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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51848014
    성경본문
    출애굽기 4:1~14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8-04

<출애굽기 강해 11>

(출 14:1-31, 봉독 1-14절) 새 길을 여시는 하나님

2019-08-04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홍해 앞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바로 왕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추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편으로 다 건넜을 때 물을 다시 덮으셔서, 백성들의 뒤를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셨습니다. 홍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30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통과함으로써 애굽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서 결정적으로 해방되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홍해를 건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세례로 성취되었습니다(고전 10:1~2). 세례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연합을 뜻합니다(막 10:38; 롬 6:11). 이 세례를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롬 6:1~4). 예수님과 같이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슬퍼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결국 죄에서 승리합니다. 이것이 새 사람, 성령의 사람의 권세입니다. 악한 영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롬 8:31~39).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세력도 신자들에게 더 이상 군림하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 이미 생명과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해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옛 길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사람답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십니다(31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담대히 전진하던 백성들은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8~12절).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추격해오는 군사들의 말발굽소리에 두려워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의 연약한 믿음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홍해를 통과하게 하신 것은 그들의 믿음을 바르게 세우시고자 하신 것입니다(31절).

  우리의 기억은 아주 짧고 시야는 아주 좁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시련 앞에서 크게 요동칩니다. 이러한 연약한 믿음을 일으켜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부끄러운 믿음을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셋째, 모세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13~14절). 모세는 위기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었습니다(15절). 그 간구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셨습니다(15~18절).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세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21절). 그랬더니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열렸습니다. 건너편으로 백성들이 다 건넌 다음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26~27절). 그랬더니 바다의 힘이 회복되었고 뒤따르던 애굽의 군사들이 바닷물에 몰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새 길을 여셨습니다. 이로써 당신의 위엄과 영광을 크게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바라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발휘하기만 하면 그 믿음의 사람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홍해사건보다도 더 큰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정복한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사건을 믿는 자에게 내주하셔서, 새 사람이 되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가 될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우리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어도, 심지어 죽음의 위기를 만나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처럼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새 길을 걷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지난주일에 오늘 본문의 앞 단락인 13:17-22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해 두 가지의 교훈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준에 맞게 적절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과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 편에서 생각할 때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다른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회의 길이 아니라 아예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바닷가로 인도하셨습니다.

 

1-2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가게 하신 곳이 바닷가였습니다. 2절에서 “돌이켜”라는 뜻은 “방향을 바꾸어서”라는 뜻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이동했는데 홍해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유숙해야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곳의 지형은 마치 항아리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홍해가 마주치는 길까지는 광야이며 그 광야 좌우에는 큰 구릉이 있었다고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온 광야 길의 좌우에는 언덕이 벽처럼 서있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런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쳤습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바로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독 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고받은 바로 왕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추격했습니다. 6-7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전쟁무기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나 군사훈련을 한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독 안에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군사력이 막강한 자기 군대가 승리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편으로 다 건넜을 때 그 뒤를 추격하던 애굽의 군사들이 다시 덮인 바닷물에 몰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애굽의 바로 왕과 군사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4, 18절).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으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세 가지로 요약하겠습니다.

 

1. 홍해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30절).

 

출애굽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 왕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끌어와서 자기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자신만만하게 추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홍해로 말미암아 산산이 부셔졌습니다. 홍해 바다에서 애굽의 권세가 박살났고 대신에 하나님의 승리가 완벽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을 4백년간 지배했던 애굽의 권세가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미치지 못하게 한 방파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애굽의 권세는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통과함으로써 애굽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음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구약의 홍해사건을 세례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고전 10:1-2)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지남으로써 이전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바로 그 홍해사건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세례 사건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세례의 신학적인 의미를 설명합니다.

 

(롬 6:1-4)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성도의 권세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세례 받은 우리는 이제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가 가까이 다가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체질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체질이 바뀐 사람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자라고 사도 바울은 표현합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러분들은 물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이므로 세례 시에 물을 머리에 조금 뿌리지만 침례교회는 몸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합니다. 어쨌든 물 아래에 있다가 물 위로 나오는 것이 세례인데 물 아래에 있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며 물 위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음을 회중 앞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로마서 6장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 오직 예수님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을 때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 받은 것으로 표현합니다(롬 6:3). 

 

예수님께서 언제 세례 받으셨습니까?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에 세례 요한에게서 받으신 세례가 아니라 공생애 마지막 때 받으신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곧 세상이 예수님의 세상이 될 터인데 그때 자기들을 주님의 좌우편(특별 보좌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청탁에 예수님께서 반문하셨습니다.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잔과 세례 모두 예수님께서 곧 지게 되실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뜻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까요? 

