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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46638597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5:16~26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7-07

(갈 5:16-26)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 

2019-07-07 맥추감사절 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불리는 맥추절은 첫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는데, 그 후 50일 째 되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써 부활의 열매가 예루살렘을 너머 온 땅으로 퍼졌습니다. 구약의 맥추절이 이로써 신약의 성령강림절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지난 6개월간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열매들을 헤아려보며 감사할 뿐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대 추수기가 열린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추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헌신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제목을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로 정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농부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때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우리의 내면에 맺히는 아름답고 균형 잡힌 성품을 뜻합니다(22~23절). 세상 사람들은 겉 사람을 보고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의 덕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겉 사람의 매력은 헛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26절). 헛된 영광을 추구하면 우리의 내면은 황폐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갈 6:7~8).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19절).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열매를 성도들도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21절下). 대신에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로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거짓 일꾼인지 참 일꾼인지를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5~20). 그러면서 권능을 행하며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는 지도자들은 가짜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23).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보다는 성령의 은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고 해서 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교회의 문제는 은사가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아서 그 성령님의 열망에 전적으로 순복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지하고 순복해야 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첫째,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새 주인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된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여전히 옛 사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서 영적 갈등이 생깁니다(17절).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 주인인 성령님의 열망에 순복해야 합니다. 

  둘째,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하여 가끔 죄를 범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탄식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즉시 참회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성령의 충만은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할 때 우리는 다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간절히 찾는 자에게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오늘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오순절 때 오셨던 성령님을 계속 우리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을 계속 솟아나는 생수로 표현합니다. 시대마다 세상과 우리의 심령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충만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넷째,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나누는 자들에게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마치 샘물을 퍼줄수록 더욱 맑고 풍성한 샘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남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선물입니다(갈 6:9~10).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농부로 일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에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살고 성령님으로 행하는 남은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문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맥추절은 초실절(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절기)로도 불리는데 첫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유월절 후 7주간이 지난 다음 날, 즉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그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는데 그 후 50일 째 되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예수님에게서 맺힌 부활의 열매가 예루살렘을 너머 온 땅으로 퍼졌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맥추절이 신약의 성령강림절로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지난 6개월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셔서 맺게 하신 열매들을 헤아려보며 감사할 뿐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대 추수기가 열린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추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헌신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제목을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로 정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이 맺어야 할 열매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이 잘 대답합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어구입니다. 본문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농부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때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9가지입니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우리의 내면에 맺히는 아름답고 균형 잡힌 성품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뜻합니다. 23절 하반절의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는 뜻은 모두가 다 바라고 좋아하는 덕목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속사람보다는 겉 사람을 보고 감탄합니다. 육체의 건강, 미모, 학위, 지위, 경력, 출신 따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의 덕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겉 사람의 매력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시들어버립니다. 그래서 26절에는 그것을 “헛된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겉 사람의 매력에 몰두하고 헛된 영광을 추구하면 우리의 내면은 황폐하게 됩니다. 사라질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격동하고 투기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신도 행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주는 공동체입니다. 

 

  • 사랑: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아가페 사랑, 원수까지도 품는 사랑 
  • 희락: 어떠한 환경에도 빼앗기지 않는 항구적인 기쁨, 이웃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이타적인 기쁨  
  • 화평: 폭풍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평정,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능력 
  • 오래 참음: 아름답게 변할 형제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여유로운 마음
  • 자비(친절): 이웃을 감동시키는 관대함의 행동들 
  • 양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도덕적 탁월함 
  • 충성: 한결 같은 신의, 약속한 것을 지키는 성실함
  • 온유: 거친 사람들까지도 부드럽게 품는 온화함 
  • 절제: 거센 유혹 앞에서도 정도를 택하는 능력 

 

이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세상을 훈훈하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볼 때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갈 6:7-8을 보세요. 

 

(갈 6:7-8) 『[7]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어떤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 심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육체의 욕심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즉 죄에 기울어지는 본성을 가리킵니다. 이를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육체의 열매를 본문에서는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합니다(19절). 

