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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484954373
    본문말씀
    창세기 21장 1~21절
    성경본문
    창세기 21장 1~21절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20-11-29

 

<아브라함 15>

(21:1-21)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2020-11-29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전문

지난 몇 년간 우리교회에 아이들이 꽤 태어났습니다. 올해는 13명이 출생했습니다. 지금도 6가정이 출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녀의 선물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가 하나님의 기업이요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하기에 가정과 교회에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 주님의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임신한 부부들을 보면 대체로 당당합니다. 아내의 몸무게가 10-20kg 불어도 남편은 신이 납니다. 아내의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마치 자기 머리에 면류관을 쓴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남편들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외출하기를 좋아합니다. 외식도 자주하고 시장도 같이 보면서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합니다. 아내들도 생각이 달라집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열심히 먹습니다. 몸매 걱정하지 않습니다. 배가 산더미처럼 불러와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배를 쭉 내밀고 다닙니다. 아이를 임신한 것, 부부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입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부는 물론 가족과 이웃이 모두 기뻐합니다.

 

오늘 본문도 임신과 출산에 관한 얘기입니다. 늙은 할머니 사라가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사라의 나이 89세였고 남편 아브라함은 99세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생물학적으로는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을 청년처럼 회복하셔서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부부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25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솔들과 가축들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자녀의 복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자녀의 수가 많을수록 복 받은 가정으로 여겼습니다. 좀 못 살아도 자녀가 많으면 어깨에 힘주고 다녔습니다. 반대로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자녀가 없으면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은 아브라함 가정의 최고 경사였습니다.

 

사라의 배가 불러갈수록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채워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쳤습니다. 터져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2절 하반절: 사라가 임신하고 ...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이름 하여 이삭이라고 하였고. “웃음이라는 뜻.

6-7: 사라의 노래

 

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안고서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내게 큰 은혜 베푸셨다!” 자신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기쁨을 안겨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주신 아들 이삭은 은혜 위에 은혜였습니다.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생존에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 공기, , 계절, 밤과 낮, 식물, 친구, 이웃, 사회, 국가, 가정, 남편, 아내, 자녀 등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보편적인 은혜 혹은 일반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

 

하나님은 일반 은총뿐만 아니라 특별한 은혜(특별 은총)도 주십니다. 기적적인 은혜, 파격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아브라함 부부에게 주신 아들의 선물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본문 1절은 사라가 아이를 잉태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음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라를 돌보셨다. 사라에게 행하셨다!” 행하셨다는 것은 기적을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돌보셨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방문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찾아오셔서 사라의 몸을 친히 안수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창조의 기운을 불어넣으셔서 생동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납니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 법칙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가능한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매이시는 분은 아닙니다. 자연법칙을 초월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후로 창조의 일을 멈추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아브라함 부부에게 행하셨듯이 생산의 능력을 회복하시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 은총만을 바라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얼마든지 파격적인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무엇보다도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겸손의 표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믿고 사모하는 표가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겸손하면서도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형편을 세밀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게 은혜 베푸십니다. 때로는 특별한 은총을 부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보편적인 은혜를 넘어 특별한 은총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제대로 된 성도는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 은혜를 간증하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는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창 12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2: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13:14-16)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5:4-5)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다메섹 엘리에셀)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7:5-8) [5] (아브람이 99세 때)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17:15-16, 21)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18:10-14) [10] (하나님의 사자)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로 하여금 약속의 성취를 25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5년이 지난 후에도 약속하신 복을 다 주신 것이 아니라 약속의 첫 열매만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삭이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룰 아들 하나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여전히 기다려야 할 약속이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친히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한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에게 오랜 세월 동안 후손의 출생을 기다리게 하신 것은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리기 위해 한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특별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져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 부부가 하나님의 약속을 곡해하기도 했습니다.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랬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 편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대체로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환영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사건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게 하십니다. 이것을 아브라함 부부가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부부가 지내온 25년간의 세월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고 반복하여 촉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약속하신 최고의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인데, 그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하사하시는 최고의 선물이십니다. 최고의 특별 은총입니다.

 

그 최고의 약속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시대마다 믿음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그 약속을 믿게 하시고 후대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요 성경의 역사입니다. 그 결정적인 약속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대로 곧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 부부에게 약속하셨던 이삭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예표 한 것입니다.

 

(3:15-16)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4:4-6)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일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면 예수님으로 인해 특별한 은총을 누립니다.

신분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를 얻습니다. 진리를 깨닫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인지 올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 받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대장부가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기도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삽니다.

 

최고의 약속을 요약하면, 대표적으로 다음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8:31-32)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유일한 구주요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절기입니다. 더 나아가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속에 거하게 됩니다.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함을 교훈합니다.

 

오늘 본문 8절 이하를 보면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납니다. 인간의 정리로 보면 참으로 박절하고 안됐습니다.