 

(롬 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죄와 관련하여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달리 죄가 없으신 분이므로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그런데 이 대속의 죽으심은 완전하여 또 다시 죽어야 할 필요가 없는 죽으심이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 사건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처리하신 독특하고 유일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가 단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계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처리하신 대속의 죽음일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신 것을 뜻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어구는 “이와 같이”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두 가지의 일이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일이란 죽는 것과 사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의 말씀을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임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난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어 세례 받은 자는 죄를 짓는 그의 옛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함하는 자, 날마다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 그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전에는 우리가 죄의 권세에 억눌려 살았지만 이제 영혼이 살아났고 의에 대해 눈뜨게 되었으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슬퍼하며 회개합니다. 죄와 싸웁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결국 죄에서 승리합니다. 이것이 죄에서 해방된 새 사람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님과 동시에 사탄의 종도 아닙니다. 애굽의 권세와 바로의 권세는 사탄에게 복속된 악한 권세였는데 그 사탄의 권세가 홍해 바다에서 박살났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홍해 바다에서 보전하셨습니다. 본문 19-20절에서 보듯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성령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합니다. 23-2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의 군사들과 싸우셨습니다.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사람, 성령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악한 영들과 싸우십니다. 애굽의 군사들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 신악시대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을 악한 영들이 해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칠 수 없다고 노래합니다.

 

(롬 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사탄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탄이 우리를 자기의 종으로 부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만유를 향해 선포하셨기 때문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또 하나, 죽음의 세력도 신자들에게 더 이상 군림하지 못합니다. 애굽의 군사들에게 홍해는 죽음의 바다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바다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과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지만 육체의 죽음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관문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이미 생명과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해계시므로 우리는 죽어도 사는 영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홍해사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가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의와 권세를 드러내는 백성, 영생을 누리는 백성이 되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옛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상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옛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답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소명입니다.

 

2. 하나님께서 홍해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한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셨습니다(31절).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담대히 전진했습니다(8절). 그러나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달라졌습니다(9-10절).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는데 기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다는 뜻입니다. 11-12절을 보면 모세에게 정말 악하고 모진 말을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게 된 것은 다 너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 같은 지경에 빠졌다면 울고불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그 같은 반응은 변명할 수 없는 불신앙의 소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체험했습니다. 출애굽하기 전에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습니다. 새벽에 애굽을 탈출할 때 그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히 행진했습니다. 그들 앞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드리워져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할만한 근거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추격해오는 군사들의 말발굽소리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절망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홍해 바닷가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시험한 장소였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한 믿음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홍해를 열어 대로로 통과하게 하신 것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의 믿음을 바르게 세우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31절을 보세요. 홍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에 대해 아더 핑크 목사가 자기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께서 지난 과거에 몇 번이나 우리를 구출하셨든지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얼마나 현저하게 발휘하셨든지 간에 새로운 시련이 우리에게 닥치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개입하셨던 그 놀라운 경험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현실의 긴급사태 앞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만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아주 짧습니다. 우리의 시야는 아주 좁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련 앞에서 크게 요동칩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을 한 단계 높여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부끄러운 믿음을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여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는 것, 승리의 길을 걷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홍해사건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13-14절).

 

본문 13-14절은 모세가 외친 믿음의 선포입니다. 모세가 그 같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믿음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모세가 보여준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위기상황에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큰 구원을 잠잠히 기대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을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둘째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5절). 여기 모세의 부르짖음은 10절에서 언급한 백성들의 부르짖음과는 다릅니다. 백성들의 부르짖음은 절망과 탄식, 원망과 두려움의 부르짖음이었지만 모세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확실히 믿고 바라는 믿음의 간구였습니다. 그 간구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셨습니다(15-18절). “네 기도가 응답되었으므로 이제 부르짖음을 그치라! 기도를 그치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속히 행동에 옮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지팡이를 손에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21절). 그랬더니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열렸습니다. 건너편으로 백성들이 다 건넌 다음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26-27절). 그랬더니 바다의 힘이 회복되었고 뒤따르던 애굽의 군사들이 바닷물에 몰사했습니다.

 

여러분, 모세 한 사람의 믿음이 백성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바다에 새 길을 열게 했습니다. 모세는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원성에 상처받아 자포자기하는 나약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지금까지 훈련받은 믿음을 발휘해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를 만나주셨고 불러주셨던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자기를 들어 바로와 대항하게 하셨던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사람, 모세를 통해 또다시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새 길을 여셨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놀라게 하셨고 자신의 위엄과 권세와 영광을 크게 드러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의 크기는 각기 다를지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가는 길에 새 길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귀히 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족이나 가문의 막힌 길을 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친구나 이웃을 생명의 길로 이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활로를 활짝 여는 멋진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처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여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발휘하면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발휘하기만 하면 그 믿음의 사람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모세와 같은 믿음의 대장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적들 가운데 대표적인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홍해사건이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반복하여 언급되었습니다.

 

오늘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홍해사건보다도 더 큰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물론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야말로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정복한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로써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자랑하는 자들에게 지혜와 능력과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구원의 확신을 주실 뿐 아니라 순간순간 승리를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심어주시는 구원의 확신은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이제 의의 사람, 영생의 사람, 새 사람이 되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천국의 상속자가 될 것을 한 점 의심 없이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어도, 궁지에 몰려도, 극한의 시련을 당해도, 죽음의 위기를 만나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처럼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생명의 길, 부활의 길,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새 길을 걸으심으로써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찬송가 39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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