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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39812958
    성경본문
    룻 2:8~13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5-26

(룻 2:8-13) 밝은 미래를 여는 하나님의 사람

2019-05-26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는 유력한 자입니다(2:1). 유력한 자란 일차적으로 부호라는 뜻이지만, 룻기 전체를 볼 때 존경 받는 지도자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룻기 저자가 보아스를 유력한 자로 소개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보아스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법 큰 밭을 소유했던 보아스는 추수 때가 되면 여러 명의 품꾼들을 고용했는데, 그 품꾼들에게 보아스는 축복을 받았습니다(2:4). 그리고 자기 밭에서 곡식을 줍고 있던 룻에게서도 축복을 받았습니다(10, 13절).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도 축복을 받았습니다(2:20). 베들레헴 주민들과 장로들에게도 축복을 받았습니다(4:11~12).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늘 마주치는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까? 대개 유력한 사람들을 보면 바깥에서는 존경을 받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이 지내다 보면 단점과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정치가가 백성들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사가 학생들에게, 목자가 목원들에게, 장로와 목사가 성도들에게 인정과 칭찬과 존경받는 것,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아스처럼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보아스는 이웃 사랑이 몸에 베여있었습니다. 보아스는 힘없는 자들을 따듯하게 축복했습니다(2:4). 특히 가난하고 불쌍한 룻에게 최선을 다하여 선행을 베풀었습니다(8~9절). 그리고는 룻을 초대하여 편안하게 식사하도록 배려했습니다(2:14). 칭찬과 격려로 최고의 배려를 보여주었습니다(2:11~12). 룻이 갑작스레 청혼했을 때, 룻을 박절하게 대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격려했습니다(3:10~11). 한 걸음 더 나아가 율법에 명시된 수준을 넘어서는 선행을 실천했습니다(2:15~16). 참 경건은 이처럼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심으로 참 경건을 보여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율법의 요구에 지나도록 행동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세상의 관례와 법을 뛰어넘어 섬기는 삶을 본으로 보이셨습니다. 특히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보아스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예수님과 같이 남을 대접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마 7:12, 20:28, 23:11~12).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고 섬긴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십니다(마 25:40). 이처럼 참된 행복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서 찾아옵니다. 보아스처럼 이웃 사랑이 몸에 베인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보아스는 인간관계나 사회적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의 혼인을 앞두고 육신의 정욕이나 감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합법적인 허락을 받을 때까지 룻을 존귀하고 거룩하게 대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신앙과 인격은 참으로 고결하고 성숙했습니다. 사회적 질서도 잘 지켰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가계가 온전히 회복되려면 기업 무르는 법과 수혼법이 동시에 지켜져야 했습니다. 이것을 안 보아스는 이 두 가지 법을 준수하기 위해 성실하면서도 민첩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에 대하여 아무도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행위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자가 유력한 자요 참 지도자입니다. 이런 자가 가정은 물론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밝은 미래를 여는 지도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보아스처럼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는 좋은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가 한 말들을 보면 거기에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2:4, 11~12, 3:10~11, 13).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실로 착한 지도자, 착한 주인, 착한 가장, 착한 남편, 착한 사위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약 1:27).

  보아스는 이처럼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보아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열쇠는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심령에 내주해 계십니다. 보아스처럼 유력한 지도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다 성숙한 사람, 보아스 같이 유력한 사람이 되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의 충만을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하여 살면 점점 보아스 같은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유력한 자들이 되어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밝은 미래를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전문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우리는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좋은 부부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교회학교의 교사는 물론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는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미래를 밝히 열었던 성경의 한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룻기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보아스입니다. 

 

룻기의 저자는 1장에서 두 여인을 중심인물로 등장시켰습니다. 나오미와 룻입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서 룻기의 저자는 보아스를 또 한 사람의 중심인물로 등장시킵니다.

