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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75446911
    성경본문
    로마서 9:1~5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8-06-17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로마서강해 20>

(9:1-5)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2018-06-17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로마서 8장은 구원의 확신을 노래한 장입니다. 8:37-3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결코 떨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잡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확실함을 힘 있게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9장에 들어서면서 그 분위기가 역전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1-2).

* 큰 근심: 무거운 슬픔, 원통함과 비탄으로 가득 찬 슬픔

* 그치지 않는 고통: 지속되어온 고통, 가중되어 쌓여온 고통

 

그런데 이러한 고통이 수사학적인 표현정도가 아니라 실재하는 고통임을 강조합니다(1).

*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이것은 참말이며 거짓말이 아닌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내 증인이 되신다.

*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한다.

 

왜 바울은 고통 했습니까?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도 회심 전에는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찾아오셨을 때 자기가 지금까지 얼마나 어리석은 길을 걸어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너무 고맙고 귀하여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기 않고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이방 지역에 교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면 질수록 바울에게는 떠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의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 동족들도 예수님을 믿어 복을 받도록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들어가서 자기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의 변함없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이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족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여전히 머물러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부지런히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절할 뿐 아니라 바울을 심히 괴롭혔습니다. 평생 괴롭히고 해를 끼친 자들이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그의 동족들이었습니다. 돌로 친 사람들도 그의 동족이요 태장을 때린 사람들도 동족이었습니다. 재판에 붙여 감옥에 가둔 사람들도 동족이었습니다.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고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벌인 자들도 동족이요 사사건건 미워하고 박해했던 자들도 그의 동족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바울에게 자기 동족 유대인들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원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동족을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미웠지만 그들의 영혼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동족들로부터 박해를 당할 때마다 오히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차고 넘쳤습니다. 그것이 큰 슬픔이 되었고 그치지 않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주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10:1을 보세요.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바울의 간절한 소원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도 이방인들처럼 구원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원이 얼마나 강렬한 소원이었는지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더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 받는다면 그것을 택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바울이 선언했듯이(8:39) 그 어떤 것도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서 자꾸 멀어지는 동족들을 생각할 때 바울은 너무 안타깝고 원통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아 버림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동족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동족을 향한 사랑의 극치입니다.

 

자기 동족들을 향한 바울의 심정은 모세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고 있는 동안에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고 춤추고 놀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해내신 분은 하나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지금 이 백성을 다 죽이시면 이방 민족들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백성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십시오! 만일 백성들의 죄를 꼭 갚으셔야 한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 이름을 지워버려 주소서! 제가 그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성경의 두 사람,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바울이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동족의 구원을 간구한 것입니다. “내가 대신 저주받겠사오니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소서!”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극치에 대하여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의 불길에서 나온 불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대신 저주 받으시고 대신 죄인이 되셨습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나 바울이 동족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대가를 치르겠다고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심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 자들을 향해 지금 어떤 심정을 갖고 계실까요?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훼파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셨습니다.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동족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희생을 치르겠다는 바울의 심정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자 한데서 나온 거룩한 열정입니다. “저대로 가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 내 민족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울의 최대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실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바울의 가슴에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이 쌓였습니다.

 

바울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 이유가 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특권(특별은총)을 받은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이런 족속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모든 축복을 부으셨습니다.

*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져주셨다는 것입니다.

* 양자됨: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기업(유산)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 영광: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만나주시겠다는 것입니다.

* 언약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셨습니다.

* 율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를 닮은 자들로 만들어 복 주시겠다는 선언서입니다.

* 예배: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특권을 받은 민족입니다.

* 약속들: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의 약속들을 뜻합니다. 그 가운데 최고의 약속은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 조상들: 하나님의 약속대로 축복 받은 믿음의 조상들을 일컫습니다.

*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심: 그리스도는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육신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서 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대의 영광이요 최고의 복이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복과 특권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특권과 복을 바르게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당연히 환영했어야 하는데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랑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특권과 복을 받았기에 구원을 제일 먼저 받아야 할 자기 동족들이 복음의 원수가 되어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방해하고 핍박했습니다. 자신은 구원받아 감격 속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 동족들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바울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울분과 원통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설교제목인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두 가지를 적용하려고 합니다.

 

1. 구원의 감격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듯이 구원의 감격이 크면 클수록 고통 또한 가중됩니다. 나는 구원받아 기쁜데 구원받지 않은 가족들과 이웃들을 볼 때 가슴이 쓰라려야 정상입니다! 우리는 주일에 이렇게 예배드리러 주님께 나아왔는데 세상일과 쾌락에 빠져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터져 올라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 혼자 구원받는 것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것, 기뻐해야 하지만 동시에 구원받지 못한 형제들과 이웃들을 생각할 때 고통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주님이 제게 묻습니다. “곽 목사, 너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 주님. 있습니다!” “, 구원받은 것, 정말 기쁘지!” “,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친지와 동족 때문에 바울처럼 고통하고 있느냐?”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주님께서 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고통이 있습니까? 가족과 이웃과 동족의 구원을 위해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까? 나 자신이 대신 저주받는다 해도 내 가족, 내 이웃을 구원하고 싶은 진지한 열정이 있습니까?

 

진짜로 구원의 확신과 감격 속에 사는 자는 불신 가족과 이웃을 향해 고통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고통입니다.

 

올해도 9월 첫째 주일과 둘째 주일에 새생명(전도)축제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7월 둘째주일에 발대식을 할 것입니다. 새생명축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도가 우리 성도들에게 제일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전도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바울이 경험했던 박해의 환경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바울과 같은 구령의 열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에 우리의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울기라도 해야 합니다. 주님, 바울의 심정이 되게 하소서! 주를 모르는 자들에 대하여 큰 슬픔이 생기게 하소서!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게 하소서!

 

2. 전도는 가까운 가족, 이웃, 동족에게 먼저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의 동족들을 향한 관심이 사라질 수 없었습니다. 본문 3절에 기록했듯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자기 혼자만 기쁨을 누릴 수 없어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서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목사가 되기도 하고 선교사가 된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자녀들도 믿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는 가시지 않는 아픔이 가시처럼 박혀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통이 더 깊어집니다. 그래서 엎드릴 때마다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여러분은 불신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 이런 고통이 있습니까?

 

학교 친구들이나 직장의 동료들이나 이웃을 만날 때, 이런 고통이 있습니까? 왜 여러분 곁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주님께 데려오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적어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눈물을 흘려보았습니까? 그런 심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해야 옳습니다.

 

아직 VIP(전도대상자) 카드를 제출하지 못하신 분들, 적잖은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담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보다 우리 교역자들이 VIP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이제 불신 친구들이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멀리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처럼 학교 친구나 직장의 동료나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여간 고민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지런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제게도 VIP를 주소서!” 그래서 교역자들이 논의했습니다. “교우들의 불신가족들을 우리의 VIP로 삼아 기도하고 권하자!”

 

우리교회에 불신 부모, 불신 배우자, 불신 자녀들 때문에 고통 하는 교우들이 꽤 있습니다. 금번 기회에 저희 교역자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저희들이 그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마련해보십시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심방하겠습니다.

 

교역자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교우들은 VIP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자주 만나고 있는 자들 가운데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자가 누군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여러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자가 누군지, 생각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돌아오면 나는 여한이 없겠네!’ 라고 생각되는 그 사람이 바로 VIP 1호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 혼자 구원 받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동족 가운데 아직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우리는 구원의 감격과 더불어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통을 안고 주님께 나아가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도록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500장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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