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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영상주소
    http://vimeo.com/195156411
    본문말씀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성경본문
    누가복음 11:14~28
    설교자
    곽창대 목사
    설교일
    2016-12-11

[설교] 2016년12월11일 "인생의 불행과 행복"


<그리스도와 가정 39>

(눅 11:14-28) 인생의 불행과 행복

2016-12-11 주일설교 / 곽창대 목사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1. 불행한 인생들


오늘 본문에서도 불행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4절을 보면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써 그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시적으로 쫓겨난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다시 그 사람에게 들어가 그의 영혼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전보다 더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24-26절).


본문 15-16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유는 귀신의 왕인 사탄의 하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시기하고 제거하려고 온갖 계략을 꾸몄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성령님을 힘입어 수많은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구주와 주님)이심을 밝히 드러내셨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사탄)에 사로잡힌 자라고 모함했습니다(15절).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그 정도의 이적들로는 안 되고 더 큰 이적을 보여주어야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겠다고 했습니다(16절).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31-34을 보면 이들의 영혼이 이미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에게 완전히 복속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2:31-34)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들은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즉 성령님을 모독함으로써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최고로 불행한 자들이었습니다.


2. 인생행복의 시작


그러면 누가 행복한 자일까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사탄이나 귀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가하기로는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가 가장 고상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문제가 욕심에서 비롯되는데 그 욕심을 비우면 성불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텅 빈 채로 있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성취욕과 소유욕의 불길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타오릅니까?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타지 않을 것으로 채워질 때까지 입니다. 그 같은 상태를 평화라고 부릅니다. ‘살롬’입니다. 살롬은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텅 빈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를 뜻합니다. 영원한 만족, 참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가 성경적 평화, 참된 평화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참된 평화로 채워질까요? 돈으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질까요? 명예나 쾌락이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줄까요? 오히려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에서 타오르고 있는 욕망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일으키는 마른 장작개비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욕망의 불길에 빠져들게 합니다. 결국 그 불쏘시개들이 다 타버리면 더욱 우리를 허전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해결책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 가운데서도 전혀 타지 않을 것으로 채우는 것 입니다. 그래야 불길이 잡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만족과 평화로 채워주시는 분이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18-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마 12:28,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뒤흔드시는 분이십니다. 즉 사탄보다 강하신 분이십니다. 사탄의 공격을 분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구주시요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반대하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지내면 나중 형편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됩니다(26절).


그러므로 행복한 인생이 되려면 먼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 천국을 갖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국의 왕이십니다. 천국을 활짝 여시는 분이시며 그 천국을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큰 평화가 임합니다. 


찬송가 412장 특히 2, 4절. 우리 인생들이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기 전까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참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들 가운데 ‘감추인 보화 비유’와 ‘값진 진주 비유’가 있습니다. 


(마 13:44-46)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감추인 보화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처럼 구원의 진리나 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비로소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니는 장사꾼처럼 구원의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종교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래서 어떤 종교에 심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야 욕망의 불길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쉬기까지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에서도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행복이 있다고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골 1:13-14)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엡 2:4-7)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롬 6:20-23)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행복한 인생이 열립니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참 평화를 누립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이 임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3. 마리아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예수님을 수태하여 낳은 마리아를 행복한 자라고 칭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수긍하셨습니다. 하지만 28절에서 마리아보다 더 행복한 자들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들이 마리아보다 행복한 자일까요? 


마리아는 자기 몸에 예수님을 수태했기 때문에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수태한 자는 마리아 외에는 없습니다. 단회적인 수태입니다. 즉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수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더 이상 반복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요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행복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영원히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가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수태하여 낳고 양육한 마리아보다 더 행복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아 젖을 물림으로써 누렸던 마리아의 행복은 아들 예수가 마리아의 품을 떠나기 전까지만 누린 한시적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행복은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해야 합니다. 움막에 살아도, 지하에 살아도, 감옥에 갇혀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행복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는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 마리아가 행복한 여인이었던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순전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아 양육하는 일에 미천한 저를 사용하신다고 하니 참 감사합니다. 그 귀한 일에 제 한 몸 다 바쳐 헌신하겠사오니 저를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여 주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리아보다 더 완전하고 충족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인 성경입니다. 


(벧후 1:19-21)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러므로 완성된 성경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마리아보다 더 행복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참된 행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마음에 새길 뿐 아니라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28절). 마리아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브라엘 천사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성취될 것을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취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마리아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완성된 계신인 성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속에 푹 잠겨 살면 마리아보다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면 참된 행복에 푹 잠길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다면 믿음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불안과 두려움과 불평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자기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기는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에 화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이 같은 불신앙 때문에 염려와 두려움과 불평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조금만 시련의 바람이 불어도 바다 물결처럼 흔들립니다. 환경에 좌우됩니다. 