 

5월을 시작하면서 새벽기도회 때에 다루었던 본문이 룻기였습니다. 룻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룻기의 세 주인공,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 중에서 남자 주인공인 보아스에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꿈이 생겼습니다. 보아스 같은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어떤 자였습니까?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이 있습니다. 2:1입니다: “유력한 자.” 유력한 자란 일차적으로 부호라는 뜻입니다. 큰 재산의 소유자나 땅과 밭을 많이 가진 대지주를 뜻합니다. 하지만 룻기 전체를 읽으면 여기 유력한 자를 단순히 부호로만 볼 수 없습니다. 존경 받는 지도자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보아스가 어떤 자였기에 룻기의 저자가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고 소개했을까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보아스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보아스는 제법 큰 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수 때가 되면 여러 명의 품꾼들을 고용했습니다. 2:4에 보면 그 품꾼들이 보아스를 축복했습니다.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곡식을 줍고 있던 룻에게서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룻 2: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룻 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이 집에 돌아와서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아스의 선행을 얘기했을 때 나오미도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룻 2: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4장에 가면 베들레헴 주민들과 장로들도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룻 4:11-12)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저는 보아스가 참 부러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축복하는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가족들과 교회 성도들과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칭찬하고 인정하고 신뢰합니까? 늘 마주치는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까? 

 

대개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바깥에서는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매일 대하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이 지내다 보면 단점과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가족이나 직장의 상사나 동료나 부하직원들이나 친구들아나 이웃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정치가가 백성들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사가 학생들에게, 목자가 목원들에게, 장로와 목사가 성도들에게 인정과 칭찬과 존경받는 것,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런 자들이 정말 유력한 자입니다. 보아스처럼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보아스는 이웃 사랑이 몸에 베여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과 인정과 축복을 받은 것은 그의 인격과 행동이 착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는 품꾼들에게 따뜻한 말로 축복했습니다.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보아스는 일꾼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타작할 때는 일꾼들과 함께 보리를 까불리고 함께 어울려 먹고 유쾌하게 지냈습니다. 밤에는 일꾼들과 함께 추수한 곡식 단 더미 곁에서 잠을 잤습니다. 

 

대개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끼리 어울립니다. 대신에 밑에 있는 사람들과는 친밀하게 교제하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그럴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사치스럽고 격식을 따지고 고상한 척합니다. 

 

하지만 힘없는 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자가 정말 유력한 자요 경건한 자입니다. 보아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참 경건은 기도하고 찬송하는 데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의 능력이 드러나야 제대로 된 경건입니다. 

 

보아스는 가난하고 불쌍한 룻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룻에게 한 말과 행동을 보세요.

 

(룻 2:8-9)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은 이방여자요 과부였습니다. 더구나 연로한 시어머니까지 봉양해야 하는 그 당시 가장 힘없는 자요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런 룻을 보아스는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고 배려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아니면 무관심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궁색하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피해버리지는 않습니까? 부자들이나 힘을 가진 자들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자기들에게 별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사람이었습니다. 룻에게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했습니다. 일하는 소녀들과 함께 있으면서 목마를 때는 언제든지 물을 넉넉히 마시라고 했습니다. 소년들에게는 룻을 놀리거나 건드리지 말라고 주의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에까지 초대했습니다. 사실 식사에 초대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대우입니다. 다시 말해서 룻을 가족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편안하게 마음껏 식사하도록 자상하게 배려했습니다.  

 

(룻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보아스가 룻에게 한 최고의 배려는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룻 2:11-12)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사람은 육신의 배부름보다 더 소중한 갈망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룻이 고국을 떠나 타국에 와서 가장 소망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같은 백성으로 받아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그렇게 대해주었습니다. 그것도 과분하게 칭찬하고 하나님의 복까지 빌어주었을 때 룻이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3장에 보면 타작마당에서 보아스가 자고 있을 때 룻이 몰래 들어가 그 발치에 누웠습니다. 인기척 때문인지 보아스가 놀라 깨어 보니 발치에 룻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룻이 과감하게 청혼합니다. 보아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보아스는 룻을 박절하게 대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격려했습니다. 

 

(룻 3:10-11)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사실 저도 남을 격려하는 것이 잘 안됩니다. 그런데 정말 유력한 자는 힘없는 자들을 칭찬하고 격려함으로써 그들을 세워줍니다. 교역자들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할 때 그 시작에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새 하루를 열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시고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교회의 지도자들인 교역자들과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과 권사님들, 교사 선생님들과 목자 부목자님들이 성도들과 자녀들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보아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율법에 명시된 수준을 넘어서는 선행을 아주 자연스럽게 실천했습니다.

