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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47964632
    성경본문
    출애굽기 10:21~29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7-14

<출애굽기 강해 08>

(출 7-10장, 봉독 10:21-29) 예배를 위한 영적전투

2019-07-14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십니다(출 3:12, 8, 5;1).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후로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배후에 있었던 사탄은, 신적인 존재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여 사탄 자신을 예배하게 합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자들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사역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예배는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자들을 통하여 만물을 회복하는 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현혹시켜 세상과 타협하게 만듭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를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광야로 가게 해달라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세상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5:2~4).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바로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노동시간을 빼앗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일하도록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자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바로가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자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파리 재앙 때 바로는 모세에게 광야로 나가지 말고 고센 땅에서 예배드리라는 첫 번째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8:25). 

  물론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나아가 예배의 장소를 삶의 전 영역으로 넓혀가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안전한 예배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8:26~27). 그러자 바로는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두 번째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8: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출애굽을 계획하셨습니다. 예배의 규례를 가르쳐서 40년간 광야에서 예배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날이 예배의 날입니다(롬 12:1).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가 일상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매순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존재목적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힘은 예배에서 나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메뚜기 재앙을 예고했을 때에도 바로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10:3~6).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신하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말하자, 바로는 모세를 불러 누구를 데려갈 건지 물었습니다(10:7~8). 이에 모세는 모두를 다 데리고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10:9). 그러나 바로는 아이들은 데려가지 말고 너희 세대만 다녀오라는 세 번째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10:10~11).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족 전체가 예배하길 원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자녀가 살아야 나라와 교회와 가정에 밝은 미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족들이 예배의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들이 속히 주님께 돌아와 예배하도록 최선을 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가되 양과 소는 두고 가라는 네 번째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10:24). 그러나 모세는 이 역시 거절했습니다. 

  재물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할 수 있습니다(출 10:25~26). 온 가족이 함께 모든 시간, 모든 재물까지 드리는 것이 올바른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약 1:17~18). 헌금을 드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신으로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십니다(고후 9:7~8).

 

  모세가 뒤로 물러서지 않자 바로는, 모세에게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며 화를 냈습니다(10:28). 이에 모세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10:29). 모세는 더 이상 바로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보기를 갈망했던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자 열망한다면 우리도 모세와 같이 예배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완전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히 9:13~14, 10:19~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예배자로 회복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의 공동예배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 앞에서 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과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마 4:8~11). 말씀과 성령님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매순간 승리를 쟁취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출애굽시키려고 하셨을까요? 출애굽의 우선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출 3:12, 8, 5;1).

 

(출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율법과 죽음과 사탄에서 구출하신 우선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 가운데 하나인 위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의 제1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질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 답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며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데서 찾아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인간의 전적타락”이라고 합니다. 이 타락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첫 사람의 타락 배후에 사탄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의 설교 주제와 연관하여 말하면,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들이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하나님 대신에 다른 무엇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본성을 사탄이 이용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섬기게 합니다. 사람을 섬기든지, 돈이나 쾌락이나 권력을 섬기든지, 거짓 신들이나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결국 사탄은 자기를 섬기게 합니다.

 

이렇게 사탄의 종이 되어 왜곡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구출하여 다시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자들로 바꾸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사역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는 예배를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주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섬기는 대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으로 바뀔 때 그의 존재가 새로워집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새 사람은 자신이 새로워졌을 뿐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전체가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러므로 이 새 사람을 통하여 만물이 회복됩니다. 올바른 예배를 통하여 만물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바꾼 자들을 사탄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손해를 입힙니다.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이런저런 시련과 고통을 겪게 합니다. 예배 공동체 내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예배자들에게 두려움과 염려를 심습니다. 예배자들을 위협합니다. 그러다가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이것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광야로 가게 해달라는 모세의 요청을 바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출 5:2-4)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세상일을 쉬면서까지 예배드리는 것,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어떻게 할 일을 제쳐두고 예배드리려고 하느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세상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 같은 논리는 오늘날에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경쟁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실적이 중요합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당장 눈앞에 일이 밀려있는데 그 일을 제쳐두고 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면한 일 때문에 예배를 거릅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예배가 삶의 변두리로 밀려납니다. 내가 맡은 세상일은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기에 일이 밀려있으면 자연스럽게 예배를 포기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배가 휴가나 취미생활보다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배보다 세상일을 더 중시하는 것, 괜찮을까요? 더 근본적으로 질문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일이나 실적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 굴리고 기계 문명의 편리를 누리는 것 말고는 나아질 것이 있을까요? 우리 주위의 많은 분들이 육체적으로 만성 피로감에 찌들려있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에 짓눌려있습니다. 갖가지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치 모래 위에 높은 빌딩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가 허술하여 크게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 실태입니다. 구조 조정한다고 하지만 겉모습의 일시적인 변화에 불과합니다. 내면이 변해야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스타시오(statio)”라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스타시오”는 라틴어인데 여기서 “스테이션(정거장)”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왔습니다.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것을 뜻합니다. “스타시오”는 잠깐 쉬면서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지난 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은혜를 구합니다. 이것이 삶 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어쩌면 이 예배야말로 모든 일의 중심입니다. 일을 바르게 하는 힘과 지혜가 예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우리의 일을 방해하고 우리의 노동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일하도록,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정신 차리고 일하도록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살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효과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예배의 귀중함을 알고 예배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엇이 최우선순위입니까? 예배입니까? 세상일입니까? 이것이 성도가 싸워야 할 영적전투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와 세상일의 갈림길에서 예배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맹세요 약속입니다.  

