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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86717499
    성경본문
    로마서 11:25~36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8-08-26

<로마서강해 27>

(11:25-36) 하나님의 구원계획

2018-08-26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교리적 진술 (분석과 논증)

12-16: 구원 받은 성도들의 바른 삶 (적용)

그리니까 오늘 읽은 말씀이 로마서 전반부의 결론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는 25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에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형제들”: 다수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로마교회의 성도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지 말라!”: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사도 바울이 깨달은 이 신비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영적 자만은 영적 무지를 낳는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의 영적인 지식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의 영적인 지식이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간구했습니다.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성도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즉 성도가 갖추어야 할 할 영적인 지식들:

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가 장차 하나님께 받아서 누리게 될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가? 우리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성도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기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만 아니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영적인 지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연륜이 늘어날수록 영적인 지식도 올바르게 자라야 합니다.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하는 자들을 보면 더욱 겸손해져서 끊임없이 영적인 지식의 성장을 추구합니다. 즉 성경을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배우고자 열심입니까? 아니면 성경 배우기를 멈추었습니까? 성경 배우기를 멈추면 신앙이 퇴보합니다. 아는 척하지만 실은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무지가 영적인 교만을 낳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지식의 성장을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교만의 완벽한 예방은 알아야 할 것을 바르게 아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다시 25절을 보세요.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이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신비는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할 신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깨닫게 된 그 신비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신비의 내용이 25절 하반절에서 2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11장 앞부분의 내용(축복의 사슬 혹은 축복의 연쇄 폭발)을 다시 요약한 것입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알아야 할 그 신비를 세 단계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됨(25):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함

일시적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구원받기)까지

부분적임: 더러는

이방인이 구원받음(25): 많은 이방인들(충만한 수)이 유대인 대신에 구원받음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음: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혹은 거국적으로)가 하나님께 돌아옴

기록된 바”(26절 하반절-27): 구약예언의 성취.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사역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됨. 그때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며 그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사면)하실 것임. 그로써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됨.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능한 근거(28-29):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랑(긍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긍휼은 한이 없다. 그 예증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지만(복음의 원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끝까지 긍휼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 즉 전 인류를 포괄하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탐구하면 할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나 모든 신체가 일그러졌고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이 뒤틀려 고통하는 송명희 자매의 시 가운데 그 이름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송명희 시인처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 신비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신비의 핵심은 하나님의 부르심(구원초청)에 불순종하는 자들 때문에 오히려 복음전파가 더욱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복음의 영향력이 위축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방해세력이 거세면 거셀수록 하나님의 복음이 더욱 힘 있게 전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이며 교회의 역사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 안에는 불굴의 생명이 약동하기 때문이요 그 안에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핍박을 피하여 많은 성도들이 조금은 안전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도피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피였습니다. 성도들이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곳곳에 교회가 섰습니다. 핍박의 바람을 타고 하나님의 복음이 더 빨리 더 힘 있게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진 것입니다. 복음의 승리입니다.

 

심지어 이방지역인 다메섹에까지 복음이 진출했고 그곳에도 교회가 섰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년 사울이 화가 났습니다.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단을 박멸하기 위하여, 기독교 복음의 진전을 막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도리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성령과 복음이 그를 땅 끝으로 가게 했습니다. 복음의 위력입니다.

 

그 복음 때문에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복음의 위력이 나타났습니다. 1:12-13을 보세요.

 

(1:12-13)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그 어떤 세력도 복음의 진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로마의 권력도 복음의 위력 앞에서 굴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지만 그로써 하나님의 복음이 로마의 심장부로 파고 들어가 철옹성 같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승전보를 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0-32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완악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 즉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긍휼을 충만하게 부으십니다.

 

그래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다인종 다국적의 무리들이 구원받습니다.

(7:9-10)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왕 노릇하게 된다.

