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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72049781
    성경본문
    시편 127:1~5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8-05-27

"건강한 사회, 행복한 가정"

 

(127) 건강한 사회, 행복한 가정

2018-05-27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설교제목처럼 사회와 가정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많을수록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역으로도 성립합니다. 건강한 사회가 될수록 행복한 가정이 많아집니다. 물론 사회가 불안해도 어떤 가정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가 평온해도 어떤 가정은 불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도 건강하고 가정도 행복한 것,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행복합니까?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건강한가요?

 

사회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위기사회를 넘어 위험사회로 진입했다고 말합니다. 여러 부분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동의하는 대로 5가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 세대 갈등: 2030세대와 6070세대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않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4050세대가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고 가야 할 주역들인데 세대를 아우르는 융화능력이 별 없는 것 같습니다.

* 지역 갈등: 호남과 영남의 깊은 골이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 노사 갈등: 여전히 노사 간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 빈부 갈등: 개인소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소득보다 씀씀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카드빚을 진 자들이 많을 뿐 아니라 카드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파산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넘어서 미워하고 있습니다.

* 이념 갈등: 요즘 들어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통일관이 다릅니다. 진보는 북한이 우리민족이니까 그래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보수는 복한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인구 문제와 교육 문제입니다.

* 저출산 노령화 문제: 비혼 청년들이 계속 증가할 뿐 아니라 출산 저하로 인해 인구절벽 시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국가 의제로 설정했습니다. 2005년도에는 적정인구 유지와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기본법을 만들었고, 3차에 걸쳐 5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100조원 규모의 재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랬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합계출산율(15세부터 49세까지의 가임여성 1명이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1.05명에 불과합니다. 2016년에 합계출산율이 1.17명이었는데 더 낮아졌습니다. 출생아 수도 5년 전에는 50만 명이었는데 2017년에는 357700명으로 떨어졌습니다. 20178월 말로 65세 인구가 14.02%이 이르렀고 노인인구가 유소년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이렇게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인구 경쟁력이 급감함으로써 국가경제가 점점 더 약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교육 문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학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은 돈이 자녀교육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돈 없으면 자녀 공부 못 시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사교육비 때문입니다.

* 정부 신뢰도 추락: 이런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정부가 아무리 그럴 듯한 정책을 내어 놓아도 국민들이 믿지 않습니다.

* 살고 싶지 않은 나라: ‘전쟁이 났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해외로 도피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살기 싫은 나라, 희망 없는 나라, 그래서 기회만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합니다. 백성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부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가치관과 삶이 사랑과 공의에서 아주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래서 패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장차 만물이 크게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예언했습니다. 이 세상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살벌한 시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시대가 다가오는데 그 때가 말세입니다.

 

(딤후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인간관계도 파괴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까지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말세가 될수록 전 방위적으로 고통이 가중됩니다.

 

오늘날이 바로 고통이 증폭하는 말세입니다. 이 고통의 시대에 예수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먼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이 권면처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과 사회를 선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면 성도와 교회가 먼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성도와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본문, 시편 127편에서 세 가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성도와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려면 우선적으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 합니다(1-2절 상반절).

 

제가 미국과 유럽에서도 살아봤고 아프리카에서도 살아봤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열심히 일하는 백성은 없습니다. 모두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계속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고 아파트는 더욱 편리하게 건축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큰 행사들을 거뜬히 치러내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작년에 29,745달러였는데 올해는 3만불을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사회가 여전히 불안합니까?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까?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세웁니다. 부실한 기초 위에 높은 빌딩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거품이 제거되지 않은 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파산의 위험은 더욱 커갑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을 우리는 압니다. 사람들이 성을 튼튼히 쌓고 대()를 높이 세우려고 했습니다. 엄청난 인력과 재원이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동체의 붕괴와 의사소통의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바라는데,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는 반드시 튼튼한 기초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몰라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기초가 무엇입니까?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무한능력자가 아닙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일을 다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상반절을 보세요!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헛되다라는 동사입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에서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는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이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의 바른 해석은 두 가지를 내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일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바로 그 하나님의 선한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바로 그 일에 동참하여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닥치는 대로 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잘 분별하여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만족한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라의 안전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의 산업도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야 결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흔들거립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라는 사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인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바르게 세우려면 다시 기초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 기초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솔로몬 왕이 지은 시편이라고 표제가 붙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으로 예배하러 올라가는 순례자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1-2절 상반절을 이렇게 풀어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가정과 나라와 일터에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정치를 잘 해서, 백성들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가정이 평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 정말 필요한 것은 당신의 은혜입니다. 백성들의 가정마다 정말 필요한 것도 당신의 은혜입니다. 일터에도 당신의 은혜가 계속 부어져야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해야 할을 최선을 다해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셔야겠습니다. 은혜를 내리소서! 그래야 가정이 행복하고 나라가 안전하고 일터에도 풍성한 결실이 있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경건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이루게 하십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을 즐겨야 합니다(2절 하반절).

