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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43908895
    성경본문
    출 5:1~6:1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6-16

<출애굽기 강해 05>

(출 5:1-6:1)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 예배

2019-06-16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하나님 백성의 제일 되는 의무와 권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5:1).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뚜렷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자리요,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불러내셨습니다(5:1). 이유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예배를 받으시겠다고 모세와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출 3:12). 다른 이유는, 무력해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심으로 하나님이 바로 왕과 애굽의 신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함께 모여 예배드림으로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행 2:46~47). 이웃 사람들은 교회로 모인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매력에 끌려서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 것은 초대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도가 교회로 모여 예배하는 것은 신앙과 삶의 기초입니다(히 10:22~25). 이 기초가 무너지면 교회가 허약해질 뿐 아니라, 세상에 거룩한 도전과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매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절부터 주일을 공동예배의 날로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이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예배는 우리의 연약한 본성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산물입니다. 이 예배를 잘 드리면 일상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부흥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전예배와 오후예배에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성도간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랬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찾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라고 했던 요구는 그야말로 선전포고였습니다. 이에 바로 왕은 그들을 가만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경험하게 하려고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가능한 노역을 감행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5:21). 이 말을 들은 모세도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던 사탄이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둘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큰 고통을 겪게 하고, 어려운 상황을 통해 믿음의 뿌리를 흔듭니다. 특히 예배드리는 자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게 함으로써 공동예배의 감격을 상실하게 합니다. 혼자서 예배드리게 만들고 괜찮은 교회를 찾아다니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탄의 술책에 대항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5:22~23; 단 6:10). 공동예배를 귀히 여기고 그 예배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누구신지 다시 말씀하심으로써 모세를 격려하셨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강해도 내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을 하나님께서 재차 약속하셨습니다(6:1~13).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를 원하십니다. 참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 권력으로부터 방해를 받았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분열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참된 예배자로 훈련된 자들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요 예배하는 공동체로 훈련받는 곳입니다. 교회가 성숙한 예배 공동체로 변혁될 때 세상을 안식의 땅으로 변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공동예배가 무미건조해지면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탄도 그런 교회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나면 사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을 겪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의 공동예배야말로 성도와 교회가 붙잡아야 할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주일에 올려드리는 우리의 공동예배에 신령한 은혜와 감격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전문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5:1절 하반절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함께 기쁨의 축제(celebration)를 벌이는 것을 뜻합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킨다,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께 공동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제일 되는 의무와 권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바로의 신민들이 섬기는 신들과 우상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백성이라는 점에서 애굽의 백성들과 구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때 세상과 구별되는 성도와 교회의 정체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자리요 우리를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높이고 즐거워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디에서 예배드리라고 하셨습니까? 광야입니다(1절).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필이면 광야로 나가서 예배하라고 하셨는가? 그냥 그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서 예배하면 안 되는가? 2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광야로 나가는 것,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유별나게 해야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셨던 첫 장소가 호렙산(시내산)이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광야예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광야로 나가서 예배하라고 하셨는지 두 가지의 이유를 더 보충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바로 왕과 애굽의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살았던 4백 년 동안 목초지가 풍성한 고센 땅에서 대를 이어 목축업에 종사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멸시했기 때문에 고센 땅에서 목축업에 종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구가 급속히 불어났지만 애굽의 통치력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은 큰 성을 건축하는 공사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어 노역하게 했습니다. 노예처럼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전혀 반항할 힘이 없는 무력한 백성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애굽 사람들에게 큰 뉴스거리가 될 것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집단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로 나가 절기를 지키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신과는 아주 다른 신이구나!”라는 사실을 애굽의 왕과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로 나가 예배하라고 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백만이나 되는 무리들이 광야로 나가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여행 중에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들이 바로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게 될 것이며 그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의식이 함양될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 주셨던 약속의 성취를 대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살 땅은 4백년간 거주했던 애굽의 고센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임을 상기하면서 한 마음으로 그 가나안을 바라보게 할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로 나가 예배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주일 성령강림절을 맞아 오전예배 시에 살펴보았던 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 열심히 모였습니다. 그것이 이웃 사람들에게 큰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행 2:46-47)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처럼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웃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통해 그들이 섬기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아주 선명하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큰 그룹으로 소그룹으로 자주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사랑의 교제를 풍성히 나눔으로써 성도와 교회의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성도들은 광야로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출애굽 때는 광야로 나가는 것이 애굽 사람들에게 뉴스거리가 될 것이지만, 신약의 초대교회 시절에는 이웃들 틈에 모여서 예배드려도 충분히 뉴스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람들은 교회로 모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자기들과는 아주 다름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매력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25 동난 이후 그 어렵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난국에 의지할 곳이 교회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주일에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뭔가가 달랐습니다.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희망이 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서는 발걸음은 새 힘을 얻어 가벼웠습니다. 성도들의 나라사랑은 지극했습니다. 조국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나라사랑이 기반이 되어 60년대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민족을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력을 행사했습니다. 한밭교회도 그랬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성도가 교회로 모여 예배하는 것은 신앙과 삶의 기초입니다. 이 기초가 무너지면 성도 개개인은 물론 교회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거룩한 도전과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강하게 권면했습니다. 

