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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55776648
    성경본문
    출애굽기 16:1~15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8-25

<출애굽기 강해 14>

(출 16:1-36, 봉독 1-15) 아침에 주의 영광을 보리라

2019-08-25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장막을 치고 걷으며 나그네로 살아야 했습니다. 예배 훈련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신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에 빠져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2~3절; 시 78:17~20). 이 원망은 여호와를 향한 원망이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8절). 그러나 모세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5절). 이제 백성들은 아침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큰 영광, 새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앞당겨 봅니다(히 11:1).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 광야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셨습니다. 특별히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신 8:2~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먹을 것 때문에 염려하지 않게 하시려고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격과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딤후 3:16~17). ‘만나’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생명의 떡을 먹는 자가 영생의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시기 위해서 성찬식까지 제정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들로 나가 만나를 거두면서 들판에 이슬처럼 내려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온전한 영광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요 1:14).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훨씬 복된 자들입니다. 더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그 성경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영광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히 누리기 위해 우리 편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15절).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을 먹는다는 것은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금번 가을에 성경읽기와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둘째, 만나를 매일 먹어야 합니다(20절). 오늘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말씀은 오늘 먹어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그 날에 필요한 양식을 먹을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작용합니다. 엿새 동안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사는 성도는 다릅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 준비하여 영양가가 풍부한 설교를 해야 마땅합니다. 대신에 여러분도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인으로 자랍니다.

  셋째, 만나를 아침에 먹어야 합니다(21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가장 적절한 시간은 이른 아침입니다.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신선한 은혜와 영광을 맛본 자는 하루를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아침 20~30분정도 성경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면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던 백성들이 부족한 양식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아침마다 만나를 이슬같이 내리셨습니다. 영광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자신의 영광을 풍성히 내리십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만나와 같이 성경도 참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초라하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늘의 모든 영광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병든 신앙생활을 회복시킵니다(히 4:12). 백성들이 장막만 밀치고 나가기만 하면 만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성경도 우리 가까이에 있어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하는 게 어려우신 분들은 우리교회나 가까운 교회에 가셔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아침마다 성경과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가까이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히 맛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을 떠나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고 기록합니다. 엘림에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15:27). 이스라엘 백성들이 휴식하고 원기를 회복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거기에 더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림을 떠나야 했습니다. 엘림이 휴식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해도 거기서 마냥 머물 수 없습니다. 그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는 도중에 영구히 살 집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그들은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잠깐 머물다가 떠날 곳에 집을 짓는 것은 정신 나간 일입니다.

 

가나안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미래적 천국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듯이 우리도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영구히 살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성도의 마땅한 삶은 “단순한 삶(simple life)”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지금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한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시내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훈련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으로 가는 길에 신 광야를 거쳐야 했습니다. 제법 큰 사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광야를 통과할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꼭 한 달이 되었습니다. 1월 15일에 출발하여 이제 2월 15일이 되었습니다(1절). 그 한 달 동안 그들은 애굽에 나올 때 챙겨 나왔던 식량으로 지냈습니다. 이제 식량이 동이 났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서 식량을 구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2-3절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심판의 재앙을 내리셨을 때에 자기들도 애굽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것 아닌가.”라고 원망했습니다. 이 원망에 대해 모세는 8절 하반절에서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한 원망이 아니라 여호와를 향한 원망”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시 78편에서 그 때의 상황을 잘 묘사합니다.

 

(시 78:17-20)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런데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한 것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처한 환경도 같습니다. 지도자인 모세가 식량 문제에 대해 부담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난국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4-5절).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용할 양식을 백성들에게 내려주실 것인데 그 양식으로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녁에는 구원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할 것이며 아침에는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6-7절 전반절).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아침에 주의 영광을 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신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애굽을 떠난 후 지금까지 한 달 동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지냈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영광으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만끽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신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었습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광야와 바닥난 양식 주머니만 크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시련의 때가 하나님의 새로운 영광을 보게 될 기회라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사모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큰 영광, 새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시련이 닥쳤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그 시련을 보십시오! 그러면 그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바라던 것 이상으로 새롭고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누리게 될 신령한 복입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을 정의한 대로 믿음은 소망의 기초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합니다. 그 소망의 핵심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믿음이 있는 자는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앞당겨 봅니다.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현재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십시오! 성도가 직면한 위기와 시련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절호의 기회입니다.

