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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41153148
    성경본문
    사도행전 2:37~42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6-09

(행 2:37-42) 이 패역한 세대에서

2019-06-09 성령강림절 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성경은 성령님을 강으로 비유합니다(요 7:38~39; 사 44:3).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려면 성령님의 강이 흘러야 합니다. 그 강은 사막 가운데로 흘러서 사막을 옥토로 만듭니다. 닿는 곳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풍요로운 낙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성령님의 강이 우리의 심령과 교회에 풍성히 흐르길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차고 넘쳐서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강은 오순절에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발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료들, 120여명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1~4절). 그들 모두는 성령님으로 충만했습니다(4절). 그들이 오순절을 지키러 온 순례 객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순례 객들의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이 패역한 세대, 말세입니다. 말세에 일어나는 징조 중 하나는 자연재해나 인재와 같은 큰 재난입니다(19~20절). 도처에서 일어나는 큰 재난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징조로 보아야 합니다(20절). 큰 재난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범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패역한 세대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심판을 아무리 대비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사람은 도무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말세에 나타날 또 다른 징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시는 큰 구원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죽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32~33절).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36절). 바로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을 때, 패역한 세대라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님을 내주케 하십니다(38절). 오직 성령님만이 이 패역한 세대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 증거가 사도행전 2장에 나옵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영혼들을 살려내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120여명의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3000여명의 새로운 제자들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41~47절). 그렇게 변한 사람들을 통해 형성된 예루살렘 교회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 모여든 순례 객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했습니다(43절). 뭇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절). 사람들이 몰려와 예루살렘 교회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우습게봅니다. 성도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칭찬 받을 일도 없고 매력도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거룩한 충격을 주지도 꿈과 희망을 주지도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면 삶의 목적과 이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갈망하게 됩니다. 천국을 지금 여기서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에 내주하셔서 진리를 향해 바르게 반응하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은 자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다 보면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자기 힘으로는 순종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혼자만의 기도로는 부족함을 느껴서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기도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간증을 나누기 위해 성도들이 자주 모입니다. 모여서는 모든 것을 자원하여 나눕니다. 기쁨과 평화가 넘칩니다. 천국을 맛봅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이 그러한 성도와 교회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사라집니다. 좋은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합시다. 그래야 개인과 교회가 살아납니다. 그래야 세상에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복을 나누는 자들이 됩니다. 특히 자녀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부모와 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다가올 여름사역들도 성령님의 충만 없이는 잘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름에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 성령님의 생수를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이요 우리의 최대 기도제목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갈망하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전문

강원도 태백시에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습니다. 황지라는 이름의 연못인데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만은 늘 같은 양의 물이 샘솟는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낙동강의 발원지가 황지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너덜샘이라고 주장하지만 황지나 너덜샘 둘 다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기서 발원하여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굽이쳐 갈대밭으로 유명한 을숙도까지 장장 513.5km를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크고 긴 낙동강이 한 곳 조그마한 샘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나는 샘 근원의 위력입니다. 

 

많은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낙동강이 없었다면 경상도는 사막이 되었을 것입니다. 강은 그 주변을 옥토로 만드는 생명의 젖줄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을 강으로 비유합니다. 요 7:3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요한복음의 저자가 설명합니다.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기 “생수의 강”이란 결코 마르지 않는 강을 뜻하는데 예수님께서 주실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묘사할 때 “강 같은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성령님을 “풍성히 흐르는 강”으로 자주 비유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들면,

 

(사 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강 없는 낙원을 생각할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도 강이 흘러야 하는데 그 강이 성령의 강입니다. 

 

성령의 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뿐 아니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도 거슬러 흐르기도 합니다. 거친 산맥도 넘어가기도 합니다. 사해 같은 죽음의 바다에도 흘러들어가 바다를 살립니다. 성령의 강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마다 열리는 풍요로운 낙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의 소망은 성령의 강이 우리의 심령과 교회에 풍성히 흐르는 것입니다. 더 좋기는 성령의 강이 우리 안에서 차고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행 2장의 말씀은 성령의 강이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발원하자마자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언합니다.