(5:19) 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30-32절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모든 불순종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위력이 마침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고 있는데 그것이 결코 복음의 실패가 아니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것 때문에 도리어 이방인이 구원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도 복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자기 동족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복음을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잠시 중단하고 이방인 전도에 주력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면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들이 복음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방선교에 주력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세계의 복음화가 지금보다도 훨씬 미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다르게 생각합니다. 핍박이 있으면 거기서 죽을 때까지 버티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충성된 제자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핍박을 받으면 이웃 동네로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곳에만, 한 사람에게만 마냥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크게 보아라! 더 넓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도 복음 전해야 할 곳이 많은데 무슨 해외선교냐?” 이 생각이 옳다면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복음을 전했는데 만약 미국이 완전히 복음화 된 다음에 해외선교를 하자고 그들이 생각했다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미국이 100% 복음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100% 복음화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8의 약속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물론 이 말씀대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으로 퍼져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완전히 복음화 된 다음에 유대가 복음화 되고 온 유대가 복음화 된 다음에 사마리아로 복음이 전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세요!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이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복음의 진전을 방해했습니다. 그랬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과 제자들이 전 예루살렘의 복음화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지역에까지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행 1:8의 약속과 오늘의 본문을 연결하면 복음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갔다가 그리고 다시 유대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복음 전파의 순서이며 선교의 실제 역사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마음 한 구석에 안타까움과 큰 고통이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온 가족이 예수 믿는 것, 큰 복입니다. 짝믿음 가정의 성도들에게 최고의 소원 가운데 하나가 가족구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성취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내 가족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물론 최선을 다하여 가족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만 모든 힘을 쏟는 것이 꼭 성경적이거나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 되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좋은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들이나 이웃에게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혹 남편이 예수 믿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울까요? 막무가내로 남편을 교회로 데려오려고 하든지,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한다면,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너나 잘 믿고 천국 가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머리를 써야 합니다.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가 회심한다면 남편도 돌아오기 쉬울 것입니다. 남편의 친구를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 우선 그분의 부인이 회심한다면 더욱 희망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과 친하게 지내면서 기회를 보아 전도하면 생각보다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두 아내가 힘을 합하여 남편의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남편의 친구가 회심하면 예수 믿는 세 사람이 힘을 합하여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면 효과가 아주 클 것입니다. 아내의 말은 안 들어도 친구의 말은 듣는 것이 우리나라 남편들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새생명축제가 두 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초청을 쾌히 수락하는 분들이 있으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초청을 거절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이유는 그것으로 복음이 위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25절에서 32절까지 사도 바울이 밝힌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계획은 복음의 진전을 막을 자 아무도 없다. 열악한 환경도 복음의 진보를 방해할 수 없다. 복음의 진전을 방해하면 할수록 오히려 복음은 더욱 강력하게 전진한다. 결국 복음은 승리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계획에 관한 설명을 중단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된 그 신비가 자기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으시고 홀로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성실하게 집행하셔서 마침내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경탄한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깊고 놀랍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그 지혜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33)”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구원의 성취는 우리 인생들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왜 하나님의 구원 안에 신비가 응축되어 있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이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온전성

전인적 구원: 개인의 영과 육의 구원. 개인의 온전한, 총체적, 전인격적 구원

전 인류의 구원: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구원. 구원에서 제외될 민족은 없다.

전 우주적 구원: 만유의 통일. 만물이 새롭게 되고 온전하게 됨.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의 완성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적 구원의 경험과 지식으로 인해 완성될 미래적 구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크게 경탄할 것이다. 미래에 완성될 구원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 안에 들어있는 신비

왜 하필이면 나를 구원하셨을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 과연 얼마나 될까? 계시록에 나타난 대로 허다한 무리라고 했는데!

언제 온 우주가 새로워질까?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실까? 만유의 통일이 이루이지는 그날, 우리의 변화된 모습은 어떨까? 새 하늘 새 땅의 모습은?

 

뿐만 아니라 그 비밀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집행과정)에 대해서도 감추어진 신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당신의 은총을 풍성하게 베푸실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한 점 의심 없이 믿었지만 그러나 그가 지금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온전히 경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요하심은 미래에 더욱 풍성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부요하심은 자신이 앞으로 계속 경험함으로써 알게 될 비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하심에 대하여 감탄한 것입니다. 33-36절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한 성도의 진지한 신앙고백이자 송영입니다.

 

주님 홀로 구원을 계획하시고 집행하시며 이루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긍휼은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선물이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구원은 만유의 구원입니다. 만유의 회복과 완성입니다. 모든 만물이 주님에게서 나오고 주님에 의해 존재하며 주님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한 모든 만물을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마침내 그 만물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을 포함하는 만물이 주님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만물이 주님을 위해 존재해야 마땅합니다.

바로 그 주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만물로부터 찬송과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면 알수록 성도는 겸손하게 됩니다. 복음의 위력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면 할수록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더 큰 복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큰 복을 누리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웃에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새생명축제를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바울처럼 하나님의 크신 복을 경험하고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송영(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으로 가득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송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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