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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247651859
    본문말씀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성경본문
    로마서 3:1~20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7-12-17


<로마서강해 7>

(3:1-20) 다 죄 아래 있는 우리

2017-12-17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이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우리 가운데 한 번도 죄 짓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자신의 죄에 대해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스님이셨던 성철 스님이 죽기 전에 남긴 열반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도다.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려 있도다!” 성철 스님은 속세를 떠나 한적한 절에서 참선을 했습니다. 자기에게로 몰려오는 중생들에게 불교의 진리를 가르쳤고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도 성철 스님은 자신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실토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으니 실로 사람을 속인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야 할 곳이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죄가 없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답해야 정직한 대답인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8부터 3:8까지 확실한 증거를 댄 다음에, 3:9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바울은 인류를 두 부류로 나누어서 생각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입니다. 이방인에게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불법자들과 도덕주의자들입니다. 불법자들은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자들인데 그들의 행위를 보면 죄가 쉽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자타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해서 그 기준에 따라 선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 도덕주의자들은 불법자들과 비교할 때, 그래도 자기는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것이 오히려 위선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대인들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유대인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습니다. 이런 유대인을 바울은 참 유대인이라고 불렀는데 참 유대인 안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도 포함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않는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율법을 지켜 스스로 의를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율법을 범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죄까지 은폐하고 있다고 바울은 지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죄인이라는 바울의 주장에 대해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3:1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자신들의 특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심심찮게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바울 선생,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우리 유대인들을 당신이 그렇게 무시하는 것이 정당하오! 하나님께서 언약의 징표로 세우신 할례가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지당한 말이오! 도대체 유대인이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니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을 파기하는 무례한 자가 틀림없군요!”

 

이에 바울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특권을 주신 것은 사실이오! 유대인의 나음을 말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그 중에서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전수 받은 것이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바울은 지적합니다. 3절 상반절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을 자랑하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을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한 것입니다.

 

계속 바울은 유대인들을 추궁합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폐하겠느냐.” 이 구절은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 말씀에 위배된 삶을 사는 너희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어떻게 하셔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나시겠는가?’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이라고, 할례 받은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졌다고 하나님께서 눈을 감으시는 것이 마땅하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단호히 부정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4)” 아무리 특권을 가진 자기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범죄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신실함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다윗의 예를 듭니다. “기록된 바...” 51:4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51편은 다윗이 나단의 지적을 받고 통절하게 참회하면서 기록한 시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강조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눈감아 주지 않으시고 여지없이 들추어내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의롭고 신실하신 분인지를 친히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회개를 통해 의로우신 하나님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를 유대인들이 본 받아야 한다고 바울이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괴변을 늘어놓습니다. 5-8절의 내용입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이렇게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좋소! 바울 선생, 당신의 말대로 우리의 불의와 불신앙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냈다면, 결국 하나님을 유익하게 해드린 것 아니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면, 우리에게도 공로가 있는 셈 아니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 너무한 것 아니오!” 이것은 궤변입니다. 마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팔아 넘겼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일조를 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가룟 유다를 두둔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궤변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의 대답은 아주 단호합니다. 6절입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너희들이 하나님을 불의하신 자로 몰고 있는데 결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면 어떻게 세상의 심판자가 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답답하셔서 너희들의 거짓말이나 악행까지 동원하셔서 자신의 참되심과 선하심을 증거 하려고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유대인들을 향해 8절에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지금까지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워 그들 모두가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는 죄인임을 확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다 죄인이라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9절을 보세요.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여기 우리는 누구일까요? 바울을 위시하여 바울의 편지를 받게 될 로마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좀 더 넓히면 예수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지적은 예수 믿는 자들도 본질상 죄인이라는 점에서 예수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본질상 그 밑바탕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을 내립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인류가)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절 하반절).”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바로 모든 인류가 다 죄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죄는 단수입니다. 죄들이 아니라 죄입니다. 죄들이라고 복수로 사용할 때와 죄라고 단수로 사용할 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죄를 복수로 표현할 때는 여러 가지의 악한 행위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죄를 단수로 쓸 때는 죄의 뿌리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근본 세력 혹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왜곡된 본성을 뜻합니다. 이것을 흔히 원죄라고 말합니다.