 

성령의 강이 어디서 발원했습니까?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입니다.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료들, 120여명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한 열흘쯤 기도모임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1-4절).

 

여기 1-4절에서는 성령님을 강으로 비유하지는 않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폭풍) 소리로, 불꽃으로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 방언은 그들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입을 여셔서 외국어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기적입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임하셨는가,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성령님으로 충만했다는 것입니다(4절). 120여명의 성도들 모두가 성령님에게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각 나라에서 오순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온 순례 객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큰 일(복음)을 아주 효과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청중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이해하는데 전혀 장애가 없었고 그들의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복음을 더 듣고자 하는 갈급함이 무리들 가운데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 베드로가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설교문이 14-4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40절이 베드로 설교의 목적과 요지를 잘 밝혀줍니다. “여러분들이여,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을 “이 패역한 세대에서”라고 정한 것은 우리 모두가 절박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해야 할 때가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지금 이 세대는 베드로 사도가 설교했던 2천 년 전보다 더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패역한 세대”란 “뒤틀린 세대, 타락한 세대, 사악한 세대, 죄가 뒤엉켜있는 세대, 죄로 가득한 세대”란 뜻입니다. 이것을 한 단어로 말하면 “말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설교 서두에서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말세를 언급했습니다(17절). 말세란 문자적으로는 “마지막 때”라는 뜻입니다. 요엘서에는 말세라는 어구 대신에 “그 후에”라는 시간적 부사구가 쓰였는데 “그 후”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날을 뜻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바로 그 날이 말세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사도는 말세가 지금 도래했다고 선포하면서 말세의 징조로 두 가지를 듭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재난입니다(19-20절). 이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말세에 큰 재난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큰 재난으로 자연재해와 인재(전쟁)를 들 수 있는데 그 재난들 때문에 인명의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재해란 기후의 이상변화, 태풍, 해일, 지진 등을 일컫습니다. 요즘 여러 곳에서 지진과 해일이 발생하여 수천 명이 죽고 수많은 이재민이 생겼다는 보도를 자주 접합니다. 재난을 당한 장면들을 TV를 통해 보면, 본문 19절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피와 불과 연기로 뒤덮여있습니다.

 

천재지변만 아니라 인재 또한 심각합니다. 사람이 일으킨 재난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전쟁입니다. 도처에서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짐승처럼 살육되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피와 불과 연기로 가득합니다.

 

이처럼 각종 재난이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일어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통절하게 느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인재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시대가 지금이요 말세입니다.

 

20절에는 말세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으로 표현합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도처에서 일어나는 큰 재난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징조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큰 재난이 도처에서 일어날까요?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요 패역한 세대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 양심이 무뎌진 시대, 죄를 지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 오히려 죄를 자랑하는 시대가 말세입니다. 그런데 패역한 세대의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패역한 세대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대비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구원이 전혀 불가능한 것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때가 말세입니다. 마치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려 의료적인 치료로는 살 가망이 전혀 없게 된 것과 같습니다. 전방에 철로가 끊겨있는 것도 모르고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망하는 것, 시간문제입니다. 이것이 말세요 패역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말세에 나타날 또 다른 징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구원입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사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비상한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아들을 보내신 사건입니다. 그 아들이 예수님이십니다.

 

22절 이하에서 보듯이 오순절에 행한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 백성들이 불과 오십일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무지한 당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 머물러 계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예언한 대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이 일의 증인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의 구원을 위해 큰 일을 행하셨는데 그것이 여러분들이 지금 목도하는 바대로 우리 가운데 강림하신 성령님입니다.” 32-33절입니다. 

 

베드로는 36절에서 설교의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경배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십니다.”

 

이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마음에 찔려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37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때 베드로 사도는 정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 있다는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38-40절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는데 그 죄 사함과 구원의 결정적인 증거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내주하심입니다.

