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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53168560
    성경본문
    출애굽기 15:1~21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8-11

<출애굽기 강해 12>

(출 15:1-21) 터져 나오는 찬송

2019-08-11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포로로 사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께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며 큰 구원을 경험한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그 찬송을 ‘모세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찬송을 기록하게 하셔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부흥할 때마다 터져 나왔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다윗 왕 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탄생, 세례 요한의 출생 때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세계교회사나 한국교회사를 살펴보아도 영적으로 부흥할 때 성도와 교회에 찬송이 가득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능력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서 자연스레 터져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가슴 한 가운데서 샘솟는 찬송을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찬송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모세의 노래’를 통하여 찬송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불렀던 합창입니다. 이 노래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합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회중 전체의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때문에 교회의 공동 예배와 여러 모임 때 부르는 찬송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는 세대 간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교회 내 세대 간의 간격이 자꾸 벌어져서 좋아하는 찬송 스타일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기여해야 할 찬송이 오히려 공동체를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찬송한다면 찬송의 스타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아무리 많더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음악과 문화의 다양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계 7:9~12). 그리고 모두가 함께 찬송하려면 가능한 곡조와 가사가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공동체 의식이 함양됩니다.

  교회는 찬송하는 공동체입니다. 모일 때마다 찬송해야 합니다. 세상 얘기만 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부르는 찬송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의 영적 성숙도는 우리가 지금 드리는 찬송의 수준에 비례합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찬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찬송의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불신앙과 정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 죄 용서를 체험하면 다시 찬송도 회복이 될 것입니다.

  둘째, ‘모세의 노래’에 담긴 찬송의 주된 내용과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총 18절로 되어 있습니다(1~18절).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12번 반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33번 나옵니다. 합하여 총 45번이나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이 찬송의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의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13~18절). 베드로 사도 역시도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벧전 1:3~9). 이처럼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는 자는 무슨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고전 15:55~57).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죄와 사탄과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일생은 찬송의 일생이어야 마땅합니다(시 150:6).

 

  찬송이 없는 사람은 호흡이 끊어진 사람과 같습니다. 살아 생동하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하늘에서는 하지 않겠지만 찬송만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싸움터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폭염, 나라의 암담한 상황, 가족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여 찬송하는 공동체야말로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는 천국입니다. 함께 하나 되어 부르는 찬송을 통해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천국을 생생하게 경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문

두세 시간 정도라도 등산하여 산 정상에 오르면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설악산으로 캠핑을 가서 며칠 지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대청봉 등산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대청봉을 올랐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랐기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유럽에 살 때 가족들과 함께 설경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올랐습니다. 정상까지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여 증명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왔는데 그때는 그렇게 큰 감격이 없었습니다. 힘들여 등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고서는 산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산은 타야 합니다. 숨을 헉헉거리며 산을 오를 때 인생의 의미를 배웁니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 볼 때 그때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금주 목요일은 광복절입니다. 74년 전,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그날,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큰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크게 박해를 받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상의 나라 일본을 망하게 하시고 그렇게 갈구하던 신앙의 자유를 주셨다고 감사의 찬송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참 많이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앞부분의 영어 가사는 이렇습니다.>

In moments like these, I sing out a song.

I sing out a love song to Jesus.

 

영어 가사에서 “노래하네”는 단순히 “sing”이 아니라 “sing out”입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와 같은 때엔 난 외쳐 노래하네”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쓴 시인이 무슨 경험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경험 때문에 외쳐 노래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도 ‘터져 나오는 찬송’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죽음과 절망의 바다에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길 좌우에 거대한 물 벽이 세워졌습니다(14:29). 여러분이 지금 홍해 가운데로 통과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제 같았으면 하나님의 광대한 능력과 위엄에 소름이 끼쳤을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대열을 따라 행진하면서 차츰 두려움은 사라지고 감격이 차올랐을 것입니다. 