 

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는데 그 영광은 저녁에 내린 메추라기와 아침에 내린 만나로 드러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추라기보다는 만나를 강조하는데, 이 만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마다 새롭게 부어주신 자신의 영광이었습니다.

 

이 만나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적어도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로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신 8:2-3)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는 모세의 고별설교입니다. 모세는 자기의 사명이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회고하면서 고별설교를 했습니다. 그 고별설교 중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신 이유와 목적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이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백성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먹을 것 가지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먹고사는 것 때문에 염려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대신에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신구약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구절이 디모데후서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신구약성경이 우리의 인격과 삶을 온전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오늘의 만나입니다.

 

둘째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다음 날에도 군중들이 예수님께 몰려와 요청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증명할 표적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는데 그 정도의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어야 우리가 당신을 메시아로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요청과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요 6:32-33)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랬더니 군중들이 다시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요 6: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그 요청에 예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요 6:49-51)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나인데 어제 너희들이 보았던 오병이어의 기적이 내가 메시아임을 증거 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주는 떡은 너희 조상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먹었던 만나정도가 아니다. 너희 조상들이 아침마다 만나를 거둔 것은 광야에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그들이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떡은 다르다. 내가 주는 떡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이다. 그 생명의 떡이 바로 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생명의 떡으로 하늘에서 내려올 메시아의 그림자인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 예수님의 성육신(탄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임을 요한복음은 시종일관 증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영접하는 것을 떡을 먹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식까지 제정하셔서 그 규례대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자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인해 영생하는 복을 누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한 만나, 신령한 만나입니다. 이 만나는 한 번 먹으면 더 이상 주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떡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떡이 예수님이십니다. 

 

아직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떡을 먹듯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받아들이면 됩니다. 떡을 먹듯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죄와 죽음에서 해방됩니다.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속히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큰 손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들로 나가 만나를 거두면서 들판에 이슬처럼 내려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전날 여섯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틀 치의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즉 여섯째 날에 두 배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6일 동안 맛본 하나님의 영광을 회상하며 안식했습니다. 

 

오늘 본문 32-34절에서는 항아리에 넣게 한 영원히 썩지 않는 한 오멜의 만나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항아리 속에 있는 만나는 얼마 후에 시내 광야에서 제작하게 될 성막의 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언약궤 속에 십계명을 새긴 두 돌 판과 함께 넣어둘 것이었습니다. 이 한 오멜의 썩지 않는 만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두 돌 판이나 만나를 통해 드러난 구약의 영광은 장차 나타날 영광 과 비교하면 그림자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구약의 그림자 영광이 온전한 영광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자신의 아들 예수님과 그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만천하에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훨씬 복된 자들입니다. 더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기록된 성경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그 성경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영광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히 누리기 위해 우리 편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중심소재인 “만나”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신 목적이 중요한데, 만나는 먹으라고 주셨습니다(15절).

 

만나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경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뜻합니다. 

 

혹 여러분은 성경을 잘 보관해두었다가 주일에 예배드리러 올 때 꺼내가지고 오지는 않습니까? 읽지 않는 성경책, 일주일 내내 책상이나 자동차 안에 놓여있는 성경책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책에 줄도 긋고 느낀 점들을 기록해도 좋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성경읽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중세의 암흑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기독교가 미신의 종교, 사람에게 의존하는 타락한 종교가 되는 것, 아주 쉽습니다. 성경을 덮어두면 그렇게 됩니다. 반대로 기독교 안에 다시 부흥과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까? 그것도 아주 간단합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 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만나는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우리 마음 중심에 모실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그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과 교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올해도 200일 성경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9월 1일부터 가을학기 삶공부도 개설합니다. 오늘 목회서신에 썼지만, 금번 가을에 성경읽기와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2) 만나는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어제의 만나로 오늘을 살 수 없게 하셨습니다(20절). 

