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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431141850
    본문말씀
    잠언 6장 6~11절
    성경본문
    잠언 6장 6~11절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20-06-21

<평화 10>

(잠 6:6-11) 평화를 깨는 큰 죄(4): 나태

2020-06-21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전문

신앙의 선배들은 다양한 죄들 가운데 큰 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큰 죄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7가지를 든다면,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큰 죄들이 평화를 깨는 근원적인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평화를 누리고 나누려면 이 큰 죄들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죄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지금까지 평화를 깨는 큰 죄 가운데 세 가지를 다루었습니다. 교만, 시기, 분노입니다. 오늘은 나태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나태를 큰 죄로 여겼는데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나태가 큰 죄라면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그리고 어떻게 나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태의 정의

 

나태를 영어로 “sloth”라고 하는데 그 뜻 가운데 하나가 “나무늘보”입니다. 나무늘보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꼼짝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더라도 아주 최소한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나태 하면 나무늘보처럼 몸이 굼뜨고 행동이 느린 모습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나태는 안식과 평화를 깨는 큰 죄 가운데 하나로서의 나태입니다. 헬라어나 라틴어로 나태(“아케디아”)는 무관심을 뜻합니다.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아무것도 행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나태입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언어학자였던 도로시 세이어즈는 말합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간섭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살아야 할 분명한 목표도 없고, 죽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저 살아있는 죄가 나태다.”

 

죄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행하는 죄와 행하지 않는 죄입니다.

* 행하는 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죄

* 행하지 않는 죄: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죄

나태가 행하지 않는 죄에 속합니다. 

 

지어낸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 천국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들어가려고 하니까 베드로 사도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군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소!” 그 말을 듣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남을 해롭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거짓말도 안 했습니다. 도둑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살인이나 간음은 흉내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당신의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나태의 표본입니다. 주인이 장사하라고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결산할 때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내어놓았습니다. 그때 주인이 크게 책망했습니다.

 

(마 25:26-30)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세기 말의 초대교회 가운데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랬습니다. 

* 사데 교회: 처음 사랑을 잃은 교회,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교회

* 라오디게아 교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

 

이처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선을 행하기는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것, 대충하는 것이 죄입니다. 사랑의 상실만 아니라 사랑의 결핍까지도 죄입니다. 대충 사랑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러므로 나태가 죄임에 틀림없습니다.

 

나태의 특성

 

신원하 교수는 나태의 다양한 특징들을 나열합니다. 영적 메마름, 정신적 고갈, 마음 내키지 않음, 지루함, 기쁨의 부재, 뒤로 미루기, 핑계대기 등등입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뒤로 미루기와 핑계대기입니다.

 

CCC 한국대표를 역임하셨던 김준곤 목사님께서 조선일보에 오랫동안 “예수 칼럼”을 게재했는데 그 가운데 “내일 마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귀신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전략을 짜려고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자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노련한 늙은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유혹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열심히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사랑도 하자!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 이처럼 게으른 자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데 선수입니다.

  

게으른 자는 또한 변명과 핑계대기의 선수입니다.

 

(잠 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면 뒤로 뺍니다. 모험을 감행하지 않습니다. 몸을 사립니다. 이런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일이 진척이 안 됩니다.

 

나태의 원인

 

나태의 원인도 다양하겠지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의 상실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게 되면 마음이 복잡하고 산란하게 됩니다. 삶의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태에 길들여지고 맙니다. 

 

나태는 우울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과 만물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감동하지 않는다면 우울감에 빠져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역할 수 없습니다. 분노가 해소되지 않을 때에도 우울감이 찾아듭니다. 우울감이 심화되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됩니다. 바라고 성취하고 싶었던 것이 좌절될 때도 우울감이 찾아들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나태하게 됩니다. 마귀의 간계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무기력감과 절망이 깊어지고 자살 충동까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나태로 이어지게 하는 우울증을 지혜롭게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나태의 결과 (세 가지)

 

첫째로 나태는 육체의 건강을 해칩니다. 일중독과 과로로 인해 몸에 고장이 나고 질병이 걸리기도 하지만 게을러서도 병이 생깁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을 때,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을 때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저항력이 약해집니다. 그러면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둘째로 나태는 육체만 녹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녹슬게 합니다. 정상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잔꾀만 부립니다. 거기서 거짓과 속임수가 나옵니다. 부정과 부패가 쏟아져 나옵니다. 학생들이 시험 칠 때 부정행위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병폐 중의 하나는 일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행복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해도, 더럽고 귀찮고 힘든 일은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소위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에는 일꾼을 구하려 해도 사람이 없습니다. 대신에 쉽게 돈을 벌 궁리를 합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탕해서 편히 살려고 머리를 굴립니다. 심지어 돈을 빌려 무리하게 증권에 투자하고 땅 투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기도 칩니다. 몇 번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망합니다.

