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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46627619
    성경본문
    출애굽기 10:1~2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6-30

<출애굽기 강해 07>

(출 6:1-12:36, 봉독 10:1-2)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2)

2019-06-30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가 어떤 하나님인지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1~2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엘로힘(전능의 하나님)’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리겠다고 하십니다(6:3). ‘여호와’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여호와를 떠나서는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신들이 하나님께 복속된 신들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처럼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신임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를 여호와로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었습니다(창 13:3~4, 26:25, 32:9~10).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곧 행하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자기를 알리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압제 속에서 백성들의 탄식은 하늘에까지 사무쳤습니다. 그런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400년 전에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이 전했던 가나안으로의 회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애굽의 왕의 호의를 입기를 바랐습니다. 애굽에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제 정신으로 애굽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실 때, 네 번째 파리 재앙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미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구별하셨습니다(출 8:21~22). 하나님의 이적임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가르치기 위하여 애굽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재앙을 내렸습니다. 결국 바로가 항복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쫓겨났습니다(출 6:1).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출애굽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땅에 눌러있고 싶었겠지만 출애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엡 2:1~5).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셔야만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엡 2:9). 모세는 출애굽 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고별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주지시켰습니다(신 7:6~11).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걷고 있습니까? 후자라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도와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생명의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모세에게는 강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막강한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모세는 온 천지가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과 바로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로써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믿음이 강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바로 앞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출 7:1).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택하시고,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과 은혜를 그에게 부어주셨습니다. 모세는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갔습니다. 그로써 모세는 믿음의 대장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소원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신구약성경입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요 1:14, 14:6~7).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벧후 3:18; 빌 3:7~9).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이자 최고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조명하셔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생생하게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목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는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리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왕을 심판하셨을 뿐 아니라 애굽 사람들이 섬겼던 신들까지도 심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애굽이 완전히 멸절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던 때로부터 약 700년이 지난 후에 이사야 선지자가 애굽의 미래를 예언했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펴셔서 애굽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만이 세상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구원하시는 유일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은 애굽 백성들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자기가 어떤 하나님인지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10:1-2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재앙을 “나(하나님)의 표징”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시기 위한 표징으로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다는 뜻입니다. 그 표징을 보고서 애굽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대단한 신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표징에 관한 얘기가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질 뿐 아니라 후손들에까지 전달되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누구로 알리시려고 하셨습니까? 6:1-8을 보세요(교독). 먼저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두 가지 이름이 등장합니다. “전능의 하나님”과 “여호와”입니다. 

 

“전능의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전능자, 창조자, 통치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이 엘로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대 근동의 민족들은 모두 최고의 신인 전능자를 섬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 민족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질 때 신들 간의 전쟁으로 여겼습니다. 어느 신이 크냐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전능의 하나님이시라면 타 민족들이 섬기는 전능한 신들과 비슷한 신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신임을 드러내시려고 자신의 다른 이름을 밝히셨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기에 다른 신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신일까요? “여호와”라는 원어는 “나는 있다”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셨는데 한글성경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출 3:14-15 참고).

 

“스스로 있는 자”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자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그에게서 만물이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움직이고 그에게로 만물이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그를 떠나서는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이 가짜이든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 복속된 신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봉독한 출애굽기 6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신의 이름을 엘로힘(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지만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창 13:3-4) 『[3] 그(아브라함)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26: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 32:9-10)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이 구절들에 따르면, 분명하게 이스라엘의 선조들(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6장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의 선조들(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알다”라는 동사는 “체험하여 알다, 속속들이 알다”라는 뜻입니다. 남녀가 결혼하기 전과 결혼한 후에 서로를 아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결혼한 후에 알게 된 것과 비교할 때 결혼 전에 안 것은 제대로 안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실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인 여호와 하나님이 명확하게 알려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가지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6:1, 4-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친히 행동하십니다.