 

현대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휴식입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문명이 현대인들을 쉬지 못하게 합니다.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립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우리의 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우리를 더욱 피곤하게 합니다. 갈 곳이 더 많고, 보아야 할 것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눈을 감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쉼 없이는 버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즉시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합니다. 하루의 일과가 마치는 저녁에는 일을 멈추고 쉬어야 합니다. 낮 동안에 열심히 일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이 잘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망과 욕심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합니다. 그래서 일에 매달립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서 만족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오히려 밤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기고 잠을 자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휴식할 때는 제대로 휴식하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자가 규모 있는 자요 경건한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일이 많아도 허둥대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능률적으로 해냅니다. 이유는 짬을 내어 휴식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활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시간을 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돕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를 항상 간직하고 삽니다.

 

우리나라에 주 5일제 근무가 법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앞으로 주 5일제 근무가 전 기업체로 확산될 것이 분명합니다. 목적은 휴식을 권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동시에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라고 명령합니다.

 

성경의 권면과 주 5일제 근무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 생계유지와 직장의 발전을 위해 직업 활동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 생계유지와 직장의 발전보다도 어쩌면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는 날로 삼으십시오. 여가와 취미 활동도 좋습니다. 친지들과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더욱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토요일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 예배와 안식의 날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즐겁게 교제하는 날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쉬어야 할 때 쉬는 성도가 경건한 성도입니다. 일과 휴식,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특히 휴식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잠입니다(2절 하반절). 여기서 말하는 잠이란 태만이 아닙니다. 땀 흘려 일한 다음에 갖는 휴식으로서의 잠입니다. 잠은 근심을 떨쳐버립니다. 잠은 일에서 물러나 조용히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쉬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잠은 돈이나 명예보다 더 값집니다. 예수님께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 배 고물을 베고 깊은 잠에 빠지셨습니다. 그렇게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깊은 수면을 취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어야 경건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경건의 능력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집니다. 교회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휴식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쉬십시오! 그러면 주일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푹 잠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안식 속으로 들어간다면 경건의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성도와 교회는 출산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합니다(3-5).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제일 낮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작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5-49세의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이 1.05명입니다. 유럽의 저 출산국가들을 제치고 1위가 된 지 한참 되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정부는 가족계획을 아주 강력하게 권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출산파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비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아이 하나 기르는데 월 107만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양육하려면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육아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의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직업을 가지는 것이 훨씬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청년들에게 결혼/출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34.8%로 나타난 데 반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응답자는 65.2%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든지 아니면 하나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구학자들은 나라의 폐망이 인구감소와 직결된다고 말합니다. 출산율 저하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편은 말씀합니다(3-5). 아이를 출산하는 것, 그것도 다산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의 자식들, 복수입니다. 4절의 젊은 자의 자식도 원어 상으로는 복수입니다. 빨리 결혼하여 자녀들을 많이 낳으라는 뜻입니다. 5절에서는 자녀가 많을수록 복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후손을 통해 오며, 하나님의 일이 후손을 통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3).

 

그리고 5절의 의미는 잘 성장한 자식들이 부모와 가문을 빛낸다는 뜻입니다. 특히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자식들이 부모를 변호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경건한 후손을 많이 낳아 잘 양육하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자녀 양육의 수단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자녀 양육의 수단이 결코 돈이 아닙니다. 돈으로 자녀를 양육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대신에 부모와 어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그렇게 교육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장래를 책임지십니다. 성경의 약속입니다.

 

또 하나, 교회의 자녀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내 자녀로 생각하고 괸심을 기울여 함께 양육해야 합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며 그 미래가 밝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 우리교회에 12명의 아이들이 태어나 잘 자라고 있으며 곧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가정도 10가정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복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불신 부모의 자녀들을 잘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도록 가정과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세우는 것,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일에 헌신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일에 헌신하려면 우선 우리가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세 가지의 통로로 내립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오늘 시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즉 예배 때 불렀던 찬송입니다). 둘째는 잠(휴식)입니다. 셋째는 자녀입니다. 자녀를 통하여, 노동과 쉼의 조화를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합니다. 그렇게 회복된 경건의 능력으로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합니다. 그 결과는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의 구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성도들과 교회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적어도 5가지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보호: 가정과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만족한 결과: 일에 대한 만족한 결과를 보장하십니다. 자신이 일한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주십니다.

평안하고 달콤한 : 휴식을 통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하십니다.

후대의 복: 자녀와 후손들을 통해 가정과 사회의 밝은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가문의 명예: 자녀와 후손들이 가문과 부모의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이러한 복을 받는 행복한 가정, 경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찬송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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