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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22537989
    성경본문
    출애굽기 1:1~14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3-10

<출애굽기 강해 01>

(출 1:1-25) 봉독 (1:1-14) 새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

2019-03-10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고난의 세월들을 보냈습니다. 그 세월동안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새 시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 일들이 기록된 출애굽기 1장은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열어주신 출애굽의 새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들과 맺으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1~2).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이방 나라로 이주하여 400년간 지내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가, 하나님께서 그 이방 나라를 징벌하심으로써 4대 만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도 약속하셨습니다(창 15:12~16). 이어 야곱에게도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룬 후에는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46:1~4). 이 약속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다음 약속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귀환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끝까지 믿었던 야곱과 요셉은 임종 직전에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가서 묻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창 47:27~31, 50:24~26). 이들이 그리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의 귀환을 믿고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곱과 요셉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믿은 믿음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선조들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그 성취를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약속들이 보석처럼 박혀있습니다.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친히 이루어 가시는 그 착한 일은 결국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서 마침내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입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붙잡고 사는 자가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힘차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들에게 새 시대를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편안할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절실하게 갈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을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제법 긴 시간 동안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써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 애굽에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80년 동안 학대를 당했습니다(8~11절). 하나님께서는 이 시기를 통하여 애굽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겪게 하신 후에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셨습니다(겔 20:6~9). 그러나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는 가나안보다 애굽이 훨씬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기며 늘 강을 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보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는데 오히려 만물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 매인 것을 풀어보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억압했습니다. 이러한 타락한 문화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겔 29:8~12).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살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고난을 겪게 하시고 그 후에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와 교회에 이해할 수 없는 환난이 몰려올 때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약속에 눈 뜨게 하십니다. 때가 되면 그 약속이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곤고한 세월을 80년 이상 견뎌야 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시대 새 역사가 반드시 펼쳐질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전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새 시대가 언젠가는 활짝 열리고야 말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도와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이 봄날에도 하나님의 약속과 뜻은 찬란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때로는 악한 자들의 간계와 환경의 변화로 인해 성도와 교회가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써 우리의 믿음이 정금같이 단련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 새 역사를 여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오늘부터 출애굽기 강해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신 출애굽의 과정이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2)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세히 가르쳐주셨습니다. 

3) 율법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제작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장의 중심내용은 주전 1500년경,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고난의 세월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 고난의 시절에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새 시대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새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으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경외하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3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새 시대를 여셨다면 오늘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새 시대를 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출애굽기 1장에서 새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두 가지만 생각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열어주신 출애굽의 새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들과 맺으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야곱의 12아들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가족들의 수효가 모두 70명이었다고 밝힙니다. 6-7절을 보면,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야곱)의 자손들은 큰 민족을 이루었다고 기록합니다(7절).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첫 선조인 아브라함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12: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2)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꿈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으로 이주하게 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창 15:12-16)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으로 이주하여 400년간 지낼 것이며 그곳 사람들로 인해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이방 나라를 징벌하심으로써 4대만에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도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46:1-4)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이 구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야곱 때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까지 식량이 동이 났습니다. 오직 애굽에만 식량이 있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형들 때문에 애굽에 팔려간 야곱의 아들 요셉이 거기서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미리 흉년을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양식을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거기서 동생 요셉을 만납니다.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하여 자기를 앞서 보내셔서 흉년의 때를 예비하게 하셨다.”고 위로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모든 가족들을 초청합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을 만나보기 위해 야곱은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가나안의 최남단 브엘세바에서 하루를 유숙하는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금방 읽었던 구절입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 밝히십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그들과 맺으신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두려워 말고 애굽에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약속의 성취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재차 약속하십니다.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까지 야곱과 함께 내려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의 가족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큰 민족이 된 후에는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 때문에 말년에 평안하게 지내다가 죽게 될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출애굽기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창세기의 말씀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음 약속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귀환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출애굽기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출애굽기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구약성경은 옛 언약의 책입니다. 신약성경은 새 언약의 책입니다. 옛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는데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옛 언약의 성취가 새 언약입니다. 동시에 새 언약은 최종적으로 성취될 약속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최종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섬깁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은 세상 역사 가운데서 반드시 실현됩니다.