 

(룻 2:15-16)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모세 오경의 율법서에는 추수할 때 밭모퉁이는 조금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밭에 떨어진 곡식은 줍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객을 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곡식을 일부러 뽑아 버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그렇게 시킨 것은 율법의 요구를 넘어서는 선행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바로 그런 사역이었습니다.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율법의 요구에 지나도록 행동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선생이 종의 발을 씻기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례와 법을 뛰어넘어 섬기는 삶을 본으로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정말 흘러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에게 베푼 사랑도 바로 그 같은 아가페 사랑이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보통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라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좀 더 즐겁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불평하고 짜증을 내며 살았던가?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라며 즐겁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합니다. 

 

셋째는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임종을 앞두고는 “좀 더 나누면서 살 수 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지 못했을까, 좀 더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나서 크게 후회한다고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직장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실패한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 실패한 사람은 15%에 불과했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실패한 85% 사람들에게서 두 가지의 중대한 결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는 매사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보아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칭찬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가 잘 아는 황금률입니다. 이 말씀은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을 성취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대접하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높아질수록 더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마 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고 섬기면 천국의 상급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심판의 날에 우리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주었는지, 벗은 자를 입혔는지, 병든 자를 돌보았는지 질문하실 것입니다. 

 

대접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 25:4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고 섬긴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십니다.

 

(마 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에리히 자우어(Erich Sauer)의 금언입니다. “자기만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은 영적으로 쉽게 늙는다. 이기심은 피로를 유발한다. 반대로 사랑의 섬김은 젊음을 유지시켜준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자가 행복한 자일까요?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서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씀합니다. 보아스처럼 이웃 사랑이 몸에 베인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보아스는 규모 있는 사람, 즉 인간관계나 사회적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룻은 자신의 몸을 곱게 단장하고 밤중에 보아스가 누운 이부자리 끝에 몰래 들어가 누웠습니다. 이보다 더 강한 유혹이 있을까요? 하지만 보아스는 육신의 정욕이나 감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합법적인 허락을 받을 때까지 룻을 존귀하고 거룩하게 대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보아스의 신앙과 인격이 참으로 고결하고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덕목이 자제력(절제)일 것입니다. 은밀한 곳,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절제된 모습을 유지한다면 그는 실로 유력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사회적 질서도 잘 지켰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업은 주로 토지인데 이 토지는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자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땅을 파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그 땅을 도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년이 되기 전에도 그 땅을 되살 수 있었습니다. 땅을 판 본인이 되사지 못하면 친족 중에서 대신 사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업 무르는 법”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업은 반드시 아들이 상속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미와 룻은 친족이 땅을 되찾아준다고 해도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상속자인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 땅을 되찾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 그 땅을 살뿐 아니라 나오미든지 룻이든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나오미나 룻의 본 남편의 이름으로 대를 잇는 후손이 됩니다. 이것이 계대결혼법(수혼법)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와 룻의 가계가 온전히 회복되려면 이 두 가지의 법, 기업 무르는 법과 수혼법이 동시에 지켜져야 합니다. 보아스는 이 두 가지 법을 준수하기 위해 성실하면서도 민첩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에 대하여 아무도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행위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가 유력한 자요 참 지도자입니다. 이런 자가 가정은 물론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밝은 미래를 여는 지도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보아스처럼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는 좋은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스의 사람됨을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1.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이웃 사랑이 몸에 베여있었습니다.

3. 규모 있는 사람 즉 사회적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을 종합하면 보아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한 말들을 보면 거기에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2:4, 11-12, 3:10-11, 13). 그 말들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사람이었습니다. 실로 착한 지도자, 착한 주인, 착한 가장, 착한 남편, 착한 사위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그렇다면 보아스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보아스에게 하나님께서는 현숙한 여인 룻을 아내로 주셨습니다. 그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오벳입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3대만에 이스라엘의 찬란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대장부, 보아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어두웠던 400년간의 사사시대를 종식하고 밝은 미래를 열게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모두 보아스 같이 훌륭한 지도자로 잘 성장하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남자들이 모두 보아스 같이 믿음의 대장부, 믿음의 가장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교역자들과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과 권사님들과 교회학교의 선생님들과 목자 부목자님들도 보아스 같이 유력한 지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에 선출될 안수집사와 권사들도 보아스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은 보아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심령에 성령님께서 내주해계십니다. 그 성령님의 별명이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처럼 보아스처럼 유력한 지도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아스 같이 유력한 사람이 되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의 충만을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하여 살면 점점 보아스 같은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보아스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유력한 자들이 되셔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밝은 미래를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끝) 462장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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