 

일 때문에 예배를 뒤로 미룰 수 없다고 답변한 모세에게 바로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그런 요구를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심하게 노역을 부과했습니다. 그렇게 고역이 가중된 것, 모세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의 지도력을 의심하게 함으로써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가 꾸민 계략에 넘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자기들을 곤궁에 빠트렸다고 원망했습니다. 시작부터 반대에 직면한 모세는 풀이 꺾였습니다. 바로가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이 점에서 흔들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만은 잘 드리겠다고 작정했는데 예배드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생깁니다. 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가정에 복잡한 일이 생깁니다. 사업이 어려워집니다. 예배 때문에 당장 손해를 입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예배에 대한 결심이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로 가서 예배를 위해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바로에게 보이시려고 두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피 재앙과 개구리 재앙입니다. 그랬어도 바로는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이 재앙까지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여전히 완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번째 재앙인 파리 재앙을 애굽 땅에 내리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파리 재앙이 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재앙을 맞고는 바로가 한 풀 꺾여서 모세를 불러 첫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출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왜 하필이면 광야까지 나가서 예배드리려고 하느냐? 너희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이나 여기서도 얼마든지 예배드릴만한 곳이 있는데 사흘 길이나 되는 광야에까지 꼭 나가야 하느냐? 왜 사서 고생하려고 하느냐?”라는 뜻입니다.

 

바로의 이 타협안에 모세가 답변합니다.

 

(출 8:26-27)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우리가 색다른 제사를 드리는 것을 너희 애굽 사람들이 보면 가만히 있겠느냐?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려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에게 안전한 예배장소가 필요하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장소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자기 백성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누가 옳으냐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산이냐 예루살렘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서 예배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하는가가 예배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예배장소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분요함을 떠나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도록 예배장소를 준비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성도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광야가 예배의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별된 예배장소가 필요합니다. 물론 예배장소를 구별했다고 해서 저절로 그 장소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 만년동 교회당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전심전력으로 예배할 때에만 이곳이 성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모양은 성전이지만 실상은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처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도록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배의 장소를 삶의 전 영역으로 넓혀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예배처소입니까? 여러분의 일터에서도 예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공부방이나 도서관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고 예배하는 처소를 넓혀가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입니다.

 

모세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예배드리겠다고 했을 때 바로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출 8: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사흘 길을 가서 예배드리고 돌아오려면 적어도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는데 예배가 무엇이기에 한 주간을 허비하느냐? 조금만 나가면 광야인데 거기서 예배드리고 빨리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은 바로가 제시한 두 번째 타협안입니다. 빨리 예배드리고 와서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라는 것인데 그 밑바탕에는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간결하고 산뜻하게 예배드린 후에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예배 때문에 일상의 삶이 흐트러지거나 육신이 피곤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위해 사흘을 요구하셨습니다. 실은 사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다시 고센 땅으로 복귀시킬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영원한 출애굽을 계획하셨습니다. 사흘 길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한 다음, 계속 예배하는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는데 그 율법의 중심내용이 예배에 관한 규례였습니다. 그 예배의 규례대로 40년간 광야에서 예배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모든 날이 예배의 날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린 이후로 매일 예배하는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예배의 시간 개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 원리를 잘 설명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로마서 11장까지 구원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12장부터는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예배임을 12:1절에서 밝혔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일상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방점은 “일상”입니다. 매순간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여 드리는 주일의 공동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려면 일상의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매순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결코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광신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도의 존재목적입니다. 매순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살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힘이 예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이 곧 애굽 땅에 내릴 것을 예고했습니다(10:3-6). 그 경고를 듣고도 바로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하들이 직언합니다. 

 

(출 10: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바로가 모세를 다시 불러 묻습니다.