출애굽기를 시작하는 1장에서부터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무대임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세상도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악한 세력들과 참혹한 환경까지도 약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동원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일시에 성취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를 믿고 바라는 우리들을 업신여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의 가치와 믿음의 승리를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6절을 보세요. 야곱도 죽었고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다 애굽 땅에서 죽었습니다.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야곱은 임종 직전에 아들 요셉에게 자기가 죽거든 시신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으로 가져가서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맹세까지 하게 했습니다. 

 

(창 47:27-31)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이 그리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의 귀환을 믿고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직접 시신을 운구하여 가나안으로 올라가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창 50:12-14)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도 아버지 야곱처럼 자기 유해를 잘 보관하였다가 가나안으로 운구하여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자손들을 권고하여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게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창 50:24-26)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그리고 거의 400년 후에 요셉의 유해가 가나안 땅에 묻힙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그 땅을 거의 차지했을 때였습니다. 

 

(수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야곱과 요셉은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믿은 믿음의 조상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고 사는 자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과 그 약속들의 성취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과 그 약속들이 성취된 말씀들을 줄을 그어가며 읽을 때 우리의 믿음이 강화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그 성취를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약속들이 성경에 보석처럼 박혀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구절만 소개한다면 빌립보서 1:6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친히 이루어 가시는 그 착한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 마침내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입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붙잡고 사는 자가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힘차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새 시대를 활짝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편안할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절실하게 갈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을 받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제법 긴 시간 동안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써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동안 애굽의 비옥한 땅 고센에서 편안히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진 학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8절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애굽의 힉소스 왕조를 축출하고 새 왕조(애굽의 제18왕조)를 세운 아모세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으로부터 감시받는 민족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크게 번성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적국의 편에 가담하면 자기들이 낭패를 당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노예로 삼고 과중한 노역을 부과했습니다. 큰 성을 짓는데 강제로 동원하였습니다. 그렇게 학대를 받은 날들이 한두 해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일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적어도 80년의 세월을 큰 고통 가운데서 지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오랜 세월 동안 극심한 고통 가운데 두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셨기 때문일까요? 백성들의 고통을 모르셨기 때문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강해에서 확인하겠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 400년간 애굽에서 사는 동안에 거의 애굽의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선조들이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이 거의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굽의 고센 땅을 영원히 거주할 땅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 땅에 학대의 광풍을 불어 닥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을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에 그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 말씀합니다.

 

(겔 20:6-9) 『[6]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8]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

 

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을까요? 가나안 땅이 애굽 땅보다 살기에 좋은 땅이었을까요?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풍요가 보장된 땅이라는 뜻일까요? 더 이상 고통과 전쟁이 없는 안전한 곳이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가나안보다 애굽이 훨씬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 당시 애굽에는 농경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나일강물이 늘 풍성하게 흘렀기 때문입니다. 길이가 6650킬로미터나 되는 나일강은 애굽의 젖줄이었습니다. 나일강의 발원지는 산악지대의 호수인데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겨울에 눈이 내려 항상 물이 넉넉합니다. 거기서 발원하여 적도 늪지대를 통과하면서 많은 비로 인해 물이 급속도로 불어납니다. 그래서 사막 한가운데로 지날 때도 그 하수량이 줄지 않습니다. 그 사막에 건설된 나라가 애굽입니다. 