 

14:27-28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동편 언덕에 다다랐을 때 뒤따르던 애굽의 군사들이 다시 덮인 바닷물에 다 수장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산 정상에 올랐을 때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큰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쳐 노래하는 것, 지극히 당연합니다.

 

큰 구원을 경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가 15:1-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19-21절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노래합니다. “모세의 노래”로 불리는 이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불렀던 노래이므로 일반 노래가 아니라 찬송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노래가 실려 있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성경 전체를 찬송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있고 그 일을 목격한 성도들의 감격이 베여있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높이고 찬송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중요한 가치는 이 노래가 보통 노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랜 역사를 거친 후에 마침내 터져 나온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로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이었던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적지 않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께 찬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찬송을 묻어두셨다가 이제 비로소 한 찬송으로 터트려내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그 찬송을 기록하게 하셔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하셨습니다.

 

물론 모세 이전에 불렀던 성도들의 노래가 별 가치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개개인이 불렀던 모든 찬송이 이제 한데 어우러져서 대합창이 되어 터져 나온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을 보면 찬송이 터져 나왔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영적 부흥의 시대였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가장 융성했을 때가 다윗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다윗 왕이 찬송을 가장 많이 작곡하고 작사했습니다. 찬양대를 조직했는데 성전예배 때마다 그 찬양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송을 많이 불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 맞물려 여기저기서 찬송이 터져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를 만났을 때 마리아와 잉태한 예수님을 위해 축복송을 불렀습니다. 마리아도 답가로 노래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출생했을 때 그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도 노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노래했습니다.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의 부모들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올랐을 때 시므온 할아버지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상에서 울려퍼진 찬송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뵈올 때 모든 피조물이 찬송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교회사나 한국교회사를 살펴보아도 영적 부흥의 시기에는 성도 개개인과 교회에 찬송이 가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터져 나오는 찬송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나온 생애 동안 저절로 찬송이 터져 나온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였으며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여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노래했는데 여러분들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하여 노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까? 

 

성도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는 찬송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하여 터져 나오는 찬송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터져 나오는 찬송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확인한 대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 편에서 준비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믿음과 갈망입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믿고 간절히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임재와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슴 한 가운데서 샘솟듯이 찬송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이제 “모세의 노래”에서 발견되는 특징들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불렀던 합창이었습니다(1절 상반절).

 

“모세의 노래”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합창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함께 불렀던 찬송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모세가 즉석에서 노랫말을 지어 선창했고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따라 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신 것은 이처럼 자기를 향해 한 마음으로 찬송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찬송의 하이라이트는 회중 전체가 부르는 합창입니다. 찬양대도 회중 전체가 하나님께 찬송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섬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중 전체가 부르는 합창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주일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시에 함께 부르는 회중찬송, 목장에서 함께 부르는 찬송(20분), 가정예배 시에 가족들이 함께 부르는 찬송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찬송하는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더욱 놀랍게 임재 하시리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찬송하는 공동체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찬송 시간이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을까요? 공동체가 함께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는 세대 간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세상은 물론 교회에서까지 세대 간의 간격이 자꾸 벌어져서 서로 대화가 안 된다고 합니다. 어른들과 청소년들 간에 문화의 차이가 제법 커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좋아하는 찬송 스타일이 크게 달라서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 어색해졌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청소년예배는 물론 청년예배를 따로 드립니다. 즉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기여해야 할 찬송이 오히려 공동체를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한다면 예배와 찬송의 스타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다양한 음악과 문화가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음악과 문화의 다양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남아공에 있을 때 원주민들의 교회에 가서 그들과 함께 예배 드린 적이 있었는데 2시간 넘게 드리는 예배 중에 한 시간은 족히 춤을 추며 찬송했습니다. 그들의 찬송과 춤은 우리와 아주 달랐지만 정말 신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 20-21절에서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찬송을 할 때는 언제나 악기와 춤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어떨 때는 악기 없이 아주 조용하게 찬송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찬송할 때에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찬송의 스타일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상의 예배 광경을 여러 곳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하나가 되어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계 7:9-12)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또 하나,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찬송가의 곡조와 가사가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고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공동체 의식이 함양됩니다. 오늘 본문의 찬송 가사를 보면 별 난해한 것이 없습니다. 곡조도 쉬웠을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소에 자주 부르던 곡조를 빌렸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찬송하는 공동체입니다. 찬송이 사라지거나 약화되면 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 사나운 짐승들에게 찢겨 죽을 때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저력입니다. 성도는 모일 때마다 찬송해야 합니다. 세상 얘기만 하고 돌아가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교회든지 회중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어보면 그 교회의 영적 수준과 미래를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더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찬송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목장도 마찬가집니다. 목장모임 시에 20분가량 즐겁게 찬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찬송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홀로 부르는 찬송도 중요합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얼굴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영적 성숙도는 여러분이 지금 드리는 찬송의 수준에 비례합니다. 구속 받은 자만이 찬송할 수 있지만 구속 받았다고 해도 찬송이 터져 나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속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의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죄입니다. 불신앙과 정욕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 죄 용서를 체험하면 다시 찬송도 회복이 될 것입니다.