 

2)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행동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6:6). 그래서 억압받고 있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십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그 땅에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6:7-8).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요약하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보다 더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0가지의 재앙(이적)을 통해 자기를 알리셨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출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36년간 일제의 통치를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있는데, 하물며 우리보다 열 배나 긴 400년의 세월을 애굽 땅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고센 땅에는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선조들의 무덤과 집과 농토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놓아두고 떠난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타지로 잠시 여행하는 것조차 크게 두려워하던 때였습니다. 한평생 한 곳에 정착하여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압제는 더욱 심해져갔습니다. 고역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이 하늘에까지 사무쳤습니다. 그랬어도 그들이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400년 전에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이 전했던 가나안으로의 회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그들이 희망했던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같은 시절이 재현되면 좋겠다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왕의 호의를 바랐습니다. 한 번도 군사훈련을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히 애굽에 반항하여 한 판 싸움을 벌일 배짱이나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설령 바로가 이주를 허락한다고 해도 2백만이나 되는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것은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정신으로는 애굽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한두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애굽을 떠날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아마도 첫 세 가지 재앙들(피, 개구리, 이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미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구별하셨습니다.

 

(출 8:21-22)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이 구별을 통하여 애굽에 내린 파리 재앙이 우연히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임을 애굽 사람들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고 더 큰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10번째, 장자를 치는 재앙을 당하고는 결국 바로가 항복합니다. 애굽의 백성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발 떠나라고 애원합니다. 그것도 은 금 패물까지 순순히 내어주면서 자기 땅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합니다.

 

(출 12:33-36)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서 쫓겨난 것입니다.

 

(출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출애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쫓아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황에 몰려서 출애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수행이나 선행을 통해서 득도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떤 인생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바울 사도가 이를 잘 말씀했습니다. 

 

(엡 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여기서 바울 사도는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력자인 인생들의 실존을 고발합니다. 내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허물과 죄와 정욕과 이기심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셔야만 우리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된 것 인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사실을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출애굽기의 내용으로 표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에 이스라엘 편에서 자랑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지 40년 후에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할 때에 이 사실을 다시 주지시켰습니다.

 

(신 7:6-11)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으로 선포했던 고별설교의 핵심은 너희들이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쭐거리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겸손과 순종,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이 붙잡아야 할 삶의 기본적인 원리요 태도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고 따르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것을 동원하셔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기어코 약속의 땅으로 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만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의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약속의 땅을 행해 길을 떠났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에 파묻혀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에게 매여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까? 후자라고 한다면,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회개조차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는 세상과 마귀와 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도와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구원하여주시고 생명의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시려고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모세가 가장 생생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과 첫 대면을 한 후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믿음이 더욱 강화되어야 했습니다. 바로가 순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무엇보다도 모세에게 강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재앙들이 보통 재앙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에게는 전혀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온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바로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로써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믿음이 강화되었습니다. 이 이후로 모세는 하나님의 충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바로 앞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출 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이처럼 모세를 통해 펼쳐진 하나님의 이적들은 모세의 형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모세의 권위를 세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실에서 자랐습니다. 40세가 되었을 때 혈기를 부림으로써 동족 이스라엘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그 결과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피난지 미디안에서 고작 한 일은 양치기생활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방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흠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택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된 것,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도록 필요한 능력과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요약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0가지의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높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갔습니다. 그로써 모세는 믿음의 대장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소원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과 오늘까지 두 주일에 걸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10가지의 이적을 통하여 애굽 사람들에게는 물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들을 사용하시지만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편이 신구약성경입니다. 구약성경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만나 교제함으로써 알게 된 하나님을 소개한 책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신 책입니다.  

 

요한 사도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4:6-7)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알면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최고 계시가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때문에 구약시대 때보다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누구신지 더 온전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히 1:1-3)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출애굽 당시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현현과 이적들과 말씀과 율법 반포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깨달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 당시로는 아주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더 명확하고 온전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자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성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여화와를 힘써 알자!”라고 권고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명령합니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풍성하게 알아가는 것이 자신의 생애목표라고 말씀합니다.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이자 최고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최고 계시임을 기록한 신구약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밝은 빛으로 조명하셔서 성경의 핵심주제인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이신지 생생하게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그래야 모세처럼 하나님께 붙잡힌 일꾼으로, 사도 요한과 바울처럼 예수님의 충실한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 406, 45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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