 

이 원죄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어딥니까?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전존재를 움직이는 인격의 중심입니다. 그 마음에 원죄가 자리 잡은 이상 그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의 사슬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포로가 되어 죄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죄짓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꾸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도덕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은 죄들을 다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은 죄들의 근본 세력인 원죄입니다. ‘원죄의 처리이것이 모든 인류의 최대 숙제입니다. 그런데 원죄의 처리가 우리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의 몇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원죄의 처리가 절대 불가능함을 말씀합니다. 10-18절인데 전도서에서 한 군데, 시편에서 다섯 군데, 이사야에서 한 군데를 인용합니다. 이 구절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0-12: 모든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로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들에서 없다는 말이 7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죄의 세력을 처리할 수 없는 (가능성이 전무 한) 무능력자라는 뜻입니다. 본질상으로 죄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2:2-3)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 13-15: 입과 혀로 짓는 죄로부터 발로 짓는 죄까지 인간의 몸 전체가 죄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원죄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죄악의 양상들입니다.

 

3) 16-18: 죄로 인해 큰 고통과 불행을 겪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교만과 완고함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죄 아래 있음으로써 구제불능 상태에 빠진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성문화된 율법을 주셨습니다. 돌 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셨고 성경으로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에 그 율법을 새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율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미개한 사회라 해도 그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윤리와 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19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면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때문에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수긍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므로 율법을 지켜 의에 이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20절을 보세요. ‘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사람)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웁니다.

 

여러분, 진지하게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죄인인지 아닌지, 물어보세요. 양심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율법의 기준에 비추어보더라도 우리는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죄인임을 알면서도 죄를 숨긴다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물론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도덕주의자들처럼 그래도 나는 선하다.’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처럼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라고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보고 계십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 병을 숨깁니까?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아는 것이 두려워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우리는 약국으로 달려가거나 의사에게로 갑니다.

 

육체의 병보다 더 근원적이고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영혼의 병입니다. 영혼의 병이 어디에서 생깁니까?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생이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불행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말하기 전에 먼저 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죄를 거론했습니다. 유대인의 죄도 거론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까지도 죄 문제 앞에 정직하게 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몸이 좋지 않아서 의사를 찾아갈 때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합니까? 장난으로 가지 않습니다. 처방을 받으면 그 처방에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그런데 요즘 예수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죄의식에 둔감한지 모릅니다. 죄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해지지 않습니다. 마치 오늘 우리가 보았듯이 궤변을 늘어놓는 유대인들처럼 죄에 대해 이리저리 변명하기가 바쁩니다. 밤낮 죄를 지으면서도 자기는 절대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만만해 합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 죄를 습관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태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하나님 손해지 내 손해입니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기는 잘하지만 정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이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인데도 자신이 구원 받은 자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구원을 한 번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죄 문제만은 하나님께서 적당히 넘어가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택한 백성도 소용없다고 하십니다. 죄 문제가 모든 인류의 우선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죄 문제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걸고넘어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아주 냉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사람은 기본이 안 된 사람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아무리 공부, 장래, 출세, 돈 문제, 직장 문제, 결혼 문제, 자녀 문제 등을 거론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뜨끔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첫 걸음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죄 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우리의 의는 누더기와 같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도와주소서!’라고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마치 병자가 의사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듯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그 체질을 본질적으로 고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소망의 복음이 들립니다.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 시간 빛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진지하게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찬송 538

 

 


  • 그래서 감사합니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 설교일 : 2021-11-07
  • 복음의 위력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빌레몬서 1장 8~21절
    • 설교일 : 2021-10-31
  • 성도의 교제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빌레몬서 1장 1~7, 21~25절
    • 설교일 : 2021-10-24
  • 복음의 동지들을 축복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4장 7~18절
    • 설교일 : 2021-10-17
  • 복음의 진전을 위해 힘씁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4장 2~6절
    • 설교일 : 2021-10-10
  • 사랑으로 종노릇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22절 ~ 4장 1절
    • 설교일 : 2021-10-03
  • 육신의 가족들을 잘 섬깁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일 : 2021-09-26
  • 건강한 사회, 행복한 가정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127편 1~5절
    • 설교일 : 2021-09-19
  • 예수님의 제자로 삽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2~17절
    • 설교일 : 2021-09-12
  • 옛 사람의 악덕을 벗어 버립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5~11절
    • 설교일 : 2021-09-05
  •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4절
    • 설교일 : 2021-08-29
  • 영적 전투에서 승리합시다(2)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2장 16~23절
    • 설교일 : 2021-08-22
  • 참 자유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절, 13절
    • 설교일 : 2021-08-15
  • 영적 전투에서 승리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2장 4~15절
    • 설교일 : 2021-08-08
  • 바울처럼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24절~2장 3절
    • 설교일 :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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