 

(잠 6:9-11)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전 10: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셋째로 게으른 자는 그 마음에 정욕과 음욕이 불붙기가 쉽습니다. 나태는 미루기, 자기합리화, 자기비난, 자포자기의 단계로 퇴행합니다. 이러한 퇴행이 깊어지면 즉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쾌락에 중독되기가 쉽습니다.

 

자고로 부지런한 동네에는 놀음판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동네에는 도둑도 없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자는 일락을 좋아하거나 술판을 두드리거나 한탕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게으른 자는 갖가지 죄의 덫에 걸립니다. 나태에 길들여지면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됩니다. 술이나 도박이나 섹스나 마약에 중독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나태야말로 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태의 극복 (네 가지)

 

1. 삶의 우선순위와 목적을 바르게 세우고 실천하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먼저 추구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6:33)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요약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내어야 할 삶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나태를 물리쳐야 할 이유는 나태가 하나님의 최고계명인 사랑의 요구에 반기를 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나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열심히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신앙의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나태는 큰 죄입니다.

 

(히 10:24-25)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롬 12:10, 13)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경은 거듭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즐거워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되 최고로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되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 힘껏 사랑하고 뜨겁게 사랑하라! 가정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데 힘을 다해 헌신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과 친지와 교회의 식구들과 직장의 동료들과 이웃들과 세계의 백성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2. 일상의 삶에 충실하라.

 

(살후 3:6-12)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명령했습니다. 요약하면,

  • 생계유지를 위해 스스로 자립하라!
  • 네 손으로 수고하여 먹고 살아라! 
  • 남에게 기대지 말고 살아라!

 

우리는 완성될 천국에 들어가 안식할 때까지 지금 여기서 일하다가 가야 합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다가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게 될 천국도 일이 없는 곳이 아닐 것입니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히 일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일한 것만큼 결실이 있고 그래서 날마다 행복이 증대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지금 여기서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면 지금 여기서 어느 정도 천국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땀 흘려 수고할 때 인생의 행복과 보람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서는 게으른 자를 경책하면서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잠 6:6-8)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개미는 부지런합니다(6절). 즉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주 작은 것을 묘사할 때 “개미만 하다, 개미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개미는 천하장사입니다. 자기 체중의 몇 십 배를 들어 나를 수 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개미야말로 훌륭한 엔지니어입니다. 정교하고 튼튼하게 터널을 파고 창고를 짓고 아기 방을 꾸미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방한 준비도 척척 해냅니다. 

 

아주 작은 개미가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부지런함과 끈기와 협력입니다. 한 마리의 개미가 자기 몸의 몇 십 배나 되는 파리를 끌고 가려고 애를 씁니다. 끝까지 달라붙어서 힘을 씁니다. 그래도 안 되면 동료들을 불러 옵니다. 쉼 없이 줄을 이어 몰려옵니다. 함께 먹이를 운반합니다. 

 

무슨 일이든 능력이 모자라서 못했다면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해서 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도 맡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능력이 없다고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귀히 여기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면 창조적인 능력이 발휘되고 마침내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못하는 일은 함께 하면 됩니다. 이것이 개미에게서 배우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1. 개미에게서 배우는 것은 자발성입니다(7절).

 

7절이 말씀하는 요지는 개미가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감독하지 않아도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의 차이점은 그리 큰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한 자는 일거리가 보이지만 게으른 자는 일거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자는 계속 일하고 게으른 자는 가까이에 있는 일도 보지 못하고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게으른 자는 대체로 불만이 가득합니다.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왜 귀찮은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가? 꼭 그 일을 해야 하는가?”라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자는 “그래,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동료들에게도 좋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기뻐하실 거야! 그러니 즐겁게 하자! 지금은 힘이 들어도 하고 나면, 나도 여러 사람도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합니다. 그러니 일이 즐겁고 창의력이 생기고 거기서 자신의 역량이 발휘되고 기적도 일어납니다.

 

코로나19 비상사태의 여파로 우리의 경건생활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잡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을 갖고, 계획한 대로 성경을 읽고, 중보기도의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고, 주일의 공예배와 목장모임 시에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가끔 목장식구들을 만나거나 전화로 문안하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찾아서 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1. 개미에게서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8절). 