 

마찬가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간혹 착각합니다. 오늘 큰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가 일주일이나 한 달이나 일 년을 갈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실패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꺼번에 큰 은혜, 큰 영광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또 그렇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매순간, 새 은혜, 새 영광으로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말씀은 오늘 먹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 자체는 여러분이 먹든지 먹지 않든지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펼쳐서 그 날에 필요한 양식을 먹을 때에만 그것이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설교를 경청하고 계시지만 이 설교를 일주일의 양식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설교는 주식이 아니라 별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주식입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내내 성경을 한 줄도 읽지 않고 지내다가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제 설교가 죽을 쑤었습니다. 그랬어도 일주일을 다시 굶은 채 주일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다시 멀건 죽을 쑤었습니다. 그러니 두 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허기가 져서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재미가 없어집니다. 교회에 와도 별 유익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 아주 쉽습니다. 성경을 주일에만 펼치면 반드시 영양실조에 걸리고 맙니다.

 

그러나 엿새 동안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사는 성도는 다릅니다. 목사가 죽을 쑤어도 일주일에 한 끼 정도 먹는 죽은 별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목사가 죽을 쑤는 설교를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 준비하여 영양가가 풍부한 설교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사의 책임입니다. 대신에 여러분들도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목사와 마찬가지로 제게도 목회관이 있습니다. 제 목회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을 자립하는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제 목표는 여러분을 제게 의존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여러분의 입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신자들에게는 당분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상담하고 조언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잠깐일 따름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가능한 빨리 목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써 매일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립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이웃과 지체들을 잘 도울 수 있습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움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승리하는 삶의 요체입니다.

 

3) 만나는 아침에 거두어야했습니다. 해가 떠서 지면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만나는 스러져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만나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에 들로 나가 허리 굽혀 수고해야 했습니다(21절).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가장 적절한 시간은 이른 아침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 다음에는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 밀려있는 일들이 우리의 시간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신선한 은혜와 영광을 맛본 자는 하루를 힘 있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2-30분정도 하나님과 1:1로 친밀하게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 중요합니다. 영어로 “No Bible, no breakfast!”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침을 굶는 분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고쳐야 하겠습니다. “No Bible, no lunch!” “나는 아침에 성경읽기를 빼먹은 날에는 점심까지 굶겠다!”

 

성도 여러분, 매일 이른 아침에 2-30분정도 성경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우리의 일터에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랬지만 양식이 떨어졌다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유황불을 비같이 내리신다고 해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만나”를 이슬같이 내리셨습니다. 그것도 광야생활 40년 동안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한 사람분의 하루치 양식은 한 오멜의 만나였습니다. 한 오멜은 약 2리터입니다. 무게로 500g이라고 친다면, 인구가 2백 만 정도이므로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에 내리신 만나의 분량은 천 톤쯤 됩니다. 5톤짜리 트럭으로  2백 대가 매일 이스라엘 진중에 와서 만나를 부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40년간 아침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자신의 영광을 풍성히 내리십니다. 그 풍성한 영광 가운데 지극히 적은 분량 2리터만 공급받아도 우리는 하루를 넉넉히 살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2-30분정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거기서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나 교제한다면 하루를 힘 있게 살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nothing)”라는 뜻입니다. “볼품없다, 보잘것없다.”라는 뜻입니다. 그 같은 만나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농축되어 있었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로 보잘것없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초라하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예수님이 최고의 보배입니다. 그 안에 하늘의 영광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의 한두 구절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믿음의 훌륭한 선배들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변화된 것도 몇 절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한두 절의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생동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칼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병든 심령을 쪼개고 환부를 도려냅니다. 양약이 되어 우리를 고칩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의 건강이 회복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위력입니다. 매일 아침에 몇 구절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그 능력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기 위해 산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멀리 여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돈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장막만 밀치고 나가기만 하면 만나가 수북이 내려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의 스마트폰에 신구약성경이 엡으로 깔려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인 예수님께서도 그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멀리하는 성도는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가 사는 길이며 이웃을 살리는 길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내일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침에 눈을 뜰 때 제일 먼저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주님, 이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셔서 성경을 펼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영광의 주님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혼자서 아침에 성경을 묵상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우리교회나 가까운 교회에 가셔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아침에 주님과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넉넉히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이 성장하는 정상적인 길입니다. 아침마다 성경과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가까이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히 맛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찬송 20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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