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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64557442
    성경본문
    출애굽기 32:25~29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10-06

<출애굽기 강해 19>

(32:25-29) 하나님 편에 서라!

2019-10-06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32:1~6). 모세가 하산했을 때, 십계명 두 돌 판을 산 아래로 던지며 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런 후에 모세가 아론을 문책하자, 아론은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32:21~24). 모세는 제사장직을 맡게 될 아론의 무책임한 모습과 백성들의 방자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고 외쳤습니다(26). 그러자 아론을 비롯한 레위 자손들이 모세에게로 나아왔고, 모세는 그들에게 칼로 동족들을 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27). 레위 자손들은 그 명령에 순종했고, 그렇게 해서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삼천 명가량 죽었습니다(28). 이 사건을 통해 아론을 비롯한 레위 자손들은 성막에서 봉사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구별된 일꾼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제사장 직분이 모든 성도들에게로 확산되었습니다(벧전 2:9).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세계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거룩한 일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 선 자는 어떤 자들일까요?

첫째, 우상숭배자들로부터 돌아서는 자들입니다. 레위 자손들은 우상숭배를 방조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외침에 즉시 결단하여 하나님께로 그들의 걸음을 돌이켰습니다(27).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께 나오는 자,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날에는 사람, , 명예, 권력, 학위, 직장, 쾌락과 같이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 대신에 앉혀놓은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주는 평안과 즐거움은 잠깐일 뿐 결국 억압과 허무로 귀결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주님으로 가득 차 있으면 참된 자유와 만족과 기쁨과 평강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지금도 나에게로 나아오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미혹하게 하는 우상에게서 지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자들입니다. 모세가 레위 자손들에게 동족을 죽이라는 끔찍한 일을 명령한 이유는, 그 길이 아니고는 백성들을 성결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 편에 서는 자는 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거룩한 통로를 뚫는 자입니다. 참된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공의 속에서만 꽃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사랑과 함께 거룩함도 자리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가정과 교회, 거룩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희생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는 자들입니다. 레위 자손들은 자기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칼로 죽여야 했습니다. 동족들을 죽일 때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6~27).

주님을 섬기고 교회와 가정, 이웃을 섬기는 일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고통과 희생이 있는 곳에 하늘의 위로와 복이 따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무와 사람들을 위해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레위 자손들은 400년 전에 선친 레위의 비열한 행위 때문에 야곱에게서 저주를 받았었습니다(49:5~7). 그 당시 레위가 뽑아든 칼은 정의와 사랑의 칼이 아니라 정욕과 거짓과 보복의 칼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을 위해 칼을 뽑았습니다. 이 한 번의 헌신으로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400년간의 저주를 단번에 종식시켰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거룩하게 구별되는 복을 받았습니다(29). 더 나아가 그 일로 인하여 큰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들과 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헌신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오늘도 큰 복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오늘 우상에게서 돌이켜 하나님께 헌신하면, 오늘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오늘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죄와 싸우십시오! 묵묵히 고난 받는 자리에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십시오!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지금 응답하셔서 거룩한 제사장으로 자신을 드리십시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헌신입니다(12:1).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편에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오늘 본문은 이해하기 힘들 뿐 아니라 아주 끔찍한 사건의 기록입니다. 장소는 시내산 부근의 광야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자기에게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홀로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의 제작과 성막에서 봉사하게 될 제사장의 임명과 직무에 관련된 규례들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받았습니다. 25-3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을 만나 율법을 받고 있는 동안에 산 아래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40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자고 아론에게 종용했습니다.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모세가 죽었을지도 모르니 앞으로 이 험난한 광야 길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만한 영적 지도력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헌납한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백성들에게 소리쳤습니다(32:3).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그리고는 다음날을 여호와의 축일로 선포했습니다. 다음날 일찍부터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 모여 각종 제사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춤추며 뛰놀았습니다(32:6). 애굽 사람들이 하던 종교의식을 따라한 것입니다.

 

이 같은 행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24:3-8 참고)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배도였습니다. 그들이 순종하겠다고 약속한 십계명 가운데 1, 2, 3계명을 파기하는 행위였습니다.

 

1계명: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2계명: 우상을 섬기지도 말고 만들지도 말라.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2:9-10)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는 범죄한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32:11-13)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가 하산했을 때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절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백성들을 보고서는 십계명의 두 돌 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불살라 부수어서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를 물에 뿌려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며 우상숭배자는 반드시 쓴 맛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후에 모세는 자기 형 아론을 가차 없이 문책합니다(21). 지도자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너무 완악하여 어쩔 수 없었다고 그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변명합니다(22-24). 아론의 비굴한 모습을 보면서 모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25절을 보세요.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을 때 제사장직에 관한 규례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그의 직계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시면서 성막에 봉사할 때 입을 거룩한 옷을 제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28:1-3) [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될 아론이 그 모양이니 모세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아론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기도를 이미 드렸습니다.

