리인데 가족들이 다윗에게로 온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반역자로 몰린 다윗의 집안을 사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그들이 피할 만한 곳이 딱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다윗에게로 피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면 자기들도 다윗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의 가족들만 아니라 일단의 무리들도 다윗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2). 백성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던 다윗이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왕궁에 쫓겨나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울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다윗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4백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범상치 않은 일입니다. 그들이 사울을 떠나 다윗 편에 선 것은 반역의 길에 선 것입니다. 그로써 아둘람에서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공동체를 22:6절에서는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23:5, 24, 26, 24:2, 3) 다윗과 그의 사람들

(23:13)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가량: 400명에서 6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다윗과 함께 사람들의 면모를 22:2에서 제법 자세히 묘사합니다.

 

 

* 환난 당한 모든 자: 사울이 통치하던 때 이런 자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통치가 하나님의 공의에서 크게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당한 모든 자란 사울에게서 정치적인 박해를 받은 자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울을 떠나 다윗 편에 섰습니다.

* 빚진 모든 자: 사울의 불공정한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했다고 보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부자에게서 빌린 고리대금으로 살아야 했는데 그 빚을 갚지 못해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다윗에게로 온 것입니다.

* 마음이 원통한 자: 사울의 학정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뜻하는데 차라리 다윗과 함께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다윗을 찾은 것입니다.

 

 

이들은 삶에 지친 자들, 경제적으로 파산당한 자들,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자들, 사울 왕의 실정과 기득권자들의 압제에 원한을 품은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윗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좋은 세상을 이루게 될 날을 꿈꾸며 의기투합한 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절 하반절에서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다윗이 왕업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왕업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섬기는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모여든 400여명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을 뿐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왕업을 수행하는데 함께할 동지들인 셈입니다. 그로써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할 기초공동체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400여명의 무리들을 다윗에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확인하게 되겠지만 이들은 10년의 세월을 다윗과 함께하면서 다윗과 하나님께 충성하는 건장한 군사들로 성장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했을 때 개국공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22:3-4) 모압으로 이동한 다윗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둘람 굴에서 오래 기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의 연로하신 부모가 아둘람 굴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곳이 4백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기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일행들을 인솔하여 모압으로 갑니다. 사해 동편에 위치한 모압까지는 꽤 먼 거리입니다.

 

 

3절을 보면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모압 미스베로 갔다고 하는데 미스베는 망대라는 뜻입니다. 고원지대에 초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다윗이 모압 왕을 만나 자신의 부모를 돌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압 왕은 가드의 아기스 왕과는 달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환대했습니다. 그렇게 환대한 이유를 두 가지정도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모압 여인인 룻이 다윗의 증조모였으므로 다윗과 모압 족속은 어느 정도 혈연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그 때에 모압이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큰 장군인 다윗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모압 왕에게 나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쾌히 다윗의 부모를 돌보겠다고 합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기거할 요새(성채)까지 선처해줍니다(4).

 

 

3절을 보면, 다윗이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기며 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지를 내가 알기까지 내 부모가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청합니다.” 이 말에서 다윗의 부모공경의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엿보게 합니다. 다윗은 도피생활 중에 연로하신 부모가 겪게 될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하셨듯이 앞으로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22:5)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온 다윗

 

 

그때 선자지 갓이 다윗에게 모압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선지자 갓은 다윗의 도피생활 중에 합류하여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다윗의 선견자(모사)로 봉사했습니다(대상 21:9).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갓의 말에 순종하여 다윗은 일행들을 데리고 헤렛 수풀로 이동합니다(5). “헤렛수풀은 모두 삼림이라는 뜻입니다. 유다지파의 숲이 우거진 삼림지역에서 은거생활을 했다는 뜻입니다.