 

(히 10:22-25)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신약시대에 와서는 구약시대와 달리 모든 곳이 예배의 장소이며 모든 날이 예배의 날입니다, 예배의 장소와 시간이 어느 한 장소와 한 날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이를 일상의 예배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시절부터 주일을 공동예배의 날로 지켰습니다. 주일에 공동예배를 드렸다는 기록들을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왜 주일에 공동예배르 드렸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아주 자연스럽게 주일을 공동예배의 날로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의 온전한 대속과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부 하나님께 받아 보내주신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삼위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된 교회는 주일에 함께 모여 삼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두 가지, 일상의 예배와 주일의 공동예배가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의 공동예배는 우리의 연약한 본성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산물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나아가 힘 있게 살기 위해서는 주일에 함께 모여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하기에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자들은 주일의 공동예배를 귀하게 여깁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의 공동예배를 잘 드리면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주일의 공동예배가 생기 있게 드려지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면 성도와 교회가 이웃과 지역사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일의 공동예배에 임재 하셔서 큰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사모하며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서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으로 모여 예배드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애굽 왕 바로가 예배의 방해자였습니다. 광야로 나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하도록 허락해달라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바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 애굽(이집트)은 근동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큰 나라였습니다. 바로 왕은 신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왕권을 가진 바로 앞에서 노예들은 자기주장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시키는 일에 기계처럼 복종해야 할 의무만 있었습니다. 노예들의 대표가 바로에게 나아와 알현할 이유는 왕을 칭송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 늙은이, 모세와 아론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전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통찰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전했던 그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의 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동안 고역으로 지쳤기 때문에 잠시 소풍을 가도록 허락해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선전포고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백성이 아니며 더욱이 바로의 노예일 수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이므로 이제 내가 그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요 맹세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길 신은 애굽의 신민들이 섬기는 신들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정권과 종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노예들을 바로는 가만 둘 수 없었습니다. 이 차제에 이 같은 반란의 음모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혼을 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광야예배의 요구를 말살하기 위한 바로의 술책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힘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거나 죽일 수 있었지만 그냥 풀어주었습니다. 

 

바로 왕은 광야로 나가 예배하겠다는 요구가 얼마나 어리석은 요구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처절하게 경험하게 했습니다. 벽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짚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짚을 들에 나가서 직접 구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전처럼 할당된 벽돌의 수효를 제 때에 채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감독자들이 이스라엘의 기록원(작업반장)들에게 목표를 달성하라고 매를 때리며 닦달했습니다. 매를 맞은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나아가 부당한 요구를 철회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바로는 그들에게 매몰차게 대꾸했습니다(17-18절). “너희들이 광야에 나가서 내가 알지도 듣지도 못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하는데 그건 아주 어리석고 헛된 일이다. 너희들의 운명이 여호와라는 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있음을 어찌 모르느냐! 너희들이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전처럼 내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것밖에 없다. 다시는 예배 운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은 자기들이 고통 받게 된 근본이유가 모세와 아론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얼마 전에 자기들을 구출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모세와 아론을 통해 듣고는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4:29-31). 

 

(출 4:29-31)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는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합니다(5:21). “너희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분이시냐? 다시는 광야로 나가 예배드리자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모세도 낙심했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5:22-23을 보세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사탄은 예배드리는 성도와 교회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사탄을 섬기는 데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변화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섬기느냐에 따라서 그의 존재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질을 섬기면 물질의 종이 됩니다. 돈이 그들을 이끕니다. 사람의 존재가치가 돈으로 환산됩니다. 쾌락을 좇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입니다. 권력에 매인 자들도 있습니다. 권력이 우상입니다. 피조물에게 절하면 그 피조물에게 매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섬기는 대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바뀔 때 그의 존재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그 동안 섬김을 받던 사탄이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예배하겠다고 나서는 자들에게 큰 손해를 입게 합니다.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큰 고통을 겪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통해 믿음의 뿌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사탄의 더 교묘한 술책은 예배드리는 자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로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를 이간한 것처럼 사탄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게 함으로써 교회의 하나 됨과 공동예배의 감격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럴 바에는 나 혼자서 예배드리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건물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고 합리화합니다. 꼭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면 불화가 없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괜찮은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술책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처럼 대처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굽의 최고 권력자인 바로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바로는 “나를 섬겨라! 그리하면 고통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도 사탄이 꼭 같이 시험했습니다.

 

(마 4:8-9)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천하만국이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시 5:22-23절을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와 예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론 모세가 드린 이 기도에는 원망이 다소 섞여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점에서 모세는 문제해결의 근원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세력에 정면으로 응전하는 길은 기도하는 길밖에 없음을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렸습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사탄의 핵심적인 일입니다. 이 방해공작을 분쇄하는 길은 오직 하나, 예배를 귀히 여기고 그 예배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해결의 실마리가 열립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누구신지 다시 말씀하심으로써 모세를 격려하셨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강해도 내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재차 약속하셨습니다. 6:1-13을 교독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시려고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출애굽의 목적 즉 구원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변혁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배 공동체로의 변혁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밖에서는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 권력의 강력한 방해가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분열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랬어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로 훈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장소요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 광야에서 참된 예배자로 훈련된 자들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훈련 기간이 무려 4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배의 훈련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쉽게 훈련되지 않는 것이 예배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요 동시에 예배하는 공동체로 훈련받는 곳입니다. 교회가 성숙한 예배 공동체로 변혁될 때 세상을 안식의 땅으로 변혁할 수 있습니다.

 

한밭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도 예배입니다. 공동예배가 무미건조하고 감격이 사라지면 교회는 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도 그런 교회를 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시합니다. 있으나마나 한 교회, 유명무실한 교회, 이름은 있지만 실은 죽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나면 사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여러 가지 시험을 겪게 합니다. 사탄의 시험은 두 가지입니다. 위협과 회유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에서 사탄이 사용한 술책은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는 위협보다는 회유 쪽이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의 공동예배를 소홀히 하도록 여러 가지로 미혹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위협과 회유에 대항하여 이기는 길은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의 공동예배를 잘 드리면 한 주간의 삶이 생동할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사명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의 공동예배야말로 성도와 교회가 붙잡아야 할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주일에 올려드리는 우리의 공동예배에 신령한 은혜와 감격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끝) 찬송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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