 

(9: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아론이 큰 죄를 범했지만 다시 한 번 기회 주시기를 모세가 하나님께 중재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여는 중대한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26).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그때 아론을 비롯한 레위 자손들이 다 모여 모세에게로 나아왔습니다.

 

레위 자손들에게 모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칼로 동족들을 쳐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27). 여기서 모세는 이 명령이 자신이 지어낸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그 명령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자들이 삼천 명가량 되었습니다(28). 여기 삼천 명은 금송아지 숭배의 주동자들로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론을 비롯한 레위 자손들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며 그로써 그들이 성막에서 봉사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 드리는 일을 집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섬김을 통해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구별된 일꾼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제사장 직분이 모든 성도들에게로 확산되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세계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거룩한 일을 부여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내어야 할 제사장적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계의 백성들을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사장인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한 모세의 외침은 오늘 우리도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일화입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였습니다. 링컨이 이끌고 있는 북군에게 불리한 전세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기독교협의회의 한 대표가 링컨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심을 확신하십니까?” 그렇게 질문한 것은 링컨 대통령으로 하여금 곤경의 때를 잘 인내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질문에 링컨 대통령이 답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링컨의 태도가 우리의 태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관건입니다.

 

저는 오늘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편에 선 자는 어떤 자인가? 둘째는 하나님 편에 선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는가?

 

첫째로 하나님 편에 선 자는 어떤 자들일까요?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상숭배자들로부터 돌아서는 자가 하나님 편에 선 자들입니다.

 

레위 자손들이 금송아지 숭배에 깊이 연루되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상숭배를 막지 못하고 방조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레위 자손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이 어떠하든지 간에 문제는 지금 그 잘못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강조합니다. 레위 자손들은 모세의 외침에 즉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로 그들의 걸음을 돌이켰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제의 잘못을 깨닫고 오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하십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우상숭배는 꼭 금송아지 같은 형상을 만들어 절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 대신에 앉혀놓은 모든 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족들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직장 상사들이나 동료들 때문에 하나님을 차선으로 미루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상입니다. , 명예, 권력, 학위, 직장, 쾌락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을 조사하면서 하나님께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에 어떤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데 걸림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 주님으로 가득 차 있으면 참된 자유와 영원한 만족과 넘치는 기쁨과 전천후 평강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외에 다른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결국 허전함과 염려와 쓰라린 고통이 쌓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이 주는 평안과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그것도 거짓 평안이요 짝퉁 기쁨입니다. 결국 억압과 허무로 귀결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주님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나에게로 나아오라!”고 외치십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중간한 상태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자손들은 즉시 돌이켜서 모세에게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하여 우상숭배에서 지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자가 하나님 편에 선 자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편에 선 레위 자손들에게 칼을 허리에 차고 나아가 백성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삼천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레위 자손들에게 이 같이 끔찍한 일을 하게 한 것은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아니고는 백성들을 성결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외과의사가 암을 사정없이 도려내듯이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죄악을 도려내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 자손들이 든 칼은 정의와 사랑의 칼입니다.

 

참된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공의 속에서만 꽃핍니다. 죄악을 눈감아주거나 두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족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거룩함이 자리 잡도록 도와주고 섬겨야 합니다.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거룩함이 따르는 사랑만이 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편에 서는 자는 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거룩한 통로를 뚫는 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사랑과 함께 거룩함도 자리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가정, 거룩한 교회, 거룩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는 자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희생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는 즐거움만 따르지 않습니다.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칼로 죽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한 일이지만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칼을 빼들어 동족들을 죽일 때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아픔을 감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4:26-27)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람을 미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전도자의 길,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가시밭길과 같은 고난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님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김 장로님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노동을 사랑하며 아주 검소하고 성결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31년 전에 작고하셨지만 그의 자녀들, 자부들, 손자들 그리고 많은 후배들이 뒤를 이어 국내외 여러 곳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여 김 장로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둘째 며느리 홍미자 권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홍 권사님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신 분입니다. 이 자매가 김 장로님의 둘째 며느리로 시집오자마자 가나안농군학교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을 따라 김 장로님께서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음식만 만든 것이 아니라 설거지까지 해야 했습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고무신을 신으면 밤 열 시가 넘어야 벗을 수 있었습니다. 늘 물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연히 발바닥에 굳은살이 베기고 손바닥은 수세미처럼 거칠어졌습니다. 그래서 새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을 때 지문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열 손가락 중에 새끼손가락을 빼놓고는 모두 지문이 없어져서 면서기가 도대체 어느 식당에서 일하기에 이렇게까지 되었냐?”고 투덜대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시아버지 김 장로님께서 세 며느리를 불러놓고 그 동안 시집온 후 수고가 많았으니 소원 한 가지씩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세 자부는 하나같이 잠을 실컷 자면 좋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은 24시간 동안 실컷 자도록 허락받고는 정말 행복하게 잠을 잤었다고 합니다. 홍미자 권사님이 이 간증을 하신 때가 가나안농군학교의 주방 일을 한 지 자그마치 25년이 되던 때였다고 합니다. 두서너 해가 아니고 25년이나 그 일을 하셨다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일까요? 가치 있는 일에는 언제나 아픔과 수고가 따릅니다.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가정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는 남모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희생이 있는 곳에 하늘의 위로와 복이 따릅니다. 이것이 신앙세계의 법칙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무와 사람들을 위해 수고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편에 선 자들입니다.