 

 

얼마 후에 제사장 아비아달이 합류합니다(22:20). 그로써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다윗 왕과 선지자 갓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400여명의 식솔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 400여명이 앞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할 기초공동체 구실을 했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건실하게 세우려면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내정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년의 도피생활 동안 다윗을 강하게 훈련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대로 가드와 아둘람 굴과 모압과 헤렛 수풀로 이동하면서 다윗은 점점 더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가드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살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둘람 굴에서는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모압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압 왕을 통하여 자신의 부모와 일행들이 얼마간 평안히 지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도피생활 중에 누렸던 안식의 시간이었습니다. 선지자 갓의 말에 순종하여 모압에서 유다지파에 속한 헤렛 수풀로 과감하게 이동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평생 헌신해야 할 소명의 땅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피생활 중에 홀로 지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다윗은 가족들과 4백여 명의 식솔들까지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할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4백여 명의 사람들을 섬기면서 다윗은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10년간의 도피생활은 왕업을 훈련하는 최고의 기간이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오늘 설교의 부제가 공동체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 4백여 명은 아둘람 굴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모압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수년간 광야를 전전했습니다. 가드에서 망명생활도 했는데 그때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공동체가 와해될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점점 더 믿음과 인격이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건실한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것, 녹록치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고 함께하는 일에 성과가 있을 때에는 신이 납니다. 하지만 의견이 틀어지고 마음이 나누어지고 서로 싸우고 갈라설 때 공동체는 몸살을 앓습니다. 그럴 때 공동체를 떠나 혼자 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우리의 운명이며 존재방식입니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만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단련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즐겁게 공동체를 섬기셨습니다. 가정생활에 충실하셨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셨습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목수 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부양하셨습니다. 30세가 되셨을 때 가정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실 때에도 우선적으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3년간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70명의 제자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를 섬겼던 여인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5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 하셨습니다(고전 15: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120여 명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힘써 기도하고 있을 때(1:12-15),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2:1-4). 그 날이 오순절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그날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이 3천 명이나 되었습니다(2:41). 예루살렘 교회가 창설되자마자 큰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가 이상적인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는데(16:18) 그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이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한밭교회도 58년 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확산된 교회가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신약교회의 기초공동체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확인한 대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구약교회인 이스라엘의 기초공동체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기초공동체인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자공동체를 건실하게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다윗의 공동체보다 훨씬 더 이상적인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새 시대 새 공동체의 모형이었으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세우시기 원하셨던 신약교회의 기초와도 같은 원형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을 훈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위해 자기의 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혼성팀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습니다. 촌사람도 있었고 도시인도 있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자도 있었고 유식한 자도 있었습니다. 정치에 밝은 자도 있었고 경제에 밝은 자도 있었습니다. 이성적인 사람도 있었고 감성적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로마정권에 아부하던 세관원도 있었고 로마정권에 항거하던 열혈당원도 있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자도 있었고 조용한 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옛사람을 버리지 못하여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3년 동안 서로 싸우고 시기했습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함께 가기보다는 앞서가기를 좋아했습니다. 낮아지기보다는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그 당시 파당과 당쟁으로 갈가리 찢겨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 모난 성격들이 깎였습니다. 점점 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갔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단을 구성하신 것은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전혀 하나 될 수 없었던 자들이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제각기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혈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습관도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닿으면 그 어떤 차이도 극복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이상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아직 우리가 덜 성숙해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차이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지 서로를 미워하는 방편일 수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차이와 다름이 축복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귀히 여기고 즐거워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알고 서로를 즐거워할 때 거기서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만나는 이웃들에게 천국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오면 천국을 맛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선적으로 기초공동체를 건실하게 세우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기초공동체를 우리교회에 적용하면 가정과 목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기초공동체인 가정과 목장을 든든히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세우셨습니다. 부모와 목자와 장로와 교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인 가정과 목장의 일꾼들인 부모와 목자와 장로와 교역자들이 먼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꾼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꾼이란 예수님의 성숙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가정과 목장이 건실한 기초공동체가 될 것이며 교회도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우리 모두 가정과 목장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찬송가 216

 

 

 

 

요약

사울의 목자장인 도엑의 밀고를 예상한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호를 받기 위해 가드로 도피합니다(21:10). 가드는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거세게 반대합니다(21:11). 이에 다윗은 미치광이 흉내를 내어 간신히 가드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비천한 처지로 전락한 다윗이 자신이 깨달은 것을 시로 표현합니다(34). 이 시편에서 다윗은 사울로 인해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 하나님이 아닌 아기스에게로 피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즉시 회개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통하여 다윗은 곤경에 처할 때 하나님께 피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믿음 없이 행한 경솔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호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연단하셨습니다.

