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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열왕기하 2장 1~11절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21-05-16

(왕하 2:1-11) 선생과 제자

2021-5-16 교사주일 설교 / 곽창대 목사

 

 

전문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교사주일로 지킵니다. 선생과 제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공교육의 파행입니다. 공교육 파행의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일까요? 사도(師道, 스승이 지켜야 할 도리)와 제자도(제자가 따라야 할 길)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공교육의 회복을 위해 사도와 제자도의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신앙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지도력과 제자도가 교회 안에서 바르게 회복되어야 교회의 건강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하려고 하는 주제도 영적 지도력의 계승과 제자도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오늘 본문의 중심인물입니다. 이 둘은 선생과 제자 사이였습니다. 선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제자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선생인 엘리야가 한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야는 자기가 곧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역의 때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자기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지도력의 이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몇 년 전에 엘리야에게 사역을 마무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6)” “네가 할 일은 끝났으니 이제 선지자 직을 엘리사에게 이양하고 물러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그 당시 엘리야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운영하던 선지학교의 생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생도들 가운데서 엘리야의 후계자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평범하게 농사일을 하고 있던 엘리사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지명 받은 엘리사는 즉시 엘리야의 뒤를 좇았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읽은 대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선지자 직을 물려주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최종목적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제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선생의 가장 중요한 사명, 제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선생의 최고 보람이 무엇일까요? 자기보다 더 나은 제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선생의 최고 소망이 무엇일까요? 제자들을 통해 열리게 될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선생이 제자들을 위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제자들에게 모든 것 다 맡기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후배와 제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일하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것이 선생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이게 잘 안됩니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편법을 써서 자기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못난 지도자입니다. 과욕은 분별력과 통찰력을 막아 우둔한 자가 되게 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지도자는 결국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고야 맙니다. 이것을 역사는 숱하게 실증으로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런 선생이나 선배나 지도자가 많으면 그 집단의 역사는 후퇴하고 맙니다.

 

 

오래 전에 산을 잘 타는 교수와 함께 등반을 했습니다. 그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이내 내려와야 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뒷사람을 위해서 정상의 자리를 빨리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하신 일도 제자훈련이었는데 3년간 그 일을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 하늘로 훌쩍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옆에 계속 계셨다고 한다면 제자들의 사역은 심히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늘 예수님의 결재를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에 부딪혀도 예수님께 달려가 도와달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떠나셨기에 제자들의 믿음이 도약했습니다. 앉은뱅이를 향해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핍박이 몰려와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립하는 신앙이 무엇인지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도 예수님처럼 제자 삼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재생산하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기로 헌신한 젊은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고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왜 가정마다 허약해져 갑니까? 부모들이 자녀의 바른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가정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신이 없습니다. 아내들도 자녀들의 학업에만 온통 매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을 기대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허약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 한국교회가 지금 휘청거리고 있습니까? 신앙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지난 2-30년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 그 쓴 열매를 우리가 따먹고 있습니다. 나라와 가정은 물론 교회를 살리는 길은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과 부모들에게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높이 지으면 지을수록 더 심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부모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대 관심사도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과 교회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누구를 세우고 왔느냐? 나의 일을 누구에게 맡기고 왔느냐? 너를 계승하여 지금 누가 내 일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빌리 그래함 목사 같은 위대한 전도자를 칭찬하시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빌리 그래함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웠던 무명의 일꾼을 칭찬하시지 않겠습니까?

 

 

엘리야의 최종적인 사역 가운데 하나가 엘리사를 선생으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를 재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그러면 반드시 또 다른 주님의 제자를 길러내어야 합니다. 재생산하는 제자만이 성숙한 제자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고상한 목표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 합니다. “여러분은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성숙한 제자입니까?” 이것이 엘리야에게서 배우는 제자도입니다.

 

 

엘리야의 제자였던 엘리사를 보면서 성숙한 제자상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만 생각하겠습니다.

 

 

성숙한 제자는 자기가 일해야 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용기 있게 헌신하는 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엘리야가 선지자로 일하던 때에 여러 곳에 선지 학교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있었습니다. 그 선지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엘리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의 생도들이 아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승천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지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제자들에게 자신의 승천을 미리 알려주었던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특별 계시로 친히 그들에게 가르쳐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선지학교의 생도들은 엘리야 선생님의 승천을 예고 받았고 그래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승천하시면 앞으로 선지학교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자기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했습니다.

 

 

엘리사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도들처럼 선생님의 승천 때문에 긴장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떠남으로 자기에게 부과될 사명의 부담감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엘리야 선생님이 모든 일을 하셨고 자기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나서서 그 막중한 사명을 져야 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 때의 엘리사의 심정은 마치 전쟁에 나서는 최고 지휘관의 심정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선지자는 위험천만한 자리에 자주 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자주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셔서 직언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자리는 누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자리였습니다. 홀로 감당해야 할 고난 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엘리사의 심적 부담감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엘리사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직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 직을 맡을 만한 자격자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부족을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은 소명의식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를 선지자로 세우고 계신다는 자각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름 앞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드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엘리사가 자각한 것입니다.