 

이제 둘째로 하나님 편에 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9절을 보세요. 희생의 아픔을 감수한 레위 자손들에게 모세가 말했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헌신하게 되었다는 뜻은 성별되었다,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신의 기회, 섬김의 기회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축복하십니다. 모세가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레위 자손들이 이 일로 인해 거룩하게 구별되는 복을 받은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레위 자손들이 400년 전에 선친 레위 때문에 야곱에게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4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겜 추장의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하고는 디나를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겜 청년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와서 디나를 자기 아들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둘째인 시므온과 셋째인 레위가 음모를 꾸몄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 결혼할 수 없으니 결혼하려면 먼저 세겜 사람들 모두(포경수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세겜의 장정들이 모두 할례를 받고 집에서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의 집에 차례로 들어가 세겜 사람들을 칼로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 일로 인해 야곱의 가족들이 원치 않은 피난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야곱이 임종할 때 아들들과 자손들의 장래를 예언했는데 그때 다른 아들들은 모두 축복했는데,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저주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야곱의 유언이 창 49장에 기록되어 잇습니다.

 

(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49:5-7)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의 자손들을 그렇게 저주한 것은 시므온과 레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아주 비열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뽑아든 칼은 정의와 사랑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정욕과 거짓과 보복의 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레위 자손들이 뽑아든 칼은 하나님을 위해 뽑은 칼이었습니다. 이때 레위 자손들이 행한 그 한 번의 헌신이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400년간의 저주를 단번에 종식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그 일로 인하여 레위 자손들은 큰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 번의 결단과 헌신이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회개하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덮으시고 오늘과 내일의 놀라운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시므온 자손들은 그 후에 또다시 배도의 길에 빠졌습니다. 민수기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거의 마쳐갈 때 모압 평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장정들이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정들과 행음한 모압 여자들이 자기들의 신인 바알브올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했는데 초대받은 이스라엘 장정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고 바알브올에게 절까지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모세가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자들을 색출하여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동시에 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였던 시므리가 자기 막사에 이방여인을 데리고 들어가 행음했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레위의 자손이자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그 막사에 들어가서 시므리와 이방여인의 배를 꿰뚫어 죽입니다. 그로써 염병이 그쳤는데 그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습니다.

 

(25: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

 

이로써 시므온 자손들은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야곱의 저주가 그들에게 머물렀습니다. 신명기 33장을 보면,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했는데 시므온 지파는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레위 자손들에게는 엄청난 복을 예언했습니다.

 

(33:8-11)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9: 오늘 본문 출애굽기 32장의 사건을 요약한 것입니다.

10-11: 모세가 레위 자손이 받을 복을 열거합니다. 다섯 가지의 복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복

(2) 거룩한 제사를 집전하는 복

(3) 재물의 복

(4) 수고한 대로 풍성한 결실을 얻는 복

(5) 악인으로부터의 보호받는 복

 

얼마나 큰 복입니까?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저주에서 완전히 역전된 복입니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까? 하나님 편에 서서 헌신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오늘도 큰 복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헌신하면 오늘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오늘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성도 여러분, 레위 자손들처럼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우상을 버리고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십시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성결의 씨를 뿌리십시오! 묵묵히 고난 받는 자리에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십시오!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거룩한 부르심에 지금 응답하셔서 거룩한 제사장으로 자신을 드리십시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자기를 본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거룩한 제사장들의 소명입니다. 바울이 이 소명을 아주 명료하게 말씀했습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헌신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사장 직무에 헌신하라고 하실까요? 우리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자리에 서있습니까?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편에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찬송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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