 

  1. “모세의 노래”에 담긴 찬송의 내용과 주제가 아주 명료합니다.

 

  • 1절: 찬송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 군대를 물리치셨기 때문에 노래한다고 합니다.
  • 2절: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힘이 되신 주님, 내게 큰 용기를 주신 하나님
  • 노래시며: 나를 만족하게 하신 주님, 절망과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대신에 나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시는 주님
  • 나의 구원이시로다: 나를 죽음에서 살리신 주님
  •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나의 경배와 찬송을 받으실 유일하신 하나님,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십니다. 
  •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신 하나님, 이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실 주님이십니다. 즉 주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높입니다. 찬송합니다. 
  • 3-12절: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애굽의 세력을 부수셨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애굽의 군사들처럼 홍해 바다에 시체로 떠올라야 하는데 우리는 살리시고 저들은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뒤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음을 보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그리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따지지 않으시고 큰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13-18절: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확신하면서 밝은 미래를 노래했습니다. 소망이 가득한 노래였습니다. 
  • 13, 17절: 홍해에서 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주님께서 우리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 14-16절: 주변의 여러 나라가 놀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을 그들이 방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 18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므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하며 행복한 국민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모세의 노래는 총 18절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12번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33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총 45번이나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이 찬송의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저절로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라면 그게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찬송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끝을 맺습니다(13-18절).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을 보면, 대체로 마지막 절은 소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찬송가 305장 3-4절을 보세요. 

 

성도 여러분, 성경이 강조하는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이 “모세의 노래”는 믿음의 노래요 소망의 노래입니다. 이 “모세의 노래”의 신약적 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를 든다면 베드로 사도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사도 바울도 고전 15장(부활장)에서 노래합니다.

 

(고전 15:55-57)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는 성도는 무슨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죄와 사탄과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일생은 찬송의 일생이어야 마땅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불렀던 찬송집이 시편인데 그 시편의 결론도 성도는 항상 찬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역으로 말하면, 찬송이 없는 사람은 호흡이 끊어진 사람, 즉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찬송하지 않은 날은 실패한 날입니다. 몸은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날이나 마찬가집니다. 살아 생동하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주로 할 것은 찬송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하늘에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찬송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싸움터 같은 이 세상에서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폭염으로 우리의 육체가 피곤할 수 있습니다. 심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나라의 암담한 상황 때문에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로 인해 마음이 산란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하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든지 찬송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찬송의 사람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한밭교회와 목장과 가정이 찬송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하는 개인과 공동체에 주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십니다. 그때 성도와 교회는 천국을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함께 하나 되어 부르는 찬송을 통해 오늘 여기서 천국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찬송가 3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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