 

 

성숙한 제자는 지금이 바로 자신이 일할 때임을 아는 자입니다. 지금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겸손히 자신을 드리는 자가 성숙한 제자입니다. 엘리사가 그랬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는 대답했습니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러분,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아닙니까? 믿은 지 오래되어 이미 선생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가정과 일터, 조국과 세계, 교회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고자 지금 비장한 각오로 일어서야 할 자가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까?

 

 

주님의 성숙한 제자는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는 자입니다. 그 사명 앞에 자신을 던지는 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때입니다. 엘리사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절박한 소환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십시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던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던지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의 위대한 일에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그럴 때 새 시대가 열립니다.

 

 

성숙한 제자는 사명완수를 위해 자기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얘기는 엘리야가 자신이 일했던 선지학교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그리고 여리고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엘리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고 그곳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마지막까지 엘리야를 뒤좇았습니다. 다른 생도들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단순한 마음으로 엘리야를 끈질기게 뒤좇았습니다.

 

 

엘리야는 자기를 뒤좇고 있는 엘리사의 열망을 읽었습니다. 요단강을 갈라 건넌 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엘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준비된 대답이었습니다. “선생님, 당신의 성영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제게 있기를 원합니다(9).” 갑절이라는 단어는 유산 분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분배할 때 장자에게는 다른 자녀들이 받는 유산의 두 배가 할당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달라는 요청은 영적으로 장자의 복을 달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님의 영성을 그대로 닮고 싶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끝까지 좇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의 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는 선지자의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엘리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엘리야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 영적인 능력은 금방 목격했던 요단강을 가르는 능력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엘리야 선생님이 갈멜산에서 혼자서 아합 왕과 우상을 섬기던 어용 종교인들과 대항하여 싸워 승리했던 바로 그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막힘없이 교통했던 깊은 영성이었습니다. 그 같은 능력이 엘리사에게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 그 능력을 전수받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엘리야 선생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엘리사는 외쳤습니다. “선생님, 떠나시기 전에 당신을 사로잡으셨던 성령님의 능력을 제게 물려주고 가소서! 이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로 암울합니까?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리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제게 있습니다. 지금 제 모습으로는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대적 사명에 충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간구합니다. 제게 당신의 영성과 능력을 주소서!”

 

 

곧 떠나게 될 엘리야 선생님을 향한 엘리사의 소원은 분명했습니다. “당신을 꼭 닮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성령의 충만)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위해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당신의 백성을 살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담대한 청원을 듣고는 엘리야는 심정이 후련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열어젖히고 계시는 새로운 시대를 본 것입니다. 이제 자신은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일꾼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 사람 엘리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자신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엘리사의 청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10절입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엘리야의 이 대답은 애매모호한 대답이 아닙니다. 확신에 찬 대답입니다. 엘리사의 청원대로 엘리사를 기꺼이 축복한 것입니다. “엘리사야, 고맙다! 네 거룩한 열망이 그러하니 나는 너무 기쁘다!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나를 쓰신 하나님께서 너도 강력하게 쓰실 것이다! 네가 지금 보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오게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네게 부어주실 능력은 그보다 클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능력보다도 더 큰 능력을 네게 입히실 것이다. 그 증거는 나의 승천이다! 내가 승천하는 것을 네가 곧 목격하게 될 것인데 그 광경을 통해 너를 붙잡아 일하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엘리사가 목도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십시오! 11절입니다. 바로 그 능력으로 엘리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열망은 무엇입니까? 엘리사처럼 거침없이 청원할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우리를 향해서도 최고의 소원 하나를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 소원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여기 엘리사처럼 거침없이 내놓을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능력 있는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하오니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엘리야의 생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엘리야 선생님의 사라짐을 앞두고 우왕좌왕했습니다. 영적인 지각이 없었습니다. 그들 속에는 거룩한 열망이 없었습니다. 시대적 사명감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간구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엘리사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임을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강 건너까지 엘리야 선생님을 바싹 뒤좇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분명했습니다. 강렬했습니다. 시대적 소명에 사로잡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이 어떤 때입니까? 이 시대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 코로나로 얼마나 위축되었는가, 영적으로 얼마나 어두워졌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시대적 소명에 눈을 뜨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는,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기 위해 영적 통찰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지금은 주를 위해 일어나 일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둘째는,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이 시대를 위해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소서!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를 써 주소서! 하오나 능력이 없사오니 제게 깊은 영성을 주소서. 당신의 영으로, 당신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지난 목요일 13일이 예수님의 승천기념일이었는데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지상대명령입니다.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지상대명령은 다름 아니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3년간 같이 지내면서 보여준 대로 행하기만 하면 여기 이스라엘 민족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살려 그들을 제자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담긴 명령입니다. 그리고는 그 지상대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고는 그것까지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행 1:8의 성령강림의 약속이었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지도력의 완벽한 이양입니다.