 

8절을 보세요. 이삭이 잘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젖을 떼는 시기가 3세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유아들의 생존율이 지극히 낮은 때에 아이가 세 살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불러 잔치하는 것이 중동의 풍습인데 아브라함도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부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 이삭이 잘 자란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이삭이 아브라함의 최고 상속자임을 공포하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쁘고 좋은 날에 이복 형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습니다. 놀렸다는 뜻은 희롱하다, 비웃다, 멸시하다, 핍박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때 이스마엘의 나이가 17세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희롱은 고의적인 희롱이었습니다. 같은 아들이고 더구나 장남이기도 한 자기가 이식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골탕 먹였습니다.

 

이것을 사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한 집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요구했습니다. 여종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추방하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기에 아내의 박절한 요청에 마음이 심히 아팠습니다. 그 일 때문에 깊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11).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12-13).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장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생명을 보존하셨고 이스마엘이 장성하여 애굽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여기에 대해 영적인 해석을 했습니다.

 

(4:22-23, 28-31)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두 흐름을 봅니다. 이스마엘 계통과 이삭 계통입니다.

이스마엘 계통: 인간의 자연적인 혈통, 아래로 난 자, 인간의 정과 욕심의 후손,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에만 머무는 사람들, 육신의 생명 가운데 점점 시들어 죽어가는 자들, 세상의 기업만 누리는 사람들

이삭 계통: 하나님 약속의 후손, 위로부터 난 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태어난 후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누리고 사는 자들, 새 생명 가운데 사는 자들, 결국 하늘의 기업을 받을 자들

 

이 두 계통이 서로 싸우면서 한 집에 사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래서 갈라서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갈라섬은 영원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 집에서 살 수 있기 위해 임시적으로 갈라서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스마엘이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을 축복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님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할 때 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은혜요 새 생명의 은혜입니다. 그것 외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을 깨우치도록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집에서 추방한 것입니다. 물론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큰 민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행복한 나라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다른 민족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겪었던 역사요 대다수 인류들이 경험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민족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특별 은총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속으로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방식이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현저하게 다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

 

(5:16-17)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9-26)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것이 다음 주일에 살펴보게 될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류하던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22절입니다.

 

(21:22)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은혜 받은 자답게 산다면 불신자들이 질문할 것입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께서 네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확실하구나!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줄 수 있겠니?” 이것이 불신자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1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습니다. 보편적인 은혜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한 달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은혜를 겸손히 간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대로 더욱 감사하십시오! 사라처럼 노래하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십시오!

은혜의 깊은 바다에 잠기기 위해 성령 안에서 사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입니다. 그 열매를 이웃들이 보고 우리에게로 나아올 것입니다. 나아와서는 자기들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물을 것입니다.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학업과 산업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 찬송가 202

 

 

요약

아브라함 부부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25년이 되어갑니다. 그 동안 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긴 세월동안 자녀의 복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때가 되어 이삭을 출산합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안고서 기쁨을 안겨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주신 아들 이삭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생존에 필요한 보편적인 은혜, 일반은총을 주십니다(1:17). 이뿐 아니라 특별한 은혜도 주시는데, 아브라함 부부에게 주신 아들 이삭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창조의 기운을 불어넣으셔서 생동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만을 바라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겸손의 표입니다. 믿음으로 겸손하면서도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형편을 세밀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는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2:1~2, 7; 13:14~16; 15:4~5; 17:5~8, 15~16, 21; 18:10~14).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를 25년이나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25년이 지난 후에도 큰 민족을 이룰 아들 하나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부부에게는 여전히 기다려야 할 약속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친히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대체로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부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여러 일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부부에게 약속하셨던 이삭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예표한 것입니다(3:15~16; 4:4~6; 14:6; 요일 5:11~12).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특별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8:31~32).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그렇기에 무슨 일을 당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셋째,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 큰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쁜 날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멸시하듯 놀립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사라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한 집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종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추방하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일로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사라의 요청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11~13). 그 말씀을 듣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두 계통이 서로 싸우면서 한 집에 사는 것은 불행이기 때문에 다시 한 집에서 살기 위해 임시적으로 갈라서야 했습니다(4:22~23, 28~31). 그리고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이삭을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이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을 축복해야 했습니다(12:2~3). 영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님을 축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그러지 않았고, 그 결과로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으로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방식이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5:16~17, 19~26).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올해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습니다. 보편적인 은혜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한 달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은혜를 겸손히 간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의 깊은 바다에 잠기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입니다. 그 열매를 이웃들이 보고 우리에게로 나아올 것입니다. 나아와서는 자기들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물을 것입니다.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학업과 산업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목장에서의 나눔

1. 어떤 신앙이 올바른 신앙인가요?

2.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3.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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