 

(출 10: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모세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출 10: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이 대답에 대해 바로는 세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출 10:10-11)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예배의 장소와 예배의 날은 네가 말한 대로 허락하겠다. 그러나 남자 장정들만 예배하고 오너라! 특히 아이들은 안 된다. 아이들까지 가면 너희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민족이 되는 것인데 그건 안 되겠다. 그러니 가족 대표만 갔다가 속히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너희 세대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락하지만 다음 세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변함없는 전략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너만 예수 잘 믿고 예배하면 되지, 왜 가족들 모두에게 강요하느냐? 그렇게 하는 것,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 자녀들에게 너무 졸라대지 말라,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잖니? 자녀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으니 그들 스스로 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왜 그렇게 성급하게 구느냐?”라고 속삭입니다.

 

<<어느 전도사님의 한탄이 담긴 글을 읽었습니다. 주일날 어느 집사님의 아이가 주일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그 집사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의 아이가 오늘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 질문에 집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전도사님, 우리 아이가 요즘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할 뿐 아니라 집에까지 와서도 공부합니다.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교회 가지 말고 집에서 푹 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엄마가 대신 나가서 예배 잘 드리고 기도 많이 할 테니까 너는 공부에 집중하라. 대학에 들어가면 예배드릴 시간이 많을 테니 지금은 공부에 전념하라! 학생의 최고과제가 공부이니 예배를 공부로 대체하는 것, 주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거야!”라는 뜻입니다. 

 

이런 부모에게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울까요?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부모를 보면서 신앙과 예배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세상일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예배를 얼마든지 뒤로 미루거나 포기해도 괜찮구나!”라고 어릴 때부터 체득하게 됩니다. 이래서는 교회와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구약의 잠언서에서 말씀합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현명한 정원사는 나뭇가지가 연하고 어릴 때 다듬고 가지치기를 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집니다. 어릴 때부터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도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바르게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본문은 가족 전체가 함께 예배드려야 함을 강조합니다. 자녀들은 애굽에 남겨두고 어른들만 광야로 나가 예배드리는 것을 결코 두둔하지 않습니다. 가족 전체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배가 자녀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살아야 나라와 교회와 가정에 밝은 미래가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들의 예배를 보고 배울 뿐 아니라 그 예배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족 전체가 예배에 헌신할 때 가정에 참된 행복과 평안이 깃듭니다. 

 

여러분의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들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습니까? 그들이 지금 예배의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들이야말로 최우선의 VIP들입니다. 그들이 속히 주님께 돌아와 예배하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아홉 번째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3일간 흑암이 고센 땅을 제외하고는 애굽의 온 땅 뒤덮였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 네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출 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탄은 우리를 미혹합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의 네 번째 타협안에 모세가 답한 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출 10:25-26)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우리의 소유를 우리와 분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든 시간, 모든 재물까지 드리는 것이 올바른 예배입니다.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약 1:17-18)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이것이 청지기 예배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을 넣었는데 그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는 표로 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모든 재물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거기서 일부를 떼어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정신으로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고후 9:7-8)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모세에게 네 차례나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화를 내며 모세를 위협합니다.

 

(출 10: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답합니다.

 

(출 10: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모세가 여러 번 바로를 만난 것은 바로를 위해서였습니다. 바로는 모세가 자기 앞에 나타났던 때가 심판이 보류된 때요 은혜의 때임을 몰랐습니다. 이제 바로는 그 은혜를 제 발로 차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최종적으로 거절한 것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자의 결국은 은혜의 소멸과 심판이 따를 뿐임을 모세가 선포한 것입니다.    

 

"나는 예배하기로 작정했습니다(I Choose to Worship)"라는 CCM 찬양곡이 있는데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당신의 궁정 밖에 우두커니 서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그냥 지나쳐 내 갈 길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입을 다물고 찬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내 마음을 드리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주님을 예배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더 알기 원합니다. 오 주님, 지금 이 시간 주님을 경배합니다.” 이 가사처럼 매일의 영적전투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은 예배입니다.

 

인생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보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완전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로 능히 인도하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셔서 우리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 9:13-14)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10:19-22)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여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예배자로 회복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대신에 예배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의 공동예배, 잘 드립시다. 일상의 삶에서도 예배합시다. 우리의 온 가족과 소유 전부를 다 드려 예배합시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비추십니다. 은혜를 넉넉하게 베푸십니다. 예배야말로 뒤로 미루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성도의 최우선의 특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예배를 방해합니다. 온전하게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예배를 수호하기 위해 사탄과의 전투에 담대히 나서야 합니다.

 

사탄(마귀)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 4:8-9)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구약성경의 한 구절(신 6:13)을 선포하심으로써 승리하셨습니다.

 

(마 4:10-11)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배를 위한 영적전투야말로 성도가 싸워야 할 가장 치열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예수님처럼 성경말씀과 성령님으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매순간 승리를 쟁취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찬송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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