 

 

제자들은 그 즉시로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 모여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의 강림을 사모하며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랬더니 열흘이 못되어 성령이 그들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운동이 오늘에까지 이어졌고 주님의 약속대로 온 세상에 주님의 제자들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딱 한 가지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제자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성숙한 제자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는 시대적 소명에 가슴이 요동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깊은 영성을 갈구하는 사람, 성령의 충만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 즉 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역에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길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과 교회학교의 교사들은 우리의 자녀들, 교회의 자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길러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헌신하기를 축복합니다. () 찬송 320

 

 

 

 

요약

영적 지도력과 제자도가 바르게 회복되어야 교회의 건강한 미래가 보장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선생과 제자 사이였습니다. 선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제자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습니다(왕상 19:16). 하나님께 지명 받은 엘리사는 즉시 엘리야의 뒤를 좇았고, 몇 년 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선지자 직을 물려주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처럼 선생이 제자들을 위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후배와 제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일하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셨기에 제자들의 믿음이 도약했고, 결국 그들도 예수님처럼 제자 삼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기로 헌신한 젊은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고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정마다 허약해지고 한국교회가 휘청거리는 이유는 신앙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가정은 물론 교회를 살리는 길은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과 부모들에게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또 다른 주님의 제자를 길러내어야 합니다.

 

 

엘리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성숙한 제자의 두 가지 모습을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성숙한 제자는 자기가 일해야 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용기 있게 헌신하는 자입니다. 엘리사의 승천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선지학교의 생도들이 불안해합니다. 엘리사는 그들과 다르게 선생님의 떠남으로 자기에게 부과될 사명의 부담감 때문에 긴장합니다. 그 당시 선지자는 위험한 자리에 자주 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자주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셔서 직언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놀랍게도 선지자 직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자신만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성숙한 제자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께 겸손히 자신을 드리는 자입니다. 또한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에 자신을 던지는 자입니다. 엘리사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절박한 소환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의 위대한 일에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 그럴 때 새 시대가 열립니다.

둘째, 성숙한 제자는 사명완수를 위해 자기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입니다. 엘리야가 자신이 일했던 선지학교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이리저리 이동합니다. 이동할 때마다 엘리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고 그곳에 머물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마지막까지 엘리야를 뒤좇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엘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있기를 원한다고 대답합니다(9). 엘리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엘리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올라갈 준비를 마칩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자신이 승천하는 것을 보면 너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엘리사에게 말합니다(10). 엘리야의 승천을 본 엘리사는 영적인 능력을 얻습니다(14~15). 엘리사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임을 알고 선생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그는 시대적 소명에 사로잡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시대적 소명에 눈을 뜨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는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기 위한 영적 통찰력, 둘째는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지상대명령입니다(28:18~20). 그 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8). 그리고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지도력의 완벽한 이양입니다. 제자들은 그 즉시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 모여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의 강림을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열흘이 못되어 성령님이 그들 가운데 강림하셨고, 제자들은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운동이 오늘에까지 이어졌고 주님의 약속대로 온 세상에 주님의 제자들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이 땅에 예수님의 성숙한 제자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제자는 시대적 소명에 가슴이 요동치는 사람, 깊은 영성과 성령의 충만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역에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길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과 교회학교의 교사들은 우리의 자녀들, 교회의 자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길러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헌신하기를 축복합니다.

 

 

 

 

목장에서의 나눔

1. 선생이 제자들을 위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3.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 바울처럼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15~23절
    • 설교일 : 2021-07-25
  • 바울처럼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9~14절
    • 설교일 : 2021-07-18
  • 바울처럼 교회를 사랑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1~8절
    • 설교일 : 2021-07-11
  •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116편 1~19절
    • 설교일 : 2021-07-04
  • 전쟁과 평화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46편 1~11절
    • 설교일 : 2021-06-27
  • 그 신랑에 그 신부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45편 1~17절
    • 설교일 : 2021-06-20
  • 주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까?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44편 1~26절
    • 설교일 : 2021-06-13
  •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42편 1절 ~ 43편 5절
    • 설교일 : 2021-06-06
  • 새 가정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마가복음 10장 28~31절
    • 설교일 : 2021-05-30
  • 오순절 성령을 사모하고 구하자
    • 설교자 : 안용운 목사
    • 성경본문 : 사도행전 2장 1~13절
    • 설교일 : 2021-05-23
  • 선생과 제자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열왕기하 2장 1~11절
    • 설교일 : 2021-05-16
  • 부모와 자녀(2)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2장 18~26절
    • 설교일 : 2021-05-09
  • 부모와 자녀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1장 9~20절
    • 설교일 : 2021-05-02
  • 주님을 기다립니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25편 1~22절
    • 설교일 : 2021-04-25
  • 만유의 주 만왕의 왕, 하나님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24편 1~10절
    • 설교일 :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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