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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33162416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4:7~18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9-04-21

(고후 4:7-18)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성도들”

2019-04-21 부활절설교 / 곽창대 목사

 

요약

  모든 성도는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11절). 반면 육체적으로는 살아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죽은 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허물과 죄 때문에 죽었습니다(엡 2:1~3). 그 결과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기의 허물과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우리 죄인들이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일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엡 2:4~6).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요일 5:11~13).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는 세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례는 물 아래에 있다가 물 위로 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을 뜻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그 후로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자와 같습니다(7절). 질그릇은 성도를, 보배는 성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는 날마다 새 생명의 위력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8~9, 16절). 거룩한 소망이 불 같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소망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현재적인 소망(10~11절)”과 미래의 “최종적인 소망(14, 17절)”입니다. 바울의 최고 소망도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빌 3:10~12).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13~14절).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10~11절). 

 

  그러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어떠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다짐합니다(12절). 바울과 같이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을 죽음에 내어줄 때 더욱 강렬하고 생생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부활신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죽을 때 날마다 부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죽으십시오! 사명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형제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달게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되 최선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흔들리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흔드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되라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부활을 경험합니다. 성찬식에 사용되는 떡은 예수님의 몸을,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부활의 영이요 생명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성도를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부활의 영이신 성령을 주심으로써 부활을 경험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을 힘입어 사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로 삽니다. 형제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줍니다. 세상을 변혁하는 사람이 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최후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배는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그 보배가 있으므로 우리는 결국 승리합니다.

 

 

전문

오늘 본문에서 주로 등장하는 인칭대명사는 “우리”입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우리”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을 포함하여 그와 함께 동역하고 있는 복음전파자들을 일컫습니다. 11절에서는 복음전파자들을 총칭하여 “우리 살아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복음전파자들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가르칩니다. 육체적으로는 살아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죽은 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떨어져 사는 자를 뜻합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자를 뜻합니다. 

 

이것을 엡 2장에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2:1-3)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금방 읽은 말씀은 사람이 영적으로 죽게 된 원인을 말씀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까? 자기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생활합니다. 세상 풍속을 좇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탄)를 따릅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심판)를 받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사는 길은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우리 죄인들이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들이 스스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일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엡 2:4-6에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2:4-6)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 성경구절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하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요일 5:11-13입니다.

 

(요일 5:11-13)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주와 주님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십자가에서 다 대속하신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례는 물 아래에 있다가 물 위로 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을 뜻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11절의 “우리 살아있는 자”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었을 때 즉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그 후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를 본문 7절에서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자라고 묘사합니다. 질그릇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보배는 성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는 날마다 새 생명의 위력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 새 생명의 위력을 8-9절에서 잘 묘사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렇게 새 생명을 누리며 사는 성도에게는 거룩한 소망이 불 같이 일어납니다. 그 소망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현재적인 소망과 미래의 최종적인 소망입니다. 

 

10-11절이 성도의 현재적인 소망에 관한 말씀합니다. “[10]…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금 여기서 풍성하게 경험하며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14절은 미래의 최종적인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모든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함으로써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17절에서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울은 최고의 강세어법으로 표현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10-12에서도 자신의 최고소망이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빌 3:10-12)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무덤을 깨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가 어느 정도로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생명에 전율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질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13-14절을 보세요. “[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10-11절을 보세요.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질 때,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달게 받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하려면 항상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가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부활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왜 우리에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까? 그래야 날마다 부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그 사명은 형제를 위하여 지는 십자가입니다. 12절을 보세요.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살게 하려고 죽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뜻입니다. 15절에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어떠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죽은 자”는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만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가 죽음에 자신을 내어준다 해도 죽지 않습니다.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음에 내어줄 때 더더욱 강렬하고 생생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부활신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죽을 때 날마다 부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죽으십시오! 사명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형제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달게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되 최고로 사랑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되 최선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흔들리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흔드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되라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제 성찬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성찬식에 사용되는 음식은 두 가지입니다. 떡과 포도주입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떡과 포도주를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제가 여러분들에 나누어주지만 실상은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십니다.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식탁에 오셔서 자신을 주십니다. 신령한 눈이 열려 자기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의 영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다름 아닌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부활의 영이요 생명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성도를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부활의 영이신 성령을 주심으로써 부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처럼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을 힘입어 사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로 삽니다. 형제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줍니다. 세상을 변혁하는 사람이 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최후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7절을 함께 봉독합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배는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그 보배가 있으므로 우리는 결국 승리합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부활을 경험하게 하시는 생명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의 내주를 확인함과 동시에 이제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세상을 달려 나가 부활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찬송가 4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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