하지만 믿음이 깊은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 속에 거하여 내적인 평안을 누립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갑니다. 미래를 향해 밝은 희망을 갖고 전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대로 사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자인지를 노래했습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찬가입니다(눅 1:46-55). 이 마리아의 찬가가 어떤 내용인지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핵심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아가 자기 몸에 수태되어 곧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나실 것인데 그 메시아를 환영하는 겸손한 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브라엘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셔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사벳도 마리아를 최고의 복을 받은 여자라고 칭찬했습니다. 마리아 자신도 ‘난 정말 행복하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리아를 그처럼 행복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한 분 때문에 행복하다고 마리아는 노래했습니다. 그 행복이 자기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행복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을 낳고 기르신 육신의 모친, 마리아만 행복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모든 자들이 행복한 자임을 예수님께서 천명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환영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만이 참된 행복을 영원히 누리고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약속하는 지고의 행복이 안락한 장소나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된 가정이나 직업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더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앉았느냐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자기 마음 하나 비우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쉬 흔들리고 쉬 바뀌는 것에 행복의 기준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환경에, 돈에, 쾌락에, 자리에, 자신의 건강에, 사람에게 행복의 기준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경험한 대로 그런 것들은 쉽게 흔들리고 변합니다. 그것들이 흔들리면 행복도 흔들립니다. 그것들이 무너지면 우리의 행복도 산산이 깨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무너질 것에 행복의 기준을 두지 마십시오! 


대신에 무너지지 않을 것, 흔들리지 않을 것에 행복의 기준을 고정시키십시오!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행복의 기초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노래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요 근간입니다. 지고의 행복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만 경험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 그 어디라도 천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여행할 때 그 여행길이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경험할 때 지고의 행복을 지금 여기서도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지고의 행복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나눌 때 그 행복은 더욱 충만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행복은 ‘경계선을 넘어가는 행복’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계선을 넘는 사랑의 침투였습니다. 하늘의 행복을 땅으로 가지고 온 사건입니다. 이 땅에서 저 땅 끝으로 행복을 확산하는 운동이 기독교의 복음 운동입니다. 경계선 안에 안주하는 행복이 아니라 행복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 행복을 확산하는 것이 기독교의 행복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행복을 확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마리아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시려고 마리아를 찾으신 것이 아니라 행복을 경험한 마리아를 통해서 온 세상을 행복하게 하시려고 찾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날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회심하기 전에도 하나님께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그 열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를 집요하게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심이 그릇된 열심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야말로 자기가 찾던 최고의 보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더욱 알고자 모든 것을 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내어버린 모든 것이 하늘의 보화로 바뀌어서 자기에게로 되돌아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경제원칙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바랐던 것은 그래야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을 깊이 알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천국의 진리를 더 분명히 알고자 성경을 열심히 정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최고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열정을 드리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까? 이런 자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한 자입니다. 28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야말로 지고의 행복을 누리고 나누는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께 온통 마음이 빼앗겨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유는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께 마음이 온통 빼앗겨있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천국의 복을 가득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같은 복을 누리는 자는 마리아처럼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 예수님 때문에 저는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계시니 저는 만족합니다. 
  • 하지만 제 혼자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을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리아처럼 바울처럼 예수님을 노래하는 일에,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겠습니다.” 


이 노래야말로 우리가 대강절과 성탄절에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요 주님께 드릴 헌신의 고백입니다. 이 같은 찬송과 결단으로 성탄절을 맞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성도의 교제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빌레몬서 1장 1~7, 21~25절
    • 설교일 : 2021-10-24
  • 복음의 동지들을 축복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4장 7~18절
    • 설교일 : 2021-10-17
  • 복음의 진전을 위해 힘씁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4장 2~6절
    • 설교일 : 2021-10-10
  • 사랑으로 종노릇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22절 ~ 4장 1절
    • 설교일 : 2021-10-03
  • 육신의 가족들을 잘 섬깁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일 : 2021-09-26
  • 건강한 사회, 행복한 가정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시편 127편 1~5절
    • 설교일 : 2021-09-19
  • 예수님의 제자로 삽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2~17절
    • 설교일 : 2021-09-12
  • 옛 사람의 악덕을 벗어 버립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5~11절
    • 설교일 : 2021-09-05
  •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4절
    • 설교일 : 2021-08-29
  • 영적 전투에서 승리합시다(2)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2장 16~23절
    • 설교일 : 2021-08-22
  • 참 자유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절, 13절
    • 설교일 : 2021-08-15
  • 영적 전투에서 승리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2장 4~15절
    • 설교일 : 2021-08-08
  • 바울처럼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24절~2장 3절
    • 설교일 : 2021-08-01
  • 바울처럼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15~23절
    • 설교일 : 2021-07-25
  • 바울처럼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 설교자 : 곽창대 목사
    • 성경본문 : 골로새서 1장 9~14절
    • 설교일 :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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