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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78055435
    성경본문
    신명기 34:1~8
    설교자
    표은수 목사
    설교일
    2019-12-08

(신 34:1-8) 하나님의 위로

 

2019-12-08 / 표은수 목사

 

요약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는 좌절의 사막을 헤매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면, 거칠고 험한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며 소망이 될까요? 본문을 통해 우리는 험한 세상 속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붙드시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세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인내심이 강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로부터 출애굽이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12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 땅을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2:51~52). 신광야의 가데스에서 모세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었기 때문입니다(20:12). 심지어 모세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홀로 올라갈 정도로 건강했습니다(7).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모세는 한 결 같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때에 바로에게 나아가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킴으로써 출애굽을 이끌어냈고, 금송아지 사건 때는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서라도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자신이 죽게 될 산꼭대기로 담담히 올라갑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어려운 순간마다 함께 하시고 많은 위로를 주셨음을 기억하며(18:3~4), 동시에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 걸 볼 때(6), 그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홀로 산을 올랐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홀로 산을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남아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과도 함께 하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세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 부르며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십니다(5).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장사하셨다는 것입니다(6). 한 평생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였던 모세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요?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의 영적대혈투에서 승리를 얻었을 때,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광야로 하룻길 도망을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저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그냥 죽여주십시오.” 그렇게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시며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왕상 19:5).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 밖에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칠천 명을 남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9:18).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험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힘든 시험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홀로 이 땅에 내버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이루시기까지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며 예수님을 지켜주셨습니다(1:12~13). 은혜와 영광이 충만할 때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고, 광야 속에 계실 때에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으며, 힘들고 지쳤을 때에도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험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기도하기보다 자신과 가정을 위해 기도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 신앙생활도 외롭고, 교회 밖에서도 믿지 않는 군중들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8:26).

 

두 가지 권면을 드립니다. 첫째, 위로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사는 게 힘들고 자신의 처지가 불쌍히 여겨질 때, 지금 나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성도도 나와 같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말씀 속에서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시고,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여, 행복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세상적인 방법 의지하지 말고,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믿으시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방법대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믿음으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14:12~13). 이러한 신뢰와 기대가 있다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

한 때 한 정치인의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 한다면, “,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번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살림살이 좀 더 나아지게 해보려고 애쓰셨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가정과 학교와 여러분의 생업터에서 행복하셨습니까?라는 이 질문에 머뭇거리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답하실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힘들게 한 주간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일부터 또 다시 시작될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이겨낼 수 있는 위로와 격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영국의 유명한 성경주석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최상의 의무 중 하나는 격려의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열정에 찬 물을 끼얹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절망시키기는 더욱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서로 격려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의 칭찬이나 격려의 말로도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충분히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위로와 격려는 좌절의 사막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유일한 오아시스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과 소외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누군가 그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소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다가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위로해 준다면 그것만큼 기쁘고 감사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받는 위로도 힘이 되고 감사한데 하물며 하나님께 받는 위로가 있다면 거칠고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며 소망이 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험한 세상 속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붙드시고, 주님 다시오시는 날까지 어떤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본문은 모세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씀인데,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 인내심이 가장 강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모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인생을 간략하게 돌아보십시오. 올해 담임목사님께서 출애굽기 강해를 하시면서 우리는 모세의 인생과 그의 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의 궁정에서 40년 동안 왕실교육을 받으며 살았고, 어느 날 애굽 사람을 죽인 사실이 발각되어 광야로 도망가 목자로 40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80세의 고령의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의 사명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오래 전, 그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령의 나이라는 것도 힘들지만, 그가 이끌어야 할 백성들은 약 200만 명이나 될 정도로 숫자가 많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가야 할 길은 길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광야였으며 40년이나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나이 120세가 되었을 때,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눈 앞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2:51-52“51.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보기만 하고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대할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가나안 땅 하나보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요즘은 편안한 노후를 준비하며 청춘을 받쳐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모세는 아닙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기에 들어가서 어떤 삶을 살지도 모르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40년동안 백성들의 모든 불평과 불만을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고, 그 땅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너의 사명은 여기까지.’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조금 전 신명기 32:51에서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민수기 20장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지 40년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12정탐꾼의 보고 사건으로 광야를 방황하게 되었던 그 장소인 신광야의 가데스에 다시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려 하였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세는 지금까지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여 백성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거룩함을 드러내기 원하셨는데, 모세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모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형 아론이 죽는 순간에도 모세는 이 사건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떠올리시며 죽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가 이러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40년 동안 자신에게 온갖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은 백성들을 탓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3252절 이후의 기록을 보노라면 어디에서도 모세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이제 곧 자신과 헤어질 백성들을 모아놓고 축복합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간절했습니다. 만일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그는 이 험한 길을 40년 동안 걸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6절 말씀에서는 모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을 염두하고 본문 1절을 읽으면 백성들을 축복한 모세가 비스가 산꼭대기에 홀로 올라갈 정도로 체력적으로도 건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본문 7절에서는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나안에 못가는 것도 아니고, 기력이 쇠하여 죽을 때도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상황이 너무 억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40년을 늘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때에 바로에게 나아가 10가지 재앙을 일으킴으로써 출애굽을 이끌어내었고, 시내산에서는 형제조차 한 마음으로 연합하지 못해 일어난 금송아지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을 지워서라도 백성들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40년 동안 백성들에게 온갖 원망과 불평에 시달리며 가나안 목전까지 끌고 온 것입니다. 이쯤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표창장 및 금일봉 지급하셔야합니다. 그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모세를 몇 달 더 살려주셔서 요단강을 완전히 건넌 후 그의 생명을 취하셔도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 사실 앞에서 어쩌면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이렇게 입밖으로는 꺼내지 못하지만 불충한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갔더라면 순종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복된 사람의 모델이 될 수 있었을텐데, 여기에서 죽게됨으로써 순종해도 별 소용없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 달리 1절을 보시면 백성을 축복한 모세는 이제 담담히 그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갑니다. 그곳은 그토록 바라던 땅을 볼 수 있는 기대감이 가득찬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은 자신이 죽게 될 곳입니다. 그곳으로 죽음을 맞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자원하여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120년의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어려운 순간마다 함께 하시고 많은 위로를 주셨음을 기억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그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험난했던 120년의 인생 가운데 좌절하지 않으며 절망하지 않도록 늘 위로하시고 힘주셨습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왕궁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로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의식주에 있어 풍족하게 누렸던 모세가 하루 아침에 들판에서 살아야 했던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8:3-4 “3.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함이요 4.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왕궁에서 쫓겨난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내가 이방의 나그네가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는 겁니다.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그가 광야로 쫓겨나갔을 때, 아내 십보라를 만나게 아시고, 엄청난 규모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때 큰 도움을 주었던 장인 이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할 때에는 자신의 말을 대변해 줄 형 아론을 만나게 하셨고, 누나 미리암을 통해 갓태어난 모세가 강물에 떠내려 갈 때 구원하게 하셨으며, 홍해를 건널 때에는 이스라엘의 여성들과 함께 노래를 찬양함으로써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사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공유하게 하시는 등 뒤돌아보면 힘겨웠던 모세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세를 따라왔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무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 6절 끝에는 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말씀할 정도로 모세가 비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갈 때,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40년간 함께 해왔던 백성들과의 마지막 만남, 그리고 반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와 그의 자녀들을 뒤로 한 채, 죽게 된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이 담담할 수 있었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신뢰했고, 그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함께 하실 것임을 믿었기에 담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5절과 6절에는 모세가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은 함께 읽겠습니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비록 한 번의 실수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죽는 순간까지도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모세가 죽었는데, 그의 장례를 누가 담당하였는지 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은 모세가 죽어 장사되었지만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모세를 장사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모세의 시신을 무덤에 묻었을까요?