 

육체의 열매(일) 중에 대표적으로 15가지를 본문 19-21절에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성적 범죄: 음행, 더러운 것, 호색 
  2. 거짓 신을 숭배하는 죄: 우상숭배와 주술
  3. 인간관계의 불화: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4. 주벽과 관련된 죄(절제하지 못하는 죄): 술 취함과 방탕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열매를 성도들도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엄히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21절 하반절).”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자란 상습적으로 그 같은 행위를 계속 반복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써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16절의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은 성령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17절에서 말씀하듯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의 열망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18절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른다”, 25절에서는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성령으로 행한다”는 말씀은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서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을 좇아 행하는 것, 성령님으로 사는 것,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것,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모두 동의어인데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복한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님의 뜻대로 사는 것, 성령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면 성령님으로부터 성령의 열매를 맺고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전적으로 성령님께 의존하는 상태를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속사람에 예수님의 성품이 자리 잡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성령 충만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인가, 성령 충만한 자인가 하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성령 충만의 정도와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열매를 보고서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듯이 하나님 나라의 거짓 일꾼과 참 일꾼도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5-20).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는 지도자들을 조심하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좇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지만 가짜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23).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보다는 성령의 은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설교 잘 하는 사람,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 일을 능력 있게 처리하는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그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며 성도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고 해서 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척척 해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교회가 알차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교회의 문제는 은사나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훌륭한 설교자라고해서 반드시 그가 성숙한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라고 해서 그가 반드시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서적을 저술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를 성령 충만한 자라고 판단할 수 있는 최종 증거는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제가 설교하고 있지만 설교한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설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것은 설교한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잘 사용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됩니까?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그 성령님의 열망에 전적으로 순복할 때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열망에 전적으로 순복하면 됩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순복해야 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간단히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새 주인이십니다. 

 

어떤 자의 심령에 성령님이 내주하십니까? 한 가지 조건밖에 없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의 심령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심령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영원토록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된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새 사람은 새 주인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는 성령님 외에는 다른 주인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옛 주인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육체 혹은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옛 사람의 힘은 제한적입니다. 24절이 그것을 표현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처럼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제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서 영적 갈등이 생깁니다. 17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옛 사람은 옛 주인인 육체의 욕심을 따르려고 하지만 새 사람은 새 주인인 성령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바울은 내적 갈등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내적 갈등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성령님을 새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 주인인 성령님의 열망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이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성령님을 우리의 새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새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십니다. 

 

  1.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 그대로 거룩하신 영이신데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안에 불결한 것이 있을 때 성령님께서는 근심하시고 탄식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본문 19-21절에 열거된 죄악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죄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을 크게 슬프게 하는 것임을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즉시 참회해야 합니다. 참회하지 않음으로써 죄가 우리 속에 그냥 남아 있는 한 성령의 충만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수도관에 오물이 막혀서 수도 물의 배출이 제대로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우리가 죄를 회개해야 합니까?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할 때 우리는 다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1. 성령님은 간절히 찾는 자에게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개혁교회들이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때 한 번 오시고 만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계속 우리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을 계속 솟아나는 생수로 표현합니다.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지금도 능력과 생명과 변화와 치료의 생수로 세상과 우리의 심령을 계속 새롭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에게 이러한 생수가 충만하게 공급됩니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구하듯이 간절하게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충만히 부어집니다. 

 

  1. 성령님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나누는 자들에게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마치 샘물을 퍼줄수록 더욱 맑고 풍성한 샘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남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선물입니다. 

 

(갈 6:9-10)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회사의 사장이라면 어떤 자를 직원으로 채용하시겠습니까? 

  •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사람 
  •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우울한 사람 
  • 많은 스트레스로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 
  • 조급한 사람 
  • 무례한 사람 
  • 남을 험담하는 사람 
  • 거친 성격의 사람 
  • 일시적인 감정에 지배되는 사람 
  • 규모와 질서가 없는 사람

이 같은 사람을 채용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하나님 나라의 농부로 일하게 하실까요? 오늘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열망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와 함께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에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십니다. 성령님으로 살고 성령님으로 행하는 남은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성찬은 일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입니다. 오늘의 설교에서 말씀드린 것으로 표현하면, 성찬은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잘 맺으라고 공급하시는 하늘의 양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농부들이 먹어야 할 최고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제자들과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에게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하나님 나라의 농부가 됩니다. 이제 성찬을 받아서 먹고 마실 때 먼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성령님을 지금도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예수님께 더더욱 감사합시다. 예수님 안에서 살겠다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간구합시다. (끝) 찬송 196장. 

(35200) 대전시 서구 만년남로 3번길 107(만년동) 한밭교회 | 대표전화 042-488-8701~6 | FAX 070-7836-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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