 

이것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가 분명 패역한 세대이지만 동시에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임을 선포했습니다.

 

(고후 6:1-2)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처럼 말세는 사람들이 점점 더 패역해 가는 시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이 비상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진리를 실감나게 경험하는 시대가 말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거짓으로 진리를 비웃고 도전하고 시대입니다.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기보다는 역사를 얼마든지 왜곡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시대입니다. 돈과 인기와 명예를 위해 얼마든지 거짓을 창작하고 거짓을 숭상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고도 당당해하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인기를 누리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와 교회를 조롱하는 시대입니다. 죽음과 미움과 거짓과 죄악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하기에, 성부 하나님께서 말세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33절). 성령님이 오신 것은 이 패역한 세대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만이 이 패역한 세대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 증거가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역사적인 문서인 사도행전 2장입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은 120여명의 성도들을 보세요. 대표적으로 베드로 사도를 보세요.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이전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 생수의 강이 배에서 넘쳐흐르는 사람, 구원의 소식을 담대히 전하는 사람, 뭇 영혼들을 살려내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120여명의 성도들만 그랬습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삼천 여명의 새로운 제자들도 역시 능력 있는 삶았습니다(41-47절).

 

그렇게 변한 사람들을 통해 형성된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 모여든 순례 객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했습니다(43절). 뭇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절). 사람들이 몰려와 예루살렘 교회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우습게봅니까?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과 별 다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려움을 주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 칭찬 받을 일이 별 없는 성도와 교회, 매력이 없는 성도와 교회, 거룩한 충격을 주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 성도와 교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과 교회를 비웃고 조롱하는 주장이나 영화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와 성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일까요? 올바른 대안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이 패역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큰 일에 동역하는 충실한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큰 변화는 삶의 목적과 이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달라지는 이유는 거룩한 꿈을 꾸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6-18절에서 요엘 선지자가 말씀한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은 말세에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에 사로잡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사람은 그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신앙세계를 지금 여기서 경험하기를 사모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을 받은 수준, 즉 성령님의 내주로만 만족하는 수준으로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천국을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의 최대 소망이 됩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와 교회가 왜 그 같은 소망을 가지게 될까요?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에 내주하셔서 진리를 향해 바르게 반응하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께서 일차적으로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사도의 가르침인 성경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자연히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성경 말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까이하다 보면 성경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자기 힘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혼자만의 기도로는 부족함을 느껴서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여기서 합심기도와 중보기도의 위력을 체험합니다. 기도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기도응답에 대한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놀라운 기적도 체험합니다. 은혜의 간증을 나누기 위해 성도들이 자주 모입니다. 모여서는 모든 것을 자원하여 나눕니다. 기쁨과 평화가 넘칩니다. 천국을 맛봅니다. 이것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불신자들이 그러한 성도와 교회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사라집니다. 좋은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절에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사모합시다! 그래야 개인과 교회가 살아납니다. 그래야 세상에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복을 나누는 자들이 됩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에 땀 흘려 일해야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추수하듯이 교회도 가을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여름에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특히 자녀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부모와 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이 여름사역들도 성령의 충만 없이는 잘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름에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능력 있게 사는 비결은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마다 성령의 생수가 배에서 넘쳐흘러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 성령의 생수를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이요 우리의 최대 기도제목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와 교회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까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죄와 허물을 회개하기 

2)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하기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예수님처럼 거룩한 삶 사랑의 삶을 살기 

4) 교회생활을 착실하게 하기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한 주간되기를 축복합니다. (끝) 찬송가 19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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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신의 눈, 마음의 눈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9장 1~12절
    • 설교일 : 2023-01-15
  • 성령의 열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 설교일 : 2023-01-08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일 : 2023-01-01
  •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장 26~56절
    • 설교일 : 2022-12-25
  • 영원한 사귐
    • 설교자 : 채충원 목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1장 1~4절
    • 설교일 : 2022-12-18
  •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시련과 믿음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6장 16~21절
    • 설교일 :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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