다윗은 가드에서 도망쳐 나와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아둘람 굴로 피신합니다(22:1). 그곳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 달라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142:6~7). 이에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먼저는 다윗의 가족들이 찾아왔고, 일단의 무리들도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4백여 명이나 되었습니다(22:1~2). 그들은 사울의 통치 아래 환난과 박해를 당하던 자들이었고, 불공정한 경제정책 아래 가난하여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22:2). 이들은 다윗과 함께 좋은 세상을 이루게 될 날을 꿈꾸며 의기투합합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다윗과 함께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군사들로 성장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둘람 굴에서 떠나 모압으로 이동합니다. 모압 왕을 만나 자신의 부모를 돌보아달라고 부탁하자, 모압 왕은 그들이 기거할 요새까지 선처해주며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환대합니다(22:3~4). 다윗은 도피생활 중에 연로하신 부모가 겪게 될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고,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그때 선자지 갓이 다윗에게 모압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일행들을 데리고 헤렛 수풀로 이동합니다(22:5). 다윗이 평생 헌신해야 할 소명의 땅이 바로 헤렛 수풀이 속한 유다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에 제사장 아비아달이 합류합니다(22:20). 그로써 다윗 왕과 선지자 갓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4백여 명의 식솔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4백여 명의 사람들을 섬기면서 다윗은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10년간의 도피생활은 왕업을 훈련하는 최고의 기간이었습니다.

 

 

설교의 부제가 공동체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 4백여 명은 아둘람 굴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위기를 수차례 겪고 극복하면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믿음과 인격은 점점 더 성숙해졌습니다. 건실한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고 함께하는 일에 성과가 있을 때에는 신이 나지만, 의견이 틀어지고 서로 싸울 때는 몸살을 앓습니다. 그럴 때 공동체를 떠나 혼자 살고 싶어지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공동체는 우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만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단련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공동체를 세우고 섬기셨습니다. 공생애 사역 때는 물론이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공동체에게 나타나셨고(고전 15:6), 승천하신 후에도 약속대로 제자공동체에게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2:1~4).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세워졌습니다(2:41~47). 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한밭교회도 58년 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했고 함께 가기보다는 앞서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갔고 결국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는 전혀 하나 될 수 없었던 자들이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생각과 가치관, 혈통, 성격, 습관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닿으면 그 어떤 차이도 극복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공동체입니다. 아직 우리가 덜 성숙해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이와 다름이 축복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귀히 여기고 서로에게서 배웁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이유를 발견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알고 서로를 즐거워할 때 거기서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만나는 이웃들에게 천국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선적으로 기초공동체를 건실하게 세우십니다. 우리교회에도 기초공동체인 가정과 목장을 든든히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세우셨습니다. 부모와 목자와 장로와 교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의 일꾼들이 먼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꾼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과 목장이 건실한 기초공동체가 될 것이며 교회도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우리 모두 가정과 목장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장에서의 나눔

1. 아둘람 공동체에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요?

2.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는 교회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요?

3.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나요?

  • 경건한 예배, 진정한 효행
    • 설교자 : 안정순 목사
    • 성경본문 : 창세기 4장 3~12절
    • 설교일 : 2022-05-08
  •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19장 13~15절
    • 설교일 : 2022-05-01
  • 다윗과 아비가일: 반려자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5장
    • 설교일 : 2022-04-24
  • 예수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6~22절
    • 설교일 : 2022-04-17
  • 하나님의 열심, 우리의 열심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이사야 62장 1~12절
    • 설교일 : 2022-04-10
  • 다윗과 사울: 기름부음을 받은 왕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4, 26장
    • 설교일 : 2022-04-03
  • 다윗과 광야: 피난처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3장 1~29절
    • 설교일 : 2022-03-27
  • 다윗과 그의 사람들: 공동체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1장 10절~22장 5절
    • 설교일 : 2022-03-20
  • 다윗과 도엑: 성소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1장 1~9절
    • 설교일 : 2022-03-13
  • 다윗과 요나단: 우정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18장 1~16절
    • 설교일 : 2022-03-06
  • 다윗과 골리앗: 믿음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17장 32~40절
    • 설교일 : 2022-02-27
  • 다윗과 사울: 섬김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16장 14~23절
    • 설교일 : 2022-02-20
  • 다윗과 사무엘: 하나님의 선택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16장 1~13절
    • 설교일 : 2022-02-13
  • 다윗과 예수님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22장 41~46절
    • 설교일 : 2022-02-06
  • 은혜로 사는 삶(2)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열왕기하 5장 1~27절
    • 설교일 :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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