 

애굽(이집트)이라는 지명은 히브리어로 ‘미츠라임’입니다. “두 개의 좁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가운데로 나일강이 흐르고 그 양편에 촌락과 도시가 형성된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동편과 서편에 큰 사막이 펼쳐져있어서 외적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은 안전한 지역이었습니다. 사막으로부터 모래가 날아오고 나일강물이 강둑을 넘쳐흘러 모래 위에 진흙을 날라줌으로써 토양이 아주 비옥해져 늘 풍성한 곡식을 추수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사람이 번성했고 농경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세계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집트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일강이 물 걱정을 다 해결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평균 강우량이 1년에 3-5mm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강을 보고 살았습니다.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 나일강 상류에 폭우와 눈을 쏟아 붓는 하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 사람들은 위를 바라보는 대신에 아래를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은 달랐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과 이슬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힘센 나라들이 안팎에 있어서 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할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북쪽과 남쪽의 강대국들이 서로 전쟁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통행로였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시도 평온할 수 없는 땅입니다. 자존의 땅 애굽과는 달리 가나안은 의존의 땅입니다.

 

여러분은 자존의 땅 애굽과 의존의 땅 가나안, 이 둘 중에 어디에 더 매력을 느낍니까? 당연히 자존의 땅 애굽입니다. 자유와 발전과 풍요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애굽을 풍요롭게 하는 나일강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비와 눈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만물의 근원이시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세계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내려주시건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결과는 자연에 예속되고 돈과 권력과 쾌락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불안하니까 온갖 우상과 거짓 신을 만들어 섬깁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된 사람이 만물에 매이게 됩니다. 그 매인 것을 풀어보려고 애를 쓴 것이 세상 문화입니다. 그래서 문화가 아주 발달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게 왜곡된 문화는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이것이 세속 문화의 타락입니다. 그 타락한 문화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에스겔 2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과 나일강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29:8-12) 『[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칼이 네게 임하게 하여 네게서 사람과 짐승을 끊은즉 [9]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11]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사십 년이 지날지라 [12] 내가 애굽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같이 황폐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나라들의 성읍 같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로 헤치리라』

 

애굽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아 황무한 사막처럼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의존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존의 땅, 자만과 교만의 땅, 우상숭배의 땅인 애굽에서 이끌어내셔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시려고 출애굽의 새 시대를 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재차 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바라보고 산다면 내가 너희들을 보호하리라, 인도하리라, 먹이리라, 풍요를 누리게 하리라, 너희를 통하여 내 영광을 열방 가운데 드러내리라, 너희들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리라.”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의미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고 살아야 할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만이 만복의 근원이시다.”라는 진리를 저절로 깨닫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간의 죄성과 욕심 때문에 그게 저절로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줄을 끊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고통의 세월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여실 새 시대 새 역사를 전망하게 하십니다. 결국 성도는 고난이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 사람들에게서 학대를 받지 않고 거기서 계속 편안히 살았다면 애굽의 문화와 종교에 완전히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닥쳤을 때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번성하는 것,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섭리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표현하는 구절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7절은 강조 구문입니다. 9-10절은 애굽 왕까지도 놀라며 두려워했습니다. 12절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20절은 히브리 산파들의 신앙과 지혜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더욱 번성하고 강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극렬한 박해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성하고 강해진 것은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박해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운동이 산파들 사이에서 일어났고(15-21절) 그 운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와 교회에 이해할 수 없는 환난이 몰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십니까?” 오늘 본문이 그 질문에 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확인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약속에 눈 뜨게 하십니다. 그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십니다. 때가 되면 그 약속이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 우리의 생애 동안에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곤고한 세월을 80년 이상 견뎌야 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야곱과 요셉처럼,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시대 새 역사가 반드시 펼쳐질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전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새 시대 새 역사가 언젠가는 활짝 열리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습니다. 이 봄날에도 하나님의 약속과 뜻이 찬란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막는 악한 자들의 모든 계획과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때로는 악한 자들의 간계와 환경 때문에 성도와 교회가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써 우리의 믿음이 정금같이 단련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 새 역사를 여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찬송 4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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