 

8절을 보세요. 개미가 여름과 추수철에 부지런히 양식을 모으는 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은 봄가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도 있고 추운 겨울도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번갈아 옵니다. 그 중에서 반드시 인생의 겨울이 온다는 것,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의 겨울이 혹독한 시련의 겨울일 수도 있고 죽음을 앞에 둔 인생만년의 겨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인생의 겨울을 여러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국어책에 “개미와 배짱이” 우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설명 안 해도 무슨 얘긴지 아실 것입니다. “금번 여름에 여러분들은 베짱이가 되겠습니까? 개미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배운 대로 답은 분명합니다. 개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도히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부자가 된다면 그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선용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며 선한 일에 힘씁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높이는데 급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기와 명예가 주어지면 그것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인기와 명예를 얻는데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매사에 성실합니다.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할 때 거기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성도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쉬고 싶은 여름에도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개미처럼 인생의 겨울을 대비하고자 여름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개미처럼 여름을 가장 왕성하게 일하는 계절로 삼아야 합니다. 이러한 일꾼들에게 하나님은 가을과 겨울에 풍성한 결실이 있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개미처럼 땀 흘려 일함으로써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신나는 여름 되기를 바랍니다.

 

3. 나태를 극복하는 최고의 해결책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해도 우리의 지혜와 결심과 힘만으로는 그 일에 매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계 3:19)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성장을 갈망하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자신이 받은 은사나 능력이나 기회를 적극적으로 선용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이런 영적 갈망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부요를 뽐냈습니다. 그들이 자랑했던 부요는 영적인 부요가 아니라 세상적인 부요였습니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나태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핵심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마음의 중심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교제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넉넉히 공급하십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회개하는 자의 심령에 주시는 신령한 은혜 가운데 으뜸가는 은혜가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일상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최고목적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힘 있게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마음에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땅의 것에만 만족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늘의 신령한 은혜에는 정말 둔감하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지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그러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나태를 극복하게 하시고 일상에서 예수님처럼 열심히 살게 하십니다.

 

4. 규칙적으로 적당히 휴식하라.

 

나태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성경은 그 열심이 도에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적당히 쉬지 않고는 고장이 날 수밖에 없는 한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쉬어야 합니다.

 

적당한 휴식은 나태가 아닙니다. 나태는 평화로운 삶을 깨트리는 큰 죄이지만 적당한 휴식은 평화를 유지하고 확산하키는 아주 좋은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나태를 극복하려면 적당하게 휴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일터로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인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덜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건강과 면역성의 강화를 위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귀가합니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가정생활에 충실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간도 대폭 줄어들어서 대기의 질이 꽤 좋아졌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우리가 얻은 큰 유익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전처럼 또다시 쉼 없이 바쁘게 살아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처럼 욕심이 지나쳐서 쉼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느리게 살기(Slow Life)” 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없는 마을(Slow Village)도 생겼습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씨가 “작고 낮고 느리게 살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우리들은 분명 문명의 혜택 속에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 문명이 얼마나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보려하지 않는다. 느린 평화와 조촐한 행복, 끝없는 자유와 아름다운 창조, 따스한 사랑과 한없는 존경, 적막한 기다림과 오랜 그리움 같은 사람의 덕목들은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크고, 빠르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을 찾아 바쁘게 헤맨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법의 손의 조종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쫓아다닌다. .... 무엇이 그리 바쁜가. 어디를, 어디로 왜 그리 부산하게들 달려가는가. 저기 있는 산도 좀 보자. 저기 가는 저 노인의 발걸음이라도 좀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저기 서 있는 나뭇가지에 수도 없이 피어나 작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이파리라도 좀 한가하게 앉아 바라보자. 마른 땅에 떨어지는 한 줄기 빗방울, 허공을 흘러오는 작은 눈송이들, 한적한 공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저 들 끝에 묻어오는 소낙비, 저물어 어두운 골목길 흐린 불빛 속에서 새어나오는 아내와 남편의 한가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 불러오는 오만과 독선으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병들어 죽어간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자연에게 반문명적이다.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은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또 다른 얼굴을 하고 겁나게 달려온다. 작고, 낮고, 느린 것들은 이 세상에 사소하고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인간들의 맨살에 천천히 가 닿고 깊숙이 스민다. 우린 그렇게 시대착오적이고 싶은 것이다.”

 

김용택 시인이 추천하는 “작고 낮고 느리게 살기”는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적잖은 도전을 줍니다. 

 

하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휴식은 김용택 시인이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휴식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균형을 이루는 휴식입니다.  

 

<십계명의 제4계명> 안식일 계명: 평일과 주일의 조화

(신 5:12-15)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평일은 평일답게 열심히 일하고, 주일은 주일답게 휴식해야 합니다. 주일에는 노동을 중지하고 휴식하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가족과 교우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섬겨야 합니다.  

