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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41351055
    본문말씀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7-11-05


<2017년 새생명축제 02>

(19:1-10) 친구

2017-11-05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즘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갑자기 허전함과 외로움을 크게 느끼시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그 이유가 혹시 친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만나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마음 통하는 친구, 속사정을 다 털어 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언제라도 달려가면 반갑게 맞아줄 친구가 있습니까? 정기적으로 여러분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친구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도 불편하기는커녕 반갑기만 한 친구가 있습니까?

 

친구의 소중함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다른 좋은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구는 생명같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즉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높이 올라간 자일수록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승진과 출세를 위해 우정을 뒷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라던 대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고 좌절하게 되는 것은 진정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는 보고서가 미국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친구의 존재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양한 실험보고서가 의학계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따뜻하고 견고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면역기능이 강화되고, 암과 관상동맥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낮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고, 나이에 비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소그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생명이 연장되고 질병에 대해서도 면역성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외롭게 살면 면역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친구가 없거나 이혼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유방암 환자들은 면역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스탠포드 대학 의료센터의 데이비드 쉬피겔 박사는 암 치료의 방법으로 인간관계의 결속을 장려했습니다. 따뜻한 인간관계의 결속이야말로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치료의 회복을 가장 빠르게 하는 요인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만한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면역체계의 약화와 파괴를 미리 막아주는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친구관계의 단절이나 상실은 질병의 부분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대로 친구간의 깊은 우정은 인생역경의 때에 더욱 그 빛을 발합니다. 성경도 친구간의 우정을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4:9-12)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영육 간에 건강하게 사는 자,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자는 대체로 우정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친구와의 우정을 발전시켜 가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오늘 읽은 성경의 이야기는 2000년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셔서 그의 삶을 바꾸어놓으신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어떤 자였습니까? 여리고 세관의 세리장이었습니다(1-2).

 

* 여리고 세관: 고대문헌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여리고에는 제법 큰 세관이 있었다. 세관에는 세리장과 여러 명의 세리들이 있었다.

 

* 세리가 했던 일: 세금징수원. 지역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로마 당국에 납부했다. 정한 납입액보다 초과한 부분은 지역 세관의 몫으로 할당되었다. 그래서 세리들은 가능한 세금을 초과 달성하고자 했다. 초과한 세금은 서로 나누어 가졌다. 그래서 그 당시 세리들은 대체로 부자였다.

 

* 세리를 향한 유대 동족들의 평판: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되었다(7). 이유는 두 가지였다. 로마를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일제시대 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들을 매국노로 생각했던 것과 같다. 그리고 세금을 초과 징수함으로써 부정축재 한 자였기 때문이다.

 

* 세리장: 세관원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였다. 삭개오가 세리장이 되기까지는 아마도 상당한 기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삭개오는 그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더구나 그는 부자였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와 부가 그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동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겠고 한 편으로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오늘의 설교제목이 친구인데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삭개오에게 친구가 있었을까요? 물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친구들이었는지는 의심이 갑니다. 삭개오에게 가까이 했던 자들은 대체로 그의 직위와 부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리했을 것입니다.

 

(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그러므로 지금 삭개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친구,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였을 것입니다.

 

(17: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27:6)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삭개오는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습니다.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동네를 통과하신다는 겁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대단한 분이신데 원하시기만 하면 못 고치는 질병이 없고, 훌륭한 설교자요, 그 당시 랍비들보다 훨씬 뛰어난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에게 더 놀라운 소식은 예수가 죄인과 창기와 세리들의 친구로 자처하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신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는데 이미 길 좌우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 별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일어나는 강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저만치 앞에 있는 뽕나무였습니다. 뽕나무는 자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대신에 방해받지 않고 예수님을 가장 자세히 볼 수 있는 절호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4).

 

5: 예수님께서 뽕나무에 접근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예수님의 모든 동작과 얼굴의 변화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자기를 우러러 보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순결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순결과는 상관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를 때 다들 속으로는 빈정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금방 자기 이름을 부르실 때에는 정말 친한 친구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을까? 그렇다면 나의 모든 과거도 아실거야! 그렇다면 소문대로 예수님은 우리 동족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구원자)이실까? 그래서 나의 미래를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실까? 내 이름대로 나를 순결한 자로 회복하시는 분이실까?”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유대인들은 재물보다 명예를 더 귀히 여깁니다. 나그네가 자기 집에서 하루 묵어가겠다는 것은 그 집의 큰 명예요 경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의 후한 인심이 소문이 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서 하루를 묵는다는 것은 삭개오의 친구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삭개오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경사가 난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삭개오는 흥분했습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런 기쁨을 누린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이제 삭개오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삭개오의 중대한 결심을 선포하는 8절로 바로 넘어가지만 이 결심의 공포가 있기 전에 삭개오와 예수님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무슨 대화가 오고갔을까요?