6절 상반절을 직역하면 그가 그를 묻었다.”입니다. 물론 여기서 도 누구인지 모호합니다만,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그를(모세를) 장사하셨다.”고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장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평생 하나님나라만을 소망하였던 모세에게 그 나라의 주인께서 친히 장사하셨으니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 것이며, 모세에게 이러한 방법으로 위로하셨다면 남아 있는 가족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약속도 함께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믿음으로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는 예는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통치하던 때,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영적대혈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얻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를 죽이려 했고, 엘리야는 광야로 하룻길 도망을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저 할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그냥 죽여주십시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열왕기상 19:5입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시며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40일을 더 가서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 혼자 밖에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또 이렇게 위로하셨습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의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외로이 믿음을 지켰던 것처럼 느꼈을 뿐이지 사실은 7,000명이 더 있었다는 것입니다. 7,000명이 한 곳에 모여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엘리야는 그들을 보았을 것이고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의지하며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예수님 또한 그러하셨습니다. 30세가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주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요단 강까지 먼 길을 오셔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친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광야에 40일을 계시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광야에서의 40일과 사단에게 받으신 시험을 쉽게 이겨내셨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성경을 너무 안일하게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험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힘든 시험입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홀로 이 땅에 내버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복음사역을 준비하시고, 그 모든 사역을 이루시기까지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지키셨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마가복음 1:12-13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은혜와 영광이 충만할 때도 성령께서 함께 하셨고, 광야 속에 계실 때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셨으며, 힘들고 지쳤을 때에도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한밭가족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성도들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형편 속에서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살아가면서 시험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거나 주저앉았던 경험을 한 적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때 이겨내지 못하고 그 유혹에 넘어져 내가 왜 그랬을까?’,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며 후회하였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모세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위로가 우리로 하여금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믿음대로 살기보다 세상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좀 더 잘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기도하기보다 내 가정, 내 자녀, 내 승진이나 사업장, 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 신앙생활도 외롭고, 교회 밖에서도 믿지 않는 군중들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며 오늘도 믿음생활 하시는 성도님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위로하시고 믿음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격려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설교를 끝으로 한밭교회에서 저에게 맡겨주신 모든 사역을 정리하게 됩니다. 떠나면서 저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 권면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위로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살이 만만치 않고, 믿음지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세상에서 나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지 못해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옆에 있는 성도도 나와 같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함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시고,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여, 행복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세상적인 방법 의지하지 말고,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여러분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권면하면서 그 말씀이 당신들을 든든히 세울 것이며, 기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오늘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믿으시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권면대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험한 세상 속에서 인내하며 말씀대로 위로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믿음으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2-13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일들을 기억하시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반드시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뢰와 기대가 있을 때 주님 다시 오실 때 허락하실 최종적인 위로와 승리를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서로를 격려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위로에 깊이 젖어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길을 오늘 우리에게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와 사랑, 격려를 풍성히 누리시는 한밭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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