 

<일해야 할 낮과 휴식해야 할 밤의 조화>

(시 127:1-2) 『[1]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며칠 전에 읽었던 글입니다. “한 농부가 열심히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농장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숫자가 늘어난 가축들과 넓어진 밭을 혼자 관리할 수 없어서 농장 일을 도울 일꾼을 뽑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농장 일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드디어 한 명이 지원했습니다. 농부는 그 지원자에게 당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태풍이 몰아치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잡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슨 장점인지 의아해했지만 일손이 너무 급했던 농부는 그 친구를 채용했습니다. 새로 채용된 일꾼은 다행히 일을 성실하게 해서 농부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폭풍이 농장을 덮쳤습니다. 폭우와 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일어난 농부가 서둘러 농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채용한 그 일꾼은 숙소에서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흔들어 깨웠지만 잠에 취해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당장 축사와 밭이 걱정이 되어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축사 지붕은 이미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밭 주변에는 깊게 배수로를 파두어서 전혀 피해가 없었습니다. 농부는 면접 당시에 언제든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밤에 깊은 잠을 자기 위하여 낮 동안에는 열심히 일하여 만반의 준비를 착실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낮에는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주님의 품에 안겨 숙면을 취해야 합니다. 밤에는 일하지 말고 잠을 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밤에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여 규칙적으로 자야 합니다. 밤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잠을 즐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생동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나태가 평화를 깨는 큰 죄 가운데 포함된 이유는 나태로부터 파생되는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태를 심각한 죄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나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 가운데 4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 삶의 우선순위와 목적을 바르게 세우고 실천하라.

2) 일상의 삶에 충실하라.

3) 성령으로 충만하라.

4) 규칙적으로 적당히 휴식하라.

 

이미 성경의 여러 구절을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 일하고, 적당히 휴식하면서 기도할 것을 권하는 네 구절을 나태를 극복하는 양약으로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구절들을 음미하시면서 나태를 잘 극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전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찬송가 316, 330장

 

 

요약

  나태는 안식과 평화를 깨는 큰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태’는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아무것도 행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주인이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결산할 때 그대로 내어놓았던 종의 행동이 나태의 표본입니다(마 25:26~30).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대충 선을 행하고 대충 사랑하는 것도 나태입니다(계 1장). 나태에는 다양한 특징들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뒤로 미루기와 핑계대기입니다(잠 22:13).
  나태의 가장 큰 원인은 인생의 목적과 사명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삶의 의욕도 사라집니다. 나태는 우울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울감이 심화되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됩니다. 무기력감과 절망이 깊어지면 자살 충동까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나태로 이어지게 하는 우울증을 지혜롭게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나태는 세 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 육체의 건강을 해칩니다. 나태하면 무기력해지고, 그러면 저항력이 약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음을 녹슬게 합니다. 나태는 정상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잔꾀만 부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몇 번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망합니다(9~11절; 18:9; 전 10:18). 셋째, 마음에 정욕과 음욕이 불붙기가 쉽습니다. 나태는 미루기, 자기합리화, 자기비난, 자포자기의 단계로 퇴행합니다. 퇴행이 깊어지면 즉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쾌락에 중독되기가 쉽습니다. 나태야말로 악의 뿌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삶의 우선순위와 목적을 바르게 세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내어야 할 삶의 목적입니다(마 22:37~40). 나태는 하나님의 최고계명인 사랑의 요구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신앙의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나태는 큰 죄입니다(히 10:24~25; 롬 12:10, 13).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과 친지와 교회의 식구들과 직장의 동료들과 이웃들과 세계의 백성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둘째, 일상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를 경책하면서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씀합니다(6~8절). 개미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6절). 개미가 큰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부지런함과 끈기와 협력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도 맡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개미는 자발적으로 일합니다(7절). 코로나19로 경건생활이 흐트러질 수 있는 요즘, 마음을 다잡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훈련해야 합니다. 개미는 미래를 위해 준비합니다(8절). 개미가 여름과 추수철에 부지런히 양식을 모으는 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개미처럼 인생의 겨울을 대비하고자 여름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꾼들에게 하나님은 가을과 겨울에 풍성한 결실이 있게 하십니다.
  셋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계 3:17). 그래서 예수님께서 열심을 내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회개는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신령한 은혜, 성령의 충만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일상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최고목적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힘 있게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넷째, 규칙적으로 적당히 휴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적당히 쉬지 않고는 고장이 날 수밖에 없는 한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쉬어야 합니다. 나태는 평화로운 삶을 깨트리는 큰 죄이지만 적당한 휴식은 평화를 유지하고 확산하키는 아주 좋은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나태를 극복하려면 적당하게 휴식해야 합니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휴식해야 합니다(신 5:11~15). 주일에는 휴식하면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가족과 교우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섬겨야 합니다. 낮에는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주님의 품에 안겨 숙면을 취해야 합니다(시 127:1~2). 밤에는 일하지 말고 잠을 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밤에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하여 규칙적으로 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생동합니다. 

 

  나태가 평화를 깨는 큰 죄 가운데 포함된 이유는 나태로부터 파생되는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와 목적을 바르게 세우고 실천함으로, 일상의 삶에 충실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규칙적으로 적당히 휴식함으로 나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장에서의 나눔
1. 나태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2. 나태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3. 어떻게 하면 나태를 극복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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