 

삭개오가 예수님께 사례하면서 질문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왜 제 집에서 하루 묵겠다고 하셨습니까? 혹 제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 등등. 예수님께서 친절하게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이유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애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을 기록한 복음서 기자는 침묵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삭개오가 나누었던 이야기는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예수님께 얘기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비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비밀이 있는 한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언제 참 자유와 해방을 누립니까? 비밀을 공개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모든 비밀을 다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비밀을 얘기할 때도 친밀한 정도에 따라 얘기하는 정도가 다르지요. 그래서 어떤 비밀은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말 못할 비밀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예수님께 자기의 비밀을 숨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밀을 말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비밀이라도 예수님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릴 때 예수님께서는 그 비밀을 다 들으시고 우리를 그 비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여러분, 숨기고 싶은 비밀 가운데 가장 큰 비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허물과 약점과 상처와 번민과 죄가 아니겠습니까?

 

삭개오는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진지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참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 증거가 8절입니다. 삭개오의 결단을 보세요!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 제가 가진 돈, 별것 아니군요! 세리장이라는 자리도 제 행복과는 무관하군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수님 만나니 비로소 살맛이 납니다. 이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군요! 이제 제 재물을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제 이름대로 이제 순결하게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선언:

(19:9-10)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누구에게 있었는가?’라는 점입니다. 여리고에서 가장 소외된 자,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잃어버린 자, 즉 찾아야 할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최고의 관심을 가지졌습니다. 그가 삭개오였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그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최대의 관심을 집중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소외된 자였습니다.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매국노로 낙인이 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구제 받을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에서 완전히 제외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삭개오일 거라고 동네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셨습니다. 삭개오의 구원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다!’라는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가지실까요? 이미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니라 오늘 처음 교회로 어려운 걸음을 한 여러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자 용기를 내어 이곳에 발걸음을 옮기신 여러분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최고의 관심을 가지시고 대면하시는 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참으로 귀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VIP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누가 지어주셨는지 모르지만 모두 아름다운 이름, 귀한 이름 아닙니까? 그 귀한 이름을 오늘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이름에 걸맞게 살기를 바라시면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들어오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들어오시려고 하실까요?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행복한 삶,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가 기록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믿을만한 책입니까? , 그렇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지금도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을 진리의 책으로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믿습니까? 왜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질까요? 성경을 믿고 사니까, 예수님을 믿고 살아보니까 행복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삭개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최고의 친구로 삼으시면 삭개오처럼 새 사람이 됩니다. 기쁨이 회복되고 행복한 삶이 활짝 열립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것입니다.

(15:13-15)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3년의 사역기간 내내 제자들과 친구로 지내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나아오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게로 적극적으로 찾아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삭개오를 찾으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노크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기 위해서 입니다. 노크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함께 먹겠다고 하십니다. 먹는다는 것은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되 예수님께서 손수 준비하신 것으로 우리를 풍성히 먹이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실 축복은 기쁨과 감사와 평안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행복한 삶이 열립니다. 자신만 아니라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복된 사람 되려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하셔야 할 일 하나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야말로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그것만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문을 여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좋은 친구가 여러분의 집에 찾아와 벨을 누른다면 여러분은 급히 달려 나가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반갑다 친구야!” 얼싸안고 환영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예수님이 서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지금 여십시오!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은 그저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가셔서 여러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찬송가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성경은 마음의 문을 여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기도해보세요.

 

<영접기도문>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세요. 예수님이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 시간 제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수님,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주세요. 이제부터 제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저의 삶을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기시고 대신에 기쁨과 감사와 평안,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가득하게 채우십니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의 삶입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이런 축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환영할 때 여러분이 누리게 될 가장 놀라운 복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친구들은 떠나거나 배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가 되십니다. 떠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좋은 친구로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여러분을 가장 바르고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신실하신 예수님의 약속이요 복음입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분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을 친구로 모셔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한 인생이 열립니다.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 찬송가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